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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뜻 밖의 백수 Oct 16. 2020

02)내가 직장을 잃게 되어 미안하다는 아빠

퇴근 후 집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이 날도 다른 때와 다름없이 모든 업무는 출근한 지 한 시간도 안되어 끝이 났고, 사무실은 여전히 조용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고용유지 지원금이 더해진 소정의 월급을 받고 있으니 하릴없이 멀뚱히 앉아있을 수는 없어 없는 업무 거리라도 만들어 내며 시간을 보내다가 여섯 시가 채 안된 시간에 퇴근을 하고 집으로 가던 길이었다.


"오늘은 출근했니?"

"응, 오늘은 출근하는 날이었어. 근데 좀 빨리 퇴근해서 이제 집에 가는 중이야."

"그래. 밥은 먹었고?"

"아니, 아직 안 먹었지. 집에 가서 먹으려고. 아빠는 저녁 먹었어?"

"아빠도 이제 집에 가서 먹어야지."

"응."

"회사가 요즘도 많이 안 좋지?"

"아무래도 9월까지만 출근하게 될 것 같아. 확실하진 않은데 분위기가 그렇네."

"그래. 네가 요즘 많이 힘들겠다."

"처음엔 힘들었는데, 이제는 많이 의연해졌어. 괜찮아."

".... 아빠가 미안하다."

"에이. 아빠가 뭐가 미안해. 코로나가 아빠 때문에 생긴 것도 아닌데. 걱정하지 마."

"딸이 상황이 이렇게 되었는데 아빠가 도움도 주지 못하고 미안하지. 그래도 어디서든 용기 잃지 말아라."


복잡한 2호선 지하철 안에서 아빠와의 간단한 통화가 끝났다. 아빠는 통화 내내 나를 안쓰러워하는 목소리였다가 끝내 나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아빠는 무엇이 그렇게 나에게 항상 미안한 것일까. 아빠는 내가 대학교를 졸업한 후 취업 준비로 고군분투하고 있을 때도 미안해했고, 올해 초 내가 대출을 받아 이사할 때도 미안해했다. 뭐가 그렇게 미안하냐고 아빠에게 웃으며 물으면, 그냥 아빠는 딸에게 항상 미안한 거라고만 했다. 

나는 세 살 터울의 언니와 일곱 살 어린 남동생 사이에 끼어있는 둘째 딸이다. 방황의 시기를 혹독하게 겪었던 언니를 대신해 나는 꼭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진학하길 바라셨던 부모님의 바람대로 어찌어찌 성적에 맞춰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합격해 부모님의 도움으로 학교 근처 작은 원룸에서 월세 살이 자취생활을 시작했다. 우리 집은 경제적으로 풍요롭지는 않았지만 나의 부모님은 자식에게 필요한 지원에는 아낌이 없으셨다. 

내가 첫 직장을 들어간 뒤 처음 맞았던 어버이날, 빳빳한 5만 원 세 장 씩을 각 봉투에 넣어 엄마 아빠에게 드렸을 때 나의 울보 엄마는 네가 힘들게 일 해서 번 돈인데 미안해서 어떻게 받냐며 눈물을 보이셨고, 아빠는 고맙다며 봉투를 들고 방으로 들어가서는 한참을 앉아계셨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엄마는 내가 드린 돈으로 부처님 오신 날에 엄마가 다니시는 절에 내 이름으로 연등을 달아 소원을 빌고 남은 돈으로는 내가 먹을 영양제를 사서 보내셨다고 한다. 토막 난 월급을 받고 있는 올해의 어버이날에는 5만 원 권 두장 씩만 넣어서 드리며 코로나 끝나면 올해 못 드린 용돈까지 다 드리겠다고 머쓱해했는데, 서울로 돌아와 짐가방을 정리하는데 가방 바닥에 내가 엄마에게 드린 용돈 봉투가 반으로 접혀 다시 들어있었다. 봉투의 겉면에는 이번 어버이날 용돈은 마음만 받을 테니 상황이 좋아지면 용돈은 그때 줘도 된다는 급하게 적은 엄마의 짧은 편지가 쓰여있었다.


저녁을 먹고 대충 집을 치운 뒤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웠다. 잠이 잘 오지 않아 몇 번을 뒤척거리다가 문득 아빠와의 통화가 다시 떠올랐다. 미안하다고 나직이 말하는 아빠의 목소리. 아빠는 뭐가 그렇게 미안한지 아직도 잘 알지 못하겠다. 오히려 굳이 미안해야 하는 사람을 따지자면 서른이 넘어서도 아빠가 미안해해야 하는 딸이 되어버린 내가 아닐까. 나도 부모가 되면 그때서야 아빠가 나에게 미안한 이유를 알 수 있을까. 내가 부모는 될 수 있을까. 결혼을 할 수는 있을까. 그러려면 얼른 다시 취직이 되어야 할 텐데..

인간은 하루에 많게는 5만 개의 생각을 한다고 어느 책에서 읽은 적이 있는데 나는 요즘 50만 개도 넘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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