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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슬 Nov 24. 2024

나는 매일 망한다

웃을 수 없는 예능PD의 사양산업 생존기

일요일 새벽 6시 25분. 

발작같이 저절로 눈이 떠진다. 뿌옇게 흐린 눈을 한쪽만 겨우 뜬 채 휴대폰 액정 가까이 가져다 댄다. 그리고 한숨으로 크게 기도 한번 하곤, 엄지손가락으로 끝을 가린 채 조금씩 조금씩 눈싸움하면서 밀어본다. 소수점 끝자리는 8… 그래 앞자리가 중요하다. 1이냐 2냐 3이냐 이 결과가 나의 한주 컨디션과 온 우주의 기운을 결정한다. 싸늘하다. 제발 제발 제발….!    


시청률 1.8. 

엥?? 1.8????? 수도권 일쩜파아아아알? 

… 띠발. 망했다. 난 오늘도 망했다. 아니 그래도 이건 좀 역대급으로 진.짜.망했다. 

이 침대가 땅속 깊이 꺼져 지구 핵까지 파고 들어가 영영 묻혀버렸음 좋겠다. 저 멀리 <지옥에서 온 판사> 목소리가 들린다.     


판사 : 거기 누구 있어요??? 

나    : 네-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당. 전 또 망했거든요. 다신 지구로 돌아가지 못할 거에요.

판사 : 아하! 이번에 1.8 나온 그 분이시구나. 넹. 그럼 영영 묻어드리겠습니당. 파이팅

나    : 네에 다음 생은 파이팅-


다시 자야지. 이건 꿈일 거야. 꿈 이여야 해. 

안타깝게도 이건 꿈이 아니고, 놀랍게도 매주 반복이라는 거다. 

그렇다. 나는 매주 망한다.      



언제부터 시청률에 0 하나가 줄어들었나     


시청률은 세계 1위 시청률 조사 기업 닐슨(Nielsen 자사 홈페이지 曰)에서 새벽 6시 15분~6시 50분 사이에 메일로 날아든다. 그렇게 모든 프로그램 피디들은 방송이 나간 후 익일 새벽에 성적표를 받아 든다. 토요일 방송은 일요일 새벽에, 월요일 방송은 화요일 새벽에. 일주일 내내 시달리다 겨우 방송 완본을 납품하고, 그제서야 피곤한 몸뚱이를 뉘어보지만 다음 날 날아들 시청률 생각에 쉬이 잠이 들진 못한다. 본방송 실시간 반응이나 기사 뜬 거를 좀 보다가, 스태프들끼리 ‘이번 주도 고생했다’, ‘이번 건 그래도 잘 나오겠지’ 하며 다독이는 카톡을 하다가. 이래저래 뒤척이다 보면 어느 순간 소스라치게 놀라 알람도 없이 저절로 눈이 떠지고. 그렇게 어김없이 성적표는 비수가 되어 지난 우리의 고생을 비웃기라도 하듯 시뻘겋게 날아와 꽂힌다.      


심장이, 아니 멘탈이 찢겨 아프다.

아니 나 따위는 아플 자격이 없고, 그저 면목이 없다. 

새벽 이 시간, 성적표는 나만 확인하는 게 아니다. 제작진은 당연하거니와 프로그램을 최종 책임지고 있는 팀/부장,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바로 보고를 받는 국장과 본부장. 재수 없으면(?) 사장까지. 모두가 직후에 확인한다. 떨리며 기도하는 맘으로 ‘제발 오늘은 안 망하길’하고 이 프로그램을 지켜본 건. 나만이 아니란 거다. 

이런 나를 믿고 신규 프로그램을 맡긴 위로 줄줄이 선배들을 볼 낯이 없다.    

 

‘고생했어. 대진운이 너무 안 좋네… 

동시간대 드라마가 17%나 나왔다… 이건 편성 탓이 커’


천사 같은 우리 부장님은 안 그래도 어깨가 축 처져 어좁이가 된 후배를 새벽부터 애써 위로하지만. 그녀 또한 생각할 것이다.

‘임원보고 들어가서 뭐라 하지. 하 띠발. 월요일아 오지 말아라.’     


웃긴 예능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정작 내가 웃을 수가 없다. 

대체 언제쯤 안 망할 수 있을까. 

대체 언제쯤 부끄럽지 않을 수 있을까. 

