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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순미 Jan 31. 2024

어른으로 가는 길

웰컴투 삼달리

왼쪽으로 돌아누웠다. 감은 눈을 비집고 눈물이 굴렀다. 콧등을 타고 왼쪽 눈꺼풀을 지나 베갯잇을 적셨. 자려고 누웠는데 드라마 "웰컴투 삼달리"의 장면마음을 꾸욱꾹 눌러대더 기어코 눈물을 짜냈다.


"근데 하율이 있잖아. 지난번에 바닷가 앞에서 우는데 저 정도로 속 깊은 아홉 살은 처음 봤어. 할머니 죽으면 자기 엄마는 누가 지켜주냐고 막 울더라고~"


고래 지킴이 공지찬(김민철 분)의 말에 눈물을 뚝뚝 흘리던 해달이.


해달 앞으로 하율이 달려오자


"너... 그래서 할머니 잠수복 숨겼어? 할머니 바다 가서 잘못되면 엄마 지켜 줄 사람 없을까 봐?"


"난 아직 꼬마니까 엄마를 지켜 줄 수가 없잖아."


"아무도 엄마를 지켜주지 않아도 돼. 엄마는 지킬 게 있잖아. 네가 있잖아. 지킬 게 있는 사람센 거야. 네가 그런 생각을 왜 해?"


하율을 꼭 안고는 펑펑 울던 해달이.


스물 하나에 남편을 잃고 꿋꿋하게 딸을 지켜온 어린 엄마 해달과 제법 똑 부러지게 잔소리해 댈 줄 아는 아홉 살 하율의 대화가 마음에서 내내 꿀렁거렸던 모양이다.


'아홉 살이 어쩜 저렇게 말할 수 있?'


하면서도 하율이 에 자꾸 빠져든다. 어리지만 자신을 낳고 키우며 살아온 엄마의 길이 완만하지 않았을 거란 짐작 또렷하게 하는 것처럼 점잖고 의젓하다. 아직은 어려서 엄마를 지켜 줄 힘이 없다는 사실에 하율의 걱정은 깊은 수심보다 더 짙다.


'이런 게 바르게 사는 거지'


하며 콩알만 한 게 조목조목 따지거나 혀를 찰 때면 기특한 마음이다가도 안쓰럽다. 수많은 일들을 겪어야 어른이 된다고들 하는데 아홉 살 가슴에 웅크려 앉은 어른스러움은 상처인듯해 마냥 가엾고 미안한 마음이 든다. 


눈치는 또 얼마나 빠른지. 우연히 만난 공지찬과 엄마 해달을 엮어주려는 심산이었을까? 느닷없이 엄마를 이모라 부르기도. 놀라운 순발력과 순간적인 기지가 돋보이는 아홉 살 인생이 마냥 마음을 흔든다. 작은 어른이 한마디 한마디 뱉어낼 때마다 올바름이 내게 는 것 같다.


아플 만큼 아파서 너덜너덜해진 후에야  비로소 어른이 된다더니 맞는 말이었다. 단박에 어른으로 서는 게 아니라 조금씩 조금씩 깊이를 더해가는 거였다. 아기가 감기를 앓고 날 때마다 새로운 재롱을 피우듯 퀭하니 기운이 꺼지는 아픔을 겪은 후에야 어른 성장을 더할 수 있. 그리하여 좀 더 나은 어른은 있을지 몰라도 완성된 어른은 없다는 결론이르렀다. 수많은 성장통을 겪으며 성숙한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지 시간이 흐른다고 저절로 어른의 세계에 들어설 순 없는 일이었다. 나이가 들어도 처음 알게 되는 것들이 수두룩한 것처럼 배우고 다듬고 견뎌내며 가꿔갈 때 비로소 깊이 있는 어른으로 나아갈 수 있는 거였다.


"적어도 어른이라면..."


하면서 미리 정해놓은 모습이나 지침에 휩싸여 굳어가는 것도 소극적인 모습이다. 오늘은 입 다물고 지갑만 여는 어른이싶다가도 내일은 주장하고 고백하는 어른이 되고 싶을 수 다. 묵묵히 맡은 일을 하면서 어른이 되기도 하지만 하고 싶은 일에 매달려 성취를 즐기는 속에서도 어른이 될 수 있다. 마냥 양보하면서도 어른이 될 수 있지만 악착같이 내 것을 챙기면서도 어른이 될 수 있다. 남들이 볼 땐 다소 이기적이고 답답하게 보일지 몰라도 그게 내 선택이고 방법이라면 나를 믿고 나가는 것도 어른이 되는 또 다른  수 있. 일반적으로 규정한 어른에 맞추 만족하기보다는 자기만의 방법과 선택을 수시로 점검때 진정한 어른에 가 닿지 않을까.


거친 시절묵묵히 견디는, 불익을 당하지만 맞서지 않고 그저 참아내, 그 한 사람 끝없이 마음으로 지켜주는, 아닌 건 아닌 거라고 확실하게 드러내는, 흔들리지 않고 주어진 일에 책임을 다하는, 마음은 있지만 내놓지 못하고 눌러 담기만 하는, 한 번 정한 마음을 끝까지 지고 가는, 용서가 늦은, 하고 싶은 말을 묻어두지 못하는 "웰컴투 삼달리"에는 여러 어른이 등장한다. 의문이 기도, 갑갑할 할 때도 있지만 자기답게 밀고 나가며 당당한 어른으로 발돋움하는 그들의 모습이 웃음과 눈물을 번갈아 뽑아낸다. 뭣보다 작은 어른 하율에게 눈길이 쏠려 매주 챙겨보는 재미가 쏠쏠다.




2024.1.7. 웰컴투삼달리 12화 시청 후 쓴 글. 현재는 종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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