보청기를 아무렇지 않은 듯 이야기해줘서 고마웠습니다.
주말 오후 남편과 함께 아이를 데리고 집 근처 카페로 나왔다.
카페 앞에는 자그마하게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부모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오기 좋은 공간이다. 준이는 아직 어려서 당연히 함께 어울릴 수 없지만 또래들이 노는 모습도 보여주고 싶고, 제법 선선해진 여름 날씨를 느끼게 해주고 싶어 카페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신나게 놀던 한 아이의 시선이 준이에게로 향했다. 한참을 물끄러미 보던 아이는 엄마에게 소근 되며(그러나 사실 다 들리게) 물었다. '엄마, 저 아기 봐봐. 귀가 막혔어. 귀에 뭐가 있어!!! 뭐야?' 마음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나쁜 의도라고는 전혀 없는 아이의 순수한 질문이었다. 귀가 막혔다니. 비록 다 들렸을지언정 아이는 엄마에게 손으로 입을 가리고 속삭이고 있었다. 상황을 보진 못했지만 엄마는 대답해주지 않았다. 그러자 아이는 엄마를 채근했다. '엄마 저거 봐 봐. 아기가 귀가 막혔어!!'
평소 이런 상황이 닥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해왔고, 대답도 나름 준비해뒀던 터라 나라도 저 아이의 호기심을 해소해 줘야 하나 싶었다. 그때 아이 엄마가 말했다. '너 눈이 잘 안 보여서 안경 쓰잖아, 아기는 귀가 좀 안 좋아서 보청기라는 걸 끼우는 거야 안경 같은 거야' 아이는 대답했다. ' 아, 그렇구나' 그뿐이었다.
그 순간이 상처가 되지는 않았다. 우리 부부는 준이가 보청기를 끼우는 것을 받아들였고, 의연해지기로 했다. 다만 어린이집을 가고, 학교를 다니게 되면 마음에 상처 받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보청기로 인해 괴롭힘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이 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저 귀여운 아이와 어머니의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대화는 나에게 위로가 되었다. 어머니는 실례를 한 것처럼 아이를 제지하거나 소곤거리지 않았고, 아이는 단순히 준이의 귀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했을 뿐이었다. 더 이상 물어보지도 관심을 두지도 않았다.
나는 이렇게 대답을 준비했었다. '눈이 안 좋으면 안경을 쓰듯이, 귀가 안 좋아서 보청기를 쓰는 거예요~' 이렇게 심각하지 않고 가볍게 이야기하겠다고. 안경을 쓰는 게 아무렇지 않듯이 보청기도 아무렇지 않게 인식될 날이 올 거라고. 그런 의미에서 누군가가 나처럼 생각해 줬다는 것이 작은 위로와 감사가 되었다.
보청기를 아무렇지 않은 듯 이야기해줘서 고마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