문제는 내 프로그램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거다. 모두가 TV를 보지 않는 시대. 돈 냄새 좀 나는 그럴싸한 건 넷플릭스로 소비되고, 밥친구로 편하게 보는 건 유튜브로 소비된다. 이는 지상파뿐만 아니라 TV 대중매체에 종사하는 모두가 느끼는 위기다. 그렇게 콘텐츠 소비 지각변동이 일어나는 사이, TV는 갈 곳을 잃어 그나마 시청 습관이 남아있는 우리 부모 세대의 거실에나 겨우 자리보전하게 되었다. 그렇다 보니 이미 자리잡힌 장수 프로그램 말고는 신규 프로그램, 특히 2049 시청률을 겨냥한 젊은 프로그램은 잘되기가, 아니 시청자들에게 ‘인지’조차 되기가 너무나 힘들다. 수요 없는 공급. 그렇게 힘차게 출발한 우리 프로그램은 외면당했고, 나는 또 망했다.      


근데 이 망할 직업의 또 다른 문제는, 아무도 몰라줬으면 하는 나의 회사 생활 성적표가 전 국민에게 모두 열람이 된다는 사실이다. 새벽 6시에 때려 맞은 시청률 성적표는, 아침 9시가 되면 각종 포털사이트에 고스란히 업데이트된다. 그간 어떤 성적을 받아왔는지 추이까지 그래프로 자세하게.       


‘딸, 어려운 상황인데 잘 버텨라. 심적으로 많이 힘들겠구나’

…끙

‘PD님, 힘내세요. 이제 휴가철 끝나면 오를 거예요’

…쩝

‘그래도 ****(더 망한 프로)보단 잘 나온 거 아냐?’

…??????     


할 말이 없다. 

내 성적. 나 혼자만 알아도 충분히 치욕스러운데 이렇게 사방팔방에서 구세군 같은 위로의 말씀들을 던져주실 거면 차라리 돈으로 주시게!!! 

아무도 내 성적을 몰랐으면 좋겠다. 아니 알더라도 같은 속앓이를 하는 이 업계 사람들만 알았으면 차라리 났겠다. 이렇게 검색만 하면 다 나오고, 심지어 이 성적에 대해 악의적으로 써대는 기사들마저 전 국민, 전 세계인에게 까발려지는 건 나 같은 개복치에겐 너무도 잔인한 일이다.      



나의 폭망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   


억울하다. 

이럴 때마다 드는 생각이, 다른 직장인들의 업무 성적표는 비공개 열람인데 왜 나는 모두 열람이 가능할까- 싶은 억울함이다. 삼성전자 김 과장의 인사고과가 어떤지, 일동제약 이 팀장의 영업 실적이 어떤지, 하나은행 박 주임의 고객 평점이 얼마인지 남들이 알게 뭐냐 이거다.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프리젠테이션 시원하게 말아먹고 팀에서 원수가 되어 퇴근해도 가족들은 알 턱이 없고, 대기발령 나서 뒤숭숭한 심정도 말 안 하면 애인도 모른다. 근데 이놈의 일은 걸어만 다녀도 머리 위에 성적표가 동동 떠다니니, 시청률 한번 쎄게 말아먹었다가는 그날은 회사에선 강제 계단 운동이고(엘레베이터에서 마주치는 그 스몰 토크의 시간이 힘들다)  “요새 고생 많겠다”는 평범한 인사말에도 ‘뭐야. 고생은 더럽게 하는데 성적 안 나와서 불쌍하다는 거야 뭐야’ 하며 못난이 자아비판을 하게 된다. 이놈의 성격. 누가 그렇게 너한테, 너의 성적한테 관심 갖는다고.      

결과물에 대해 피 냄새 나도록 후두려 패는 댓글들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이러니 시청률 2%대지’

‘제작비 다 어디로 썼누’

‘머야. 내 최애 왜 이런 식으로 편집함? 피디가 감 없네’     


하면 나도 참지않긔.

나도 할 말은 있다 이거다. 

