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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순미 Dec 19. 2024

악마도 사랑할 여인

그녀 아들은 심 상노무쉬키

그 남자와 살면서 그녀는 남매를 키웠다. 개구진 아들 키우는 집 엄마들이 그러하듯 그녀 역시 나날이 목청이 높아졌고 심 상노무쉬키란 욕설을 달고 살다. 그녀와 함께 사는 남자가 심 씨 성을 가졌기 때문에 상노무쉬키 앞에 성을  일타쌍피의 효과가 나는 것 같았다며 깔깔 웃었다.


그녀의 심 상노무쉬키는 사납지 않다. 센트도 강하지 않 놈을 두 개의 음절로 변형해 느낌을 약화시킨 탓이다. 발음이 우악스럽지 않아 기분 상하게 만든다기보다는 살짝 엄포만 줄 요량었던 듯하. 대학생활 열심인 아들에게 지금은 목청 높일 일도, 욕설 내뱉을 시간도 없다. 오히려 깊은 대화가 오가는 사이가 됐다 배시시 웃는다. 오랜만에 두런두런 얘길 나두던 아들이 그녀에게 말하더란다.


엄마, 난 자라면서 내 본명이 심 상노무쉬킨 줄 알았잖아. 엄마가 내 이름을 정상적으로 부른 적이 거의 없거든. 요즘 나직하게 부르는 내 이름 들을 때마다 어색하고 닭살 돋아. 평소대로 목청껏 심 상노무쉬키라 불러줘 김여사. 으하하 


아들이 그러더 얘길 전하는 그녀 표정 미안스러움이 깃드는 걸 설핏 보았다. 아들은 심 상노무쉬키가 본명인 줄 알고 자랐지만 세계보건기구가 정의한 정신 건강에 딱 들어맞는 청년으로 성장한 것 같다. 자신의 잠재력을 실현하고 공동체에 유익하도록 기여하는 누가 봐도 건실한 청년으로.


상노무쉬키로 아들의 청소년기를 도배한 그녀는 거친 데라곤 눈 씻고 봐도 없을 만큼 곱상한 데다 여리여리하다. 칭찬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어서 적당한 틈에 사람 기분을 끌어올리는 재주가 탁월하다. 바람 따라 날아오르는 창밖의 낙엽 열여섯 감성 드러낼 줄도 안다. 사는 내내 챙기는 역할에 솔선수범해서 그런지 주변 사람들을 수시로 돌본. 식사 자리에선 물컵에 수저를 담갔다가 앞앞이 놓아주고 찌개도 개인 접시에 덜어 일일이 나눠주는 걸 잊지 않다. 어디서든 이쁨 받을 사람이란 확신이 다. 고맙고 미안해서 우린 이구동성 남도 좋지만 본인 먼저 챙기랬더니 오래전부터 자동 시스템화되어 괜찮다고 손사래 다. 그녀가 선택한 삶의 방식에 우린 늘 혜택의 대상이 되곤 한다.


상노무쉬키를 입에 달고 살았다는 게 의아할 만큼 온순 그녀는 외며느리다. 그것도 효자 아들을 둔 시어머니의 외며느리. 결혼 , 50대 초반시어머니에게 매일 안부 전화를 드리지 않으면 호된 꾸지람을 들었다던 그녀. 어렸외며느리라서 반박 없이 따랐다는 그녀는 여태 가족만의 여행을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상노무시키 앞에  씨 성을 달아 일타쌍피를 노렸던 이유가 그제야 납득되었다. 사는 내내 모든 것이 어머니에게 집중된 남편 옆에서 그녀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심중에서 끌어올린 욕설 아들을 향했지만 실적으론 효자 남편의 뒤통수에라도 꽂히길 바랐던 건 아닐는지.


서운억울법한 지난 시간을 얘기할 때 보통은 사실과 감정이 뒤엉켜 성토장이 되 마련인데 그녀는 달랐다. 상한 마음이 만만치 않았을 텐데 자기감정을 절제하며 사실에만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아마도 복잡한 감정이 모두 정리된 상태 듯한깊이가 얕은 사람으로선 그 맘의 형태를 가늠할 길이 없다. 남편의 어머니 시중은 여전히 진행 중이니 정리하지 않고선 그렇게 환한 존재로 살아가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그녀의 표정이나 말투에 구김살 없는 건 주름마음을 다림질해서 단정하게 개어놓았기 때문일 테다. 제멋대로 비틀거리도록 내버려 뒀다면 지쳐 쓰러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마음이 망가지진 않았는지 수시로 점검하며 자신의 상실감에 책임을 다했기에 그녀는 지금의 자유를 얻은 것일 게다. 분노하거나 고통, 놀람을 느끼는 순간 대다수는 감정을 표현하는 가장 극적인 방식으로 욕설을 택하여 즉각적 만족감을 얻는다던데 심 상노무쉬키로 그때그때 정리, 해소하며 자신의 분노를 승화시킨 건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부정적인 감정이 문제 해결을 방해한다고 학습한 사람처럼 늘 긍정적이었다. 때문에 그녀의 태도는 상당히 성숙한 사람의 것으로 느껴졌다. 어떤 상황에서든 이성 중심적 사고를 선호하여 논리적이 간결했다. 이런 성향이 갈등 완화나 문제 해결엔 유리할  있지만 내면의 상처는 자기도 모르게 누적될  있다. 표면적으로 나타난 그녀의 모습이 자신을 억누르는 자제력이 아니었음 하는 마음 간절하다. 그녀는 우리에게 과분할 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왔기 때문이다.


알페 디 시우시 함께 이탈리아 돌로미티 서부 세체다 '악마가 사랑한 풍경'이라며 초록빛 돌산의 능선 화면 가득 장엄하게 펼쳐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그녀야말로  '악마도 사랑할 여인'이란 생각이 들었다. 부정적인 감정을 이겨내고 익어가기를 바랐던 삶의 방식은 그녀가 선택한 온힘이며 지혜이지 않았을까? 깊고 넓은 그녀의 마음이 좀 더 자신을 향해 열리기를 간곡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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