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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심이 Feb 20. 2020

[아빠편] 아이의 언어 치료, 올 게 왔다

말하고 듣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책을 좋아한다. 물고 뜯고 씹기만 하지만…� 

준이는 지난해 12월부터 언어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처음에 간 곳은 서울 마포구에 있는 한 센터. 보청기 상담과 판매, 피팅을 병행하는 유명한 곳이다. 


우리 아이가 언어 치료 센터에 다니기 시작했다고 말하면 지인들이 꼭 물어보는 말이 있다. 


"언어 치료를 하면 뭐해?" 


쉽게 말하면 언어 치료는 소리가 '소리'라는 것을 인지하고, 소리가 어디에서 들려오는지 탐지하고, 당사자가 소리를 낼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전문 용어로 '청각 언어 중재'라고 부른다.


난청 아동에게 소리는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다. 난청 아동은 잘 안 들려서 또는 익숙하지 않아서, 집중을 못해서, 소리를 쉽게 듣지 못한다. 이러한 경험이 반복하면 아이는 소리를 잘 인지하지 못할 수 있다. 청력도 퇴화할 수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대다수 난청 아동이 보청기를 착용하기 시작하면 곧바로 언어 치료를 받는다.  


거창하게 말했지만 겉에서 볼 때는 그냥 1시간 동안 언어치료사 선생님과 재미있게 노는 거다(;)

처음에 선생님은 준이에게 북을 두드리게 했다. 손바닥으로 북을 칠 때 발생하는 무언가를 느끼면서, 그것이 '소리'라는 것을 알게 해 주려는 의도다. 다음으로 뒤에서 종을 '땡' 하고 쳤다.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아이가 탐지할 수 있는지 점검하기 위해서다. 이외에 다양한 악기와 장난감과 놀면서 
소리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도왔다.


언어 치료는 보통 주 1회 1시간 진행한다. 청력 상실이 큰 경우에는 일주일에 두 번 받기도 한다. 다행히 준이는 보청기를 착용하고 나면 소리를 제법 잘 인지했다(보청기를 껴도 잘 안 들리는 경우가 있다...). 방향도 잘 맞추고 탐지 능력이 좋았다.

하지만 난관이 하나 더 있었다. '말'이다. 

선생님이 시켰다. 비누방울 놀이가 도움이 많이 된다고. 손이 너무 앙증맞다� 

올해 1월부터 준이는 다른 센터로 옮겼다. 우리는 아이가 제법 소리를 잘 듣는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다음 단계인 '말하기'로 넘어갈 차례였다. 준이는 아직 '엄마'와 '맘마' 밖에 할 줄 몰랐다. 생후 13개월이라 아주 늦은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앞으로 말을 잘하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할 것 같았다.   


두 번째로 간 곳은 언어 치료만 전문적으로 하는 센터다. 이곳의 특징은 아이들이 평소 집에서 말하는 법을 연습할 수 있도록 부모들을 교육한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첫날부터… 많이 혼났다.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평소 준이에게 말하는 습관을 고치라고 했다. 난청 아동은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제한적이니, 표현을 간결하게 하라고 했다. 아이가 언어와 그 의미를 쉽게 익힐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예를 들어, 물건을 달라고 하면 "줘~~~~"라고, 포개져 있는 블록을 하나씩 들어오릴 때는 "빼~~~"라고, 과자나 과일을 줄 때는 "간~~~~~~식~~~~"이라고, 표현을 줄이되 발음은 길게 하라고 했다. 그러면서 조금씩 "사과 줘", "엄마한테 줘" 라고 문장 길이를 늘리면 된다고 했다.


준이의 또 다른 문제는 발화가 잘 안 된다는 점이다.  무언가를 만지거나 어디로 가고 싶으면 턱이나 손을 가리키며 '음', '응' 이라고 소리를 냈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이거 먹을 거야?", "저 장난감과 놀고 싶어?" 라고 말하는 습관을 버리라고 했다. 문장 끝을 올려서 말해 버릇하면 아이도 '응', '음'에만 익숙해진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의성어, 의태어 등으로 사물을 표현하는 놀이를 했다. 곰 인형을 꺼내며 '곰 세마리~'를 부르거나 뱀 인형을 꺼내며 '쉬~~~~~'하고 소리를 냈다. 선생님은 아이가 특정 소리를 들으면 대상을 연상할 수 있도록 집에서 계속 연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많이 먹고 쑥쑥 커라 

선생님은 단호했다. 자신이 갖고 있는 지식에 대한 확신이 가득차 보였다. 우리는 작은 강의실 안에서 매주 1시간씩 선생님께 혼났다. 센터에 가는 날이 되면 전날 밤부터 아내는 또 혼날 걸 생각하면 가기 싫어진다고 했다. 그래도 꾸역꾸역 지금도 나가고 있다. 


아이들은 언제부터 소리를 듣기 시작하고 언어를 익히기 시작할까. '엄마', '맘마', '아빠빠'라고 말하는 데는 어떤 원리가 작동하는 걸까. '밥 먹어', '기저귀 갈자', '코-자자' 라는 말을 언제부터 알게 되는 걸까. 


나는 누나와 함께 살면서 조카들이 자라는 걸 가까이 지켜봤는데, 그때는 이런 것들이 궁금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아이들의 키가 커지고 뼈가 굵어지는 것처럼 말하고 듣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준이가 난청 판정을 받고 나서부터는, 이런 자연스러운 일이 대단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매주 언어 치료를 마칠 때마다 나는 몇 번이나 부끄럽고 답답했다. 나는 부모가 되면서 선생님보다 아이 상태를 잘 몰랐다. 아이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도 잘 몰랐다. 아이가 태어났다고, 부모가 되었다는 이유로 관련 지식과 노하우가 저절러 얻어지는 게 아니었다. 아이는 저절로 자란다는 말은 절반만 맞는 말이었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노력과 의지를 쏟아야 하는 능동적인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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