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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순미 May 08. 2024

이왕이면 딱 들어맞도록

공깃돌

여행 가방을 정리하다 앞주머니에 나란히 들어있는 공깃돌을 발견했어요. 바닷가에서 주운 건 확실한데 어느 해변인지는 가물가물하네요. 그것으로 공기놀이한 기억도 없고요. 잔돌이 많았던 바닷가에서 어린 날이 떠올라 무심코 골라 넣었던 거겠죠.


아이들 키울 때 문구점용 공깃돌로 놀아준 적 있었는데 그 후론 글쎄요, 공기놀이를 해본 기억이 어슴푸레하네요. 그땐 아이들이 놀랄 만큼의 실력이었죠. 지금은 손이 뻣뻣해서 잘 집히지 않더라고요. 실은 가방 정리하다 말고 공기놀이를 해봤거든요.  알 잡기가 제일 어려웠어요. 게다가 자꾸 술수를 부리기까지 하데요. 공기알이 두 알 세 알에 맞게 놓이도록 가운뎃손가락을 손바닥 쪽으로 구부리며 알을 가르는 거예요. 공기놀이 할 때 요런 식으로 얌치 빠지게 상대편이 난리를 쳤잖아요. 반칙이라며 옥신각신 다투면서재밌게 놀았던 장난감이었죠.


어릴 때 가지고 놀았장난감에 공깃돌 말고 이 있었는지 딱히 생각나는 게 없네요. 레고도 아니었고 포켓몬 딱지는 더구나 아니었죠. 아, 종이 인형 놀이는 자주 했었네요. 가위로 오리다 직사각으로 달린 작은 걸이까지 잘라낼까 봐 조심히 다루곤 했었죠. 잘려나가면 의상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종이 조각이 돼버리거든요. 서툰 가위질로 인형 옷을 오리느라 집중할 때면 입이 저절로 앙다물어졌죠. 지금 그렇게 오리다간 담이 결려 며칠은 고생할 거예요.


들 키울 땐 장난감이 실물처럼 정교하고 세밀했지요. 주먹이 발사되는 변신 로봇에 단계별로 크기가 다른 레고까지 있었죠. 가스레인지나 주전자 같은 소꿉놀이는 실제로 사용해도 될 만큼 적당히 축소된 크기여서 탐날 정도였고요. 음향 효과도 뛰어나 가스레인지에서 나 찌개 끓는 소린 입맛을 다시게 했죠. 정말이지 제 소꿉놀이와는 차원이 달랐어요. 덕분에 엄마인 저도 소꿉놀이에 흠뻑 빠졌더랬죠. 딸 아인 마트 놀이에서 헤어나지 못해 일찌감치 장래희망을 정하기도 했었네요. 카드결제 가장 많이 받캐셔가 겠다고요.


지난겨울 직딩 딸이 엉뚱하게 스노볼메이커(눈사람 모양 틀) 주문했지 뭐예요. 눈사람, 눈오리, 눈펭귄, 눈곰 등 모양도 다양했어요. 어린 날 마트놀이에 빠져 눈사람을 제대로 만들어보지 못했던 게 아쉬웠던 걸까요?  오는 날 여러 모양을 찍으며 실실대는 딸을 보니 괜스레 저도 싶더라고요.


나이가 몇 갠데 이런 걸 주문한다니?


처음엔 살짝 가자미눈이었지만 눈이 많이 오던 그날 두 여잔 눈사람, 눈곰 등을 일사천리찍어내며 겨울 동심에 흠뻑 젖었답니다.

어른이 되고 나선 흠뻑 빠질 만한 시간과 자주 만나지 못했어요. 그런 시간을 갈구하던 때가 분명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턴가 훌쩍 지나가는 재밌는 시간보다 쉬는 시간을 더 원하더라고요. 뭔가를 해내고 이루기보다 그저 뒹글거리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상을 꿈꾸며 말이죠. 막상 그렇게 된 지금은 바빴던 시간이 그리워집니다. 그래서 또 일을 만들고요. 어쩌란 건지. 나 원 참!


이래도 저래도 만족할 수 없을 땐 그저 지금만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요? 빠르게 가든 느리게 가든 개의치 말고요. 대신 돌아볼 때마다 가을 들판처럼


딴딴하게 여물었구나


하는 날들로 꾸며가면 되겠죠. 이왕이면 훗날 기억이라는 퍼즐판에 딱 들어맞도록요.


공기놀이를 하다 보니 해체된 시간들이 산발적으로 떠오르데요. 맥락 없는 회상처럼요. 기억판에 명확하게 들어맞는 장면들있는가 하제 위치를 찾지 못해 맴도 시간들도 있더군요. 자리가 불분명한 시간들엄밀히 말하면 꺼지라고 소리치고픈 시간이라 해야겠요.


어차피 다 지나간 날들이에요. 더는 파랗던 시간들과 동행할 수도 없게 됐고요. 너무 멀어져 낯서니까요. 류근 시인이 그러더라고요. 


자기 가슴에 닿지 않는 시는 그냥 무시하면 됩니다


라고.


지난날그렇지 않을까요? 가슴에 닿아 뭉클한 장면이 있는가 하면 고개 돌려 그냥 무시하고픈 간도 있기 마련이잖아요. 지금부턴 담아두고 싶은 시간들만 데리고 새로운 시간을 맞이하러 가려고요. 마주칠 시간 역시 생소하지만 지난날보다는 좀 더 능숙하게 맞닥칠 수 있을 듯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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