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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순미 Dec 04. 2024

입맛에 맞는 해석

자기중심적 고사성어

며칠 전 평생학습 교육장에서 협업의 방식에 대해 설명하던 강사가 아전인수와 견강부회를 언급하며 그동안 자신이 겪은 불합리한 태도에 대해 내비친 적 있다. 어느 부분에선 상처가 떠올랐는지 잠시 말을 잇지 못해 학습자들은 위로의 의미로 박수를 쳐주었다. 강사는 협업이 성과를 내려면 개인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상호 존중 및 역지사지가 기본이 돼야 한다며 강의를 마쳤다.


아전인수와 견강부회


두 고사성어는 자신의 입장에 유리하도록 해석하거나 행동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문열>의 엄석대는 자신의 폭력적 행위가 학급 질서를 관리하기 위한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주장하며 동격인 친구들에게 체벌까지 가한다. 이 사실을 아는 담임도 학급 운영의 편의를 위해 엄석대의 폭력을 리더십으로 인정하는 등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며 방관한다.


<동물농장-조지오웰> 등장한 나폴레옹은 모든 동물의 평등을 외치며 혁명을 일으키지만 결국엔 자신의 권력과 안위를 위해 규칙을 바꿔나가며 다른 동물들억압하고 착취한다. 자신의 권익 보호를 위해 아전인수와 견강부회를 도구로 삼은 것과 같다.


<수궁전-판소리계 우화소설>의 용왕은 자기 병에 토끼 간이 특효약이란 걸 알고 토끼를 속여 궁으로 불러들인다. 자기 생명일랑은 소중히 여긴 반면 타인의 목숨 따윈 하찮게 생각한 이기적인 행태 정당화한 것이다. 자신의 목적에 맞게 토끼를 약재로 해석한 현실 왜곡에 해당한다.


나치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는 유대인 학살 정책이 독일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자극하며 합리화하려 들었다. 소련 독재자 '스탈린'도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독재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반대파의 친인척까지 대대적으로 숙청하면서 국가 안정 및 번영에 필요한 과정이라고 강력하게 외쳐댔다. '스탈린'은 <동물농장>에 등장하는 나폴레옹을 상징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허구의 인물이나 실존 인물이나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뜻을 굽히지 않은  본능에 충실했던 탓이다. 경험에서 얻은 학습된 행동일 수도 있겠지만 어떤 상황이든 나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가도록 유도하는 건 본능에 가깝다. 본능적인 행동은 자연스러우며 적합한 생존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사회라는 집단 속에서 내 위치가 무너지면 자신뿐만 아니라 함께사는 가족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잖은가. 불리한 상황이 찾아올 때마다 그대로 무너지다보면 내가 설 자리는 사라지기 마련이다. 내 자릴 지켜내기 위해선 고지를 선점하고 유익한 자원을 먼저 확보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자기를 보호하고 일으킨 저들은 자연스러운 생존 방식을 선택한 자라고 볼 수 있을 텐데 그 누구도 그렇게 인정하지 않는다. 억지, 비논리, 불공정을 앞세워 이성, 윤리, 규범을 누르고 남에게 피해를 입혔기 때문이다. 자기 신념이 현실과 충돌하자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악행, 탐욕, 부당한 이익을 일삼으며 정당화하는 것은 억지 논리에 해당한다.


세상을 지탱하는 수많은 정책과 결정이 어쩌면 누군가를 위한 견강부회이며 아전인수에 해당될지도 모른다. 동물농장의 나폴레옹처럼 사욕을 위한 부당함도 자주 입에 올려 올바르다고 세뇌시키정당함으로 둔갑할 때가 있다. 다수가 일어나 바람직하다고 주장하면 범법 사안도 논점이 흐려질 수 있다. 세월이 지난 후 잘못되었음이 밝혀진들 그 시대 그 사람들은 이미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오타 난 세상에서 오타인 줄 모르고 살다 간 그들의 삶이야말로 견강부회와 아전인수의 피해자인 셈이다. 


이성적 사고와 도덕적 가치가 누락되면 엄석대나 히틀러처럼 위선적이며 폭력적인 인물이 될 수밖에 없다. 내 입맛에 맞게 해석하고 행동하려는 순간 타인의 삶을 부당한 나락으로 몰아가는 건 아닌지 잠시라도 생각해야 한다. 균형 잡힌 선택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조절하거나 억제하여 선한 선택으로 선회해야 한다. 자신의 선택으로 누군가는 심리적 좌절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지난 상처가 떠올라 강의하다 말고 울컥 눈물을 흘릴 수도 있다. 좌절과 눈물의 대상이 나와 내 가족이 될 수도 있잖은가.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려면 자신의 말이나 행동에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공정한 사회를 부르짖으며 나도 상대도 아전인수와 견강부회에 치중한다면 신뢰와 협력이 붕괴돼 문명화 전으로 퇴보할 수밖에 없다. 견강부회와 아전인수에 빠져 남의 눈에 눈물나게 하기 전 자기 통제가 약화되진 않았는지 살피는 과정은 중요한 순서가 돼야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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