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9일.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화요일. 출근 마지막 날.
다른 날과 다름없이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 똑같은 마음으로 출근 준비를 했다. 오늘을 마지막으로 잠시 서울을 떠나 고향에서 연휴를 보내고, 연휴 마지막 날에 꼭 서울로 돌아와야 할 이유가 없어졌으니 내키면 며칠 더 엄마 집에 머무르며 엄마 밥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지난 명절에 꾸렸던 짐보다 옷 몇 벌을 더 챙겨 짐가방을 싸들고 마지막 출근을 했다.
전 날 챙겨간 다섯 개의 여름, 겨울용 텀블러와 머그컵을 마지막으로 그동안 조금씩 소지품들을 버리거나 집으로 가져갔던 덕에 입사 이래 가장 깨끗해진 책상 앞에 앉아 마지막까지 거처를 정해주지 못한 나의 명함 수십 장을 바라보며 한번 더 고민했다. 5년 전, 결혼과 동시에 퇴사하셨던 권 대리님이 파쇄기 앞에 쪼그려 앉아 명함 수십 장을 갈아 없애던 모습이 떠올랐다. 한 때는 하루에 세네 장씩 뿌려졌던 내 명함을 차마 내 손으로 파쇄기에 쑤셔 넣을 수는 없을 것 같은데 그렇다고 집으로 가져가자니 결국에는 어디 저 구석에서 먼지만 소복하게 쌓여가다가 어느 날 쓰레기통에 던져지겠지 싶어 명함은 사무실 책상에 그대로 두기로 했다. 버려지더라도 내가 아닌 누군가의 손으로 내가 모를 때 버려지는 게 차라리 내 마음이 편하지 싶었다.
점심시간에는 함께 마지막 출근을 한 두 명의 동료들과 즉석 떡볶이를 먹었다. 우리 회사의 장점 중 하나가 점심식사를 회사 카드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었는데, 가장 맛있는 것을 먹고 오라는 원장님 허락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패밀리 레스토랑이라도 갈까 싶다가 회사 근처에만 있는 즉석 떡볶이집에 가기로 했다. 떡볶이에 먹고 싶은 사리를 마음껏 추가하고, 모둠튀김과 음료수까지 시키는 것이 우리가 결정한 '회사 카드로 먹는 가장 맛있는 마지막 점심'이었다. 점심시간 한두 시간 정도 뒤에 지금 떡볶이를 먹고 있는 이 세명의 직원이 동시에 퇴근 겸 퇴사를 하게 될 예정이었는데도 우리 셋은 별다른 내색 없이 어제의 점심시간과 비슷한 주제로 대화를 하며 떡볶이를 먹었다. 하지만 왜인지, 떡볶이는 먹은 듯 안 먹은 듯 반 이상이 남았다.
연휴 전 날이었지만 고향으로 내려가는 사람은 나 밖에 없었다. 고향이 서울인 직원과 코로나 때문에 이번 명절엔 내려가지 않는다는 직원, 그리고 진짜 간판을 내리게 되는 날까지 사무실의 문을 열어두고 싶다는 원장님을 포함한 세 명의 운영진이 사무실을 지켰다. 나는 양치를 하고 칫솔과 마침 다 쓴 치약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깨끗해진 책상을 다시 한번 정리했다. 그리고는 가끔씩, 최근에는 조금 더 자주 받았던 관계사 담당자들의 '오늘을 끝으로 퇴사하게 되었습니다.' 식의 이메일을 작성해야 할지 망설였다. 그러다가 이내 혹시라도 기적적으로 코로나 백신이 올해 안에 개발되거나 더 기적적으로 올해 안에 확진자가 전 세계적으로 급격히 줄어들면 언제라도 다시 출근하게 될 수도 있다는 누가 들으면 코웃음 칠 희망이라도 일단은 품고 있고 싶어 퇴사 이메일은 쓰지 않기로 했다.
오후 세시. 이제 사무실을 떠날 시간. 남아있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눴다.
"당분간 회사는 잊고 푹 쉬어요.",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어요. 종종 꼭 만나요 우리."
월요일 오전이면 월요병에 시달리느라 저마다 세울 수 있는 최대한의 날을 세우고 말없이 키보드만 탁탁 두드리던 사람들.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 확인할 시간도 없을 정도로 바쁜 시즌에는 점심시간도 제각각에 농담 한마디 주고받을 새 없이 열심히 일했던 사람들. 사람을 대하는 직업이다 보니 종종 사람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힘들어하는 직원이 생기면 같이 욕하고 다독이며 으쌰 으쌰 했던 사람들. 나는 매일의 퇴근 인사였던 "수고하셨습니다." 대신 "안녕히 계세요."라고 인사한 뒤 사무실을 나왔다.
스물여섯에 직장생활을 시작해 6년 동안 직장인으로 살며 이 회사에서만 5년을 일했다. 일요일 밤마다 다음 날 출근할 생각에 우울했고, 비나 눈이 끝없이 쏟아지던 어떤 날의 밤에는 출근할 수 없을 만큼만 더 내렸으면 좋겠다고 중얼거리기도 했었다. 며칠 동안 계속되는 야근에 '나는 이렇게 일만 하려고 태어난 건가.'라는 의문을 품으며 녹아버릴 것만 같은 몸을 지하철에 구겨 넣는 때도 있었다. '때려치우고 싶다.'라는 생각은 아마 지난 6년 동안 평일 아침마다 안 한 적이 없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정말 회사를 다니기 싫었는데, 그렇게 원하던 백수가 이제 진짜로 되었는데 왜 자꾸 섭섭하고 두려운 마음이 드는지.. 내가 원해서 그만두는 상황이었다면, 갈 곳이 정해져 있는 퇴사였다면 후련함만 느낄 수 있었을까.
9월 29일.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화요일. 나의 직장생활이 끝났다. 동종업계도 같은 이유로 문을 닫거나 직원을 해고하고 있어 당분간은 동종 업계로의 이직도 어려운 백수가 되었다. 하지만 마침표는 아니다. 나는 아직 서른두 살. 인간의 수명이 100년이라면 나는 이제 3분의 1 지났다. 비록 지금은 직장을 잃어버린 조금은 가련한 신세가 되었지만, 내가 생각하고 계획했던 나의 인생의 시나리오에 '코로나로 인한 실직'은 없었지만 괜찮다. 나는 아직 서른두 살, 마침표가 아닌 쉼표를 찍고 정말 잠시만 쉬면 된다. 그리고 또 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