“여러분은 각자의 직장에서 언제나, 매번, 늘, 항상, 건승만 하시나요? 보고서 밤새 써놓곤 이유도 모른 채 까인 적 있지 않으신가요. 커피 아이스로 주문받아 놓곤 뜨거운 거 내놓은 적 없으신가요. 아이 책가방에 준비물 빼놓고 학교 보낸 주부님 없으신가요. 그거 다 실수잖아요. 의도치 않았던 교통사고 같은 결과물이잖아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이 프로그램이 제일 잘되길 바랐던 건 저거든요. 밤새 노력해서 만들었는데. 맘처럼 안 된 걸 어떻게 해요. 그걸 이렇게 뚜까 패야겠어요?? 전 암말도 안했는데!!! 저 정말 성공하고 싶끄든요????”     


복치 복치 개복치 멘탈. 

성적표 한두 번 받아 보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방송사고가 난 것도 아니고. 자책과 자학이 캐릭터인지라 혼자 울었다 분노했다, 무덤 파고 들어갔다 다시 부활하기를 무한 반복. 

참 이런 내 성격도, 참 유난도 하다.      


“야. 만듦새는 나쁘지 않아, 다음꺼 잘하면 되지”

“다 돌고 돌아. 운이야. <태계일주>가 이렇게 터질 줄 누가 알았겠냐고. PD는 딱 하나만 터지면 돼. 많이도 필요 없어”     


더 많은 전투에서 더 많은 사상자를 내본 선배들의 위로에도 쉽게 회복이 되진 않는다. 하지만 선배들 말이 옳다. 사실 좋게 생각하면 악플일지언정 저런 반응이라도 있는 게 감사한 요즘이다. 수요 없는 공급. 사양산업에 접어든 TV 프로그램에 쨌든 피드백이 있다는 건 방송을 봤든 안 봤든, 좋다 싫다의 관심 표현이라도 해주는 것일 테니 말이다. 일주일에도 수만 개의 콘텐츠가 쏟아지는데, 존재감이라도 어필한 게 어디냐 이거다. 


어쩌겠는가. 대중매체에 몸담고 있는 이상 대중들에게 선택받아야 존재의 이유가 있고, 이는 시청률과 화제성, VOD 지수 등의 서열화된 수치 정보를 대중들에게 제공할 수밖에 없는데. 다 알면서도 이렇게 속상한 건, 내가 이 일에 그만큼 진심이어서일까.      


난 학창 시절부터 진로에 고민 자체가 없었다. 18세 겨울방학부터 내 꿈은 쭉 방송사 PD였고, 10년 후 어쩌다 보니 운 좋게 진짜 되어버렸다. 

그렇게 외길 인생만 달려오다 이렇게 망하게 될 줄도 모르고, 내 선택에 의심 없이 부단히 열심히도 살았다.     


이렇게 망할 줄 모르고     


촬영 땐 새벽 5시 출근, 편집 땐 새벽 5시 퇴근. 

세상이 좋아져 52시간제로 바뀌었다지만 예외 업종인 이 24시간 공장에서, 그래도 우린 재밌자고 일하는 거 아니냐며 쉼 없이 고생을 자처했다. 혹시나 ‘그 날’이 겹칠까봐 험지로 야외촬영을 갈 때면 피임약을 먹었고, 화장실에 가고 싶을까 봐 물도 덜 마셔가며 추울 때 추운 곳에서, 더울 때 더운 데서 일했다. 편집실에 갇혀서는 조금이라도 재밌게 만들어보겠다며 늘 새벽까지 디스크 유발 자세로 앉아 자릴 지켰고, 매주 시사(다 같이 편집본을 보며 평가하는 단계) 전날엔 회사 헬스장에서 겨우 머리만 감아가며 같은 속옷을 입고 밤을 새웠다. 그러다 한번은 이틀 연속 밤을 새우고 운전하며 돌아가는 길에 깜빡 졸아 인천 국제공항 초입까지 가버린 적도 있어, 그 뒤론 이틀 밤을 새면 택시를 타는 내 나름의 슬픈 규칙도 만들었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하지만 그렇게 몸과 영혼을 갈아 넣어도 ‘편집 깔끔하니 괜찮네. 애썼다’ 하는 선배 한마디에 신이 나서는 다음 주를 또 갈아 넣고, ‘요새 이거 챙겨보는 게 삶의 낙이에요’라는 시청자 댓글 하나에 푼수같이 남몰래 혼자 편집실에서 눈물 훔쳐 가며 또 그다음 주를 갈아 넣었다.     


