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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심이 Feb 06. 2020

[아빠편] 벽을 뚫는 내내 아이는 깨지 않았다

아무리 보청기를 뺐다고 하지만…

지난해 10월부터 부모님 댁에 들어와 살고 있다. 부모님은 오랫동안 품은 꿈을 이루기 위해 해외로 떠났고, 내게 빈집을 관리해 달라고 했다. 회사와도 가까워지고 마침 넓은 집이 필요했던 터라 나로서는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집은 오래된 동네에 있는 낡은 아파트다. 바로 앞에 뒷산이 있어 거실 풍경이 계절마다 바뀐다. 여름에는 능선을 타고 서늘한 바람이 내려와 부모님은 에어컨 없이 지내셨다. 나는 오자마자 신혼 때 알게 된 에어컨 설치 기사님을 호출했다.     


기사님은 집을 한 번 둘러보고 나서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실외기를 본체에 연결하기 위해서는 안방과 거실 벽을 뚫어야 한다고 했다. 공사 시간은 4시간. 아뿔싸,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준이는 낮잠에 든 지 얼마 안 됐고, 아내는 집에 오려면 멀었다. 곧 있으면 소파와 다른 가구들이 줄줄이 배송 올 텐데. 만약 준이가 소음에 깨면 나 혼자 보고 있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뜨다다다!!!     


기사님은 말씀을 마치고 나서 바로 공사를 시작했다. 드릴이 시멘트벽을 박아대기 시작하자 천둥 같은 소리가 아파트 전체를 울렸다. 나는 아이 방으로 달려가 준이를 살폈다. 아이는 이불을 껴안은 채 세상모르고 잔다. 아무리 청력이 안 좋다 해도 신생아가 이렇게 잘 잘 수 있는 건지. 안도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르겠는 상황에서 나는 공사 내내 헛웃음만 쳤다.     

ZZZ…


난청 부모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가 있다. 카페에는 내가 겪은 에어컨 설치 사례 외에도 비슷한 사연이 수시로 올라온다. 보청기를 착용해도 소리에 반응하지 않는 아이. 소리를 찾지 못하는 아이. 소리가 ‘소리’인지 모르는 아이. 거꾸로, 재난 문자 알림 소리를 듣고 아이가 잠에서 깨 기뻐서 울었다는 사연도…. 이런 이야기를 접할 때면 마음이 착잡해진다. 육아가 어렵다.      


아이의 청력 상태는 내가 몰랐던 사실도 아니고 인정하기 싫은 현실도 아니다. 부모들은 아이가 어떤 모습으로 태어났든 다른 누구보다 예쁘고 사랑스럽고, 자랑스럽다. 결함이나 장애, 이런 단어는 객관적인 상태를 의미할 뿐, 아이의 존재 가치를 판단할 수 없다. 그러나 갑자기 예기치 못한 상황과 마주하게 되면, 나도 모르게 중심을 놓칠 때가 있는 것 같다.      


카페에는 연민과 동병상련의 목소리만 존재하지 않는다. 주어진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이를 디딤돌로 삼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부모님들이 훨씬 많다. 나는 그분들에게 늘 배운다. 내게 정말 필요한 건 건강하고 의연한 마음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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