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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Jan 21. 2021

사랑하는 편지 쓰기

사랑, 감사, 슬픔, 즐거움, 기쁨, 만남, 이별, 기대, 후회, 반성, 회환, 무한한 정서들. 종이는 끝이 보이지 않는 주머니가 되어 수신인을 다른 차원으로 이동시킨다. 부모 자식 간의 사랑조차 무조건적일 순 없지만, 편지를 읽는 동안만큼은 일방적인 마음으로 융단폭격당하길. 상대방의 팍팍한 일상에 뭉쳐있던 마음의 근육이 녹기를. 편지 쓰기의 출발점은 답장도 어떤 대가도 기대하지는 않는 단단한 기반을 딛고 선 나.


편지를 쓰는 동안 기억이 허락하는 영원 속을 부유할 때면 시간은 마치 멈춘 것처럼 느껴진다. 한 발자국 떨어져 추억을 마주하고 있노라면 잊은 지 조차 잊었던 삶의 장면들이 스치고, 나는 뒤죽박죽 때론 엉망진창이기까지 한 영화를 시청하는 기분. 상대방에 대해 생각하고, 그를 대하는 나의 마음도 더듬어 보고. 반성과 평가는 등 뒤에 바짝 붙어 따라온다.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 이기심은 그동안의 실수와 과오를 미화하는 자화상을 비춘다. 시간은 느리게도 빠르게도 흐른다. 머무는 시간, 그리고 곧 다시 흐르는 시간.


존중의 의미로 예의를 차릴수록 문장은 딱딱해지고 현학적으로 변질되니 적당한 선을 찾는 것은 삶의 균형을 맞추는 것과 닮아있다. 힘주어 써 내려간 문장들은 다시 읽어보면 우습고 초라하다.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는 진심에 속상할 뿐. 다른 사람들은 화려한 수식 없이 쉽게도 써 내려가던데, 내 줄글은 주인을 닮아 뒤뚱뒤뚱 무거운 걸까. 투박한, 날것의 표현 만으로도 감동을 주는 글쟁이들에 대한 부러움이 아지랑이처럼 피어나 산만해질 때면 곧 체념. 다시 정성이 상대에게 닿기를 바라는데 힘을 모으다 보면 어느덧 단정히 접어 마무리할 때가 온다. 다시 열릴 때까지 나의  진심이 도망가지 않도록 봉투를 단단히 봉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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