이는 내 이야기지만, 동시에 모든 피디들의 이야기다. 이런 노동강도는 절대 남이 시켜서는 나올 수 없는, 자발적인 성취욕과 보람에서 나오는 아이러니다. 글을 쓰고 있는 주말 저녁, 이 시간에도 누군가는 출근해 엉덩이 한번 못 떼고 심장 졸여가며 편집을 하고 있을 테고, 또 누군가는 12자짜리 자막 한 줄 쓰는데 유서 쓰는 양 썼다 지웠다를 반복할 것이다. 그리고 몇 시간 후, 세상에 없던 오늘자 본방송본 파일을 뽑으며 또 누군가는 간절히 내일 아침 성적표를 기도하고 있을 거다. 이런 노동집약적인 피땀눈물3D 사양산업 속에서 자발적으로 몸과 영혼을 갈아 넣는 이유는 하나다. 그래도 우리가 누군가에겐 웃을 일 없던 하루의 잔잔한 행복이 되어주지 않을까, 지친 하루 끝에 위로가 되어주지 않을까 하는 작은 바람으로.      


비록 난 오늘도 망했지만, 

이 와중에 망하지 않은 생존자가 있다는 건 역설적으로 희망이 된다.

아무리 다들 TV 안 본다, 예능 안 본다곤 해도 이 와중에 임영웅 님이 행차하신 <삼시세끼> 성적표엔 가뭄에 오아시스처럼 풍족한 젖과 꿀이 흐르고, 거대 자본의 <흑백요리사>는 오랜만에 전국적인 유행어와 밈 열풍을 가져왔다. 숱한 이슈에도 흔들림 없는 <나는 솔로>엔 진심으로 엄지척 쌍따봉 샤라웃을 보내고 싶다.      

그래. 임영웅도 없고 거대 자본도 없지만 오늘 망했다고 내일도 또 망할 순 없다. 

이젠 내가 웃기 위해서라도 더 치열한 예능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야 한다. 우리가 이 일에서 얻는 보람이라곤 이 프로그램을 보는 너와 나의 웃음뿐이다.      





연말 대상 회의 자리. 

올해 대상 후보는 신동엽 유재석 전현무 외엔 옵션이 많지 않다. 사실 그런지 몇 해나 됐다. 신규 프로그램이 잘된 게 없으니 큰 상을 줄 만한 뉴페이스도 딱히 없다. 3사 방송사 사정이 다 비슷하다.     

 

“올해 잘 된 프로가 어딨어요. 올핸 좀 건너뛰면 안되요? 아님 진짜 이젠 3사 합동으로 해야되요.”

소신 발언에 점심부터 술에 얼큰하게 취해 들어오신 부장님의 훈화 말씀이 이어진다.

“야. 우리끼리라도 상주고 고생한 사람들 챙겨주고 해야지. 누가 칭찬해 준다고!! 그래서, 축하 무대 맨 앞에 뭘로 한다고?”

“…”

“요새 그 로제의 아파트가 유행이잖아…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야!!! 윤수일 부르자. 윤수일의 구축아파트!!! 원조가 나와줘야지. 이거 화제 되지 않겠어??? 그럼 브루노마스는 누구 하지? 무대 잘 꾸미면 재개발 촥- 되서 반포 원베일리 가는 거야!!!”


뭐야. 이거 농담이야, 진짜야. 

“넹??? 아니, 지코 맨 첫 무대로 하면 되잖…”

“지코는 무슨 지 코가 석 자인데. 엇??? 야. 이 프로그램 어떠냐. 지 코가 석 자인 게스트들 불러다가 지코가 인터뷰하는 토크쇼. 웃기지 않아? 응? 하하하하하”     


… 그래. 

어느 직장인이 회사에서 이런 얘기를 웃어제끼며 ‘회의’로 할 수 있을까. 

가까이서 보면 비극, 하지만 멀리서 보면 우리가 하는 일은 정말 희극이다.      


방송국에선 연예대상, 연기대상, 가요대상으로 한 해를 마무리한다. 이 회의를 시작했다는 건, 어느덧 힘들었던 올 한 해도 다 끝나간단 소리다. 내년은 미디어 시장도, 나라 경제도 더 힘들어질 거라고들 한다. 어쩌면 이 사양산업은 더 큰 파도를 마주할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더욱 소박하게. 

잘되길 바라기보단 그저 내년엔 제발 부디 망하지 않길 기도해 본다. 웃자. 내년엔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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