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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순미 Apr 27. 2024

맘에 잡힌 어휘

단념

기억을 잡고 있는 어느 소절이 문득 생각날  검색창에 적으면 언제노랠 들을 수 있는 시대 그리고 우리.


그대 떠나는 날엔 비가 오는가


네이버에 검색하니 두 가지 버전이 뜬다. '산울림' 외에 '잔나비' 버전도 듣기에 꽤나 좋다. 세상 참 편해졌다. 어릴 땐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곡을 공테이프에 녹음해야지만 원할 때마다 그 노랠 들을 수 있었는데. 내 입을 통해 '나 때는' 버젓이 회상될 줄이야.


아, 진짜 나도 고인 물이 맞는가벼


멋쩍은 웃음을 흘리며 노랠 들었다.


두마한강 푸른 무뢰 노 젓는 배헷싸하아


아버지는 이 노래를 가끔 흥얼거리셨다. 아버지가 흘러간 노랠 되는대로 불러대실 땐


닥다리 노래 뭐가 좋다고,

이문세나 이용의 노래가 진정한 가요


괜스레 씨우적거렸다. 아버지의 세계를 괄시하는 방자한 태도란 걸 그땐 미처 몰랐다.


엄마 노래는 기억에 없다. 허밍 정도. 그것도 무엇을 부르는 지 알 수 없었다. 아마도 엄마만 알고 있는 소싯적 노래였지 싶다. 엄마의 시간을 좀 더 풍요롭게 가꾸었을 특별한 노래였을 게 분명하다.


명절이면 작은아버지는 새벽 다섯 시쯤 일어나 기타를 퉁기'신라의 달밤' 등 흘러간 노래 몇 곡을 불렀다. 정말 싫었다.  잠이 부족한 중학생의 삐딱한 시선엔 중년 남성이 기타 치며 부르는 래가 멋있다기보다 소중한 잠을 방해하는 애니(영화 '미저리' 여주인공)의 횡포로 맺혔다. 노래가 다양한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강한 매개체임에는 틀림없으나 때에 따라 훼방꾼의 악의처럼 들려오는 건 귀뿐 아니라 마음으로도 듣기 때문일 다.


최근에 '단념'이란 말이 그렇게 맘 아픈 단어인 줄 새삼 느끼게 된 노랠 들었다. 1999년에 발매된 곡이니 20년이 넘은 노래로 차 탈 때마다 USB에서 흘러나오던 노래였다. 수도 없이 들어왔던 노래지만 이제야 가사가 귀에 꽂혀 '단념'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다.


다른 남자와 결혼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그녀의 부모로부터 전해 듣고는 '나'앞에서 말 못 하고 울었던 얼마 전의 그녀가 그제사 떠오른다. 슬프고 또 아프지만 '나'가 '단념'할 테니 마음 편히 가라고, 부디 행복하라고 멍든 가슴으로 부르는 노래.

'야다''이미 슬픈 사랑' 바로 그 노래.


사랑하는 그녀가 부모의 반대에 부딪혀 '' 아닌 사람과 결혼하게 되었다는데 '나' 멀리서 그녀의 행복을 빌어줄 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 그녀 없인  무엇도 할 수 없지만 어떻게든 살아볼 테니 그녀에겐 울지 말란다. 슬퍼 말란다. '나'를 떠나 행복할 수 있다면 마음 편하게 갈 수 있도록 '단념'하겠단다. 마음에 '단념'을 새겨 넣고 사랑하는 그녀가 미련 없이 떠나기를 바라지만 '나'의 흉중은 문드러졌을 테다. '나'와 그녀가 그 후로도 오랫동안 서로를 그리워하며 아파하는 장면이 영화처럼 떠오르는 노래였다.


'단념'하기가 이렇게도 애달픈 거였는데 그동안 참 쉽게 떠벌였던 건 아닌가 싶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이젠 잊어. 단념해


면서.


이미 마음을 꿰차고 들어앉은 것을 밖으로 내놓는 일이 쉬울 수 있겠냐마는 들이고 아파하다 단념하고 다시 새로운 걸 들이는 과정들이 아마도 우리들 삶이었을 것이다. 삶의 곁에 서서 참아내고 이겨내고 끊어내는 단계를 거치도록 이끈 '단념' 우리에게 감당이란 것도 가르쳤을 것이다. 그런데도 '단념'이란 두 글자가 마치 넘기지 않은 페이지에 적힌 신생 어휘처럼 느껴지는 건 그 말의 무게를 함부로 축소시켜 사용했던 건 아니었을까란 짐작에 가 닿았기 때문이다.


상대의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 제대로 알아채지도 못한 주제에 '단념'이란 말을 꺼내 재단하려 했다면 무슨 위로가 되었을까. 서둘러 덮으려는 궁리를 앞세워 너무 가볍게 사용했다면 또 다른 상처가 되지 않았을까? 미안한 마음이 밀려온다. 무거움이 삭감된 위로라면 행위만 남을 뿐 애초에 의미 따윈 없는 위로에 불과하다. 적절한 말이 떠오르지 않을 땐 차라리 들어주는 것으로 위로를 건네는 편이 오히려 낫지 않았겠나.


수없이 들었던 노래 속에서 느닷없이 잡힌 '단념'이 얼마나 비통한 어휘인 이전의 감정과는 사뭇 다르게 다가왔다. 그렇기에 진심이 녹아 전달돼야 하는 위로엔 섞어 쓰지 말아야겠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같은 말이어도 는 사람이나 처한 상황에 따라 무게감이 달라질 수 있으니 생각 없이 내뱉어 마음을 베는  따윈 않도록 어휘를 자주 매만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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