뱁새의 울부짖음
라고 세상에 외치고 싶은 순간이었다.
J와 헤어지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J는 인생의 가장 첫기억이 예쁜 공주옷을 입고, 무대에서 모두의 주목을 받던 모습이라고 했었다.
J는 티없이 맑고 밝았다.
사람들의 장점을 일일이 봐주고 장난과 유머로 말을 건네는 그는
내가 첫 기억에서 상상한 바로 그 어린 아이의 모습 그대로였다.
나는 부쩍,
글을 쓰지 않았다.
글을 쓸 여유를 두지 않았다.
머릿 속을 '궁리'로 채웠다.
빨리 뭔가를 이뤄낼 '궁리'
해낼 일이 무엇인가를 찾아낼 '궁리'
어떻게 하면 더 잘할까하는 '궁리'
물론 나는 나를 더 잘 키우기 위함일 뿐이었다.
이 얼마나 엄마의 대사 같은가?
"나는 너를 더 잘키우려고 그랬던 것 뿐이야."
문득 나처럼, 가족이 없거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어떤 여성들이 그리워졌다.
만난 적도 없는데 그리웠다.
가족을 구한다고, 우리 서로 가족이 되어주자고 울부짖고 싶었다.
엄마의 생일이라며, 이마트 트레이더스에 새우 강정을 사러 가는 J는,
그것 가지고 생일 선물이 되냐는 나의 말에
'엄마는 내가 선물'이라고 했다며 새침을 떼었다.
익숙해진 외로움이 냄새를 풍겨왔다.
이제 그 냄새는 내가 방문을 열고 맞이하는 공기에서 만나는 그 냄새고
일주일 정도가 지나면 쿰쿰한 화장실 냄새가 올라와
내 소매 걷어부쳐 박박 닦고 흘려보내야 하는 곰팡이다.
쓸지 않고 닦지 않으면 어김없이 올라와 눈 깜짝할 새 사방으로 번질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솔질 몇번만 밀리지 않고 해주면, 금세 또 없어진다.
외로움은 그런 것이다.
M은 내가 본 어떤 사람보다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이다.
항상 웃는 얼굴을 하고 있으며 먼저 인사를 건넨다.
울상이거나, 급해보이거나, 자신을 굽혀 낮춘 적이 한번도 없다.
그렇다고 건방지거나 도도한 것도 아니었다.
궂은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습관처럼 했다.
심지어 엄청나게 지각을 해서 늦게 왔을 때에도, 깔끔하게 사과하고 그만이었다.
어떠한 저자세도 취하지 않았다.
섣불리 말하지 않고, 전혀 아는 체 하지 않지만
나중에 알고 보면 우리 중 가장 잘 아는 사람이었고,
이미 해놓은 공부가 있는 사람이었다.
왜 말하지 않았냐고 하면,
잘 몰라서 그렇다고 한다.
나는 그에 비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먼저 말을 하고,
말하지 않으면 입에 가시라도 돋힐 듯 동네방네 퍼트린다... 라는 방향으로 생각은 항상 흘러버린다.
이런 비교가 너무 힘들었다.
세상에 정답은 없으니, 나도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그래도 아무래도 M의 태도가 사회에서나 인성적으로나 살아남기에 유리해보였다.
뱁새는 황새를 따라가면 안되었지만, 자꾸만 짧은 다리를 탓하게 되었다.
뱁새
뱁새를 검색해봤다.
엄청 귀여웠다.
내가 잊고 살았던 것은 이것이다.
뱁새는 애초에 긴 다리가 필요없다.
뱁새는 황새가 아니기 때문이다.
뱁새는 숲 속이나 풀 사이에 숨어 있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또한 뱁새와 황새는 서식지가 달라 마주칠 일이 없다.
뱁새는 눈에 띄지 않게 잘 숨는 것이 필요하며, 둥지를 잘 만든다.
뻐꾸기는 이를 노리고 뱁새의 둥지에 알을 맡긴다.
나의 능력과, 진짜 경쟁자는 누구인가?
나 뱁새는 그만 M 황새를 놓아주고 내 둥지를 잘 짓고 싶다.
안타까운 점은, 자연과 달리 우리는
뱁새도 황새도 뻐꾸기도 모두 같은 서식지에 살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그래서 이게 느껴질 때마다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다는 느낌이 강렬히 든다.
누가 뭐래도 내가 최고라고 말해줄 어떤 곳으로.
거짓말이 아니라 진심을 다해줄 곳으로,
타인의 존중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고슴도치 엄마처럼 콩깍지가 쓰인 어떤 곳으로.
그 곳이 집이고, 아마도 가족일 것이다.
나는 집에 있는데, 집에 가고 싶었다.
나에게 이미 엄마는 없는데, 엄마가 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