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주사 한 번만 도와주세요.”
“왜? 혈관이 별로 없어요?”
“아뇨, 저한테는 안 받겠다고 하세요. 다른 간호사 불러오래요.”
후배 간호사가 총총거리며 다가와 부탁했다. 도와주는 건 어렵지 않지만 이어지는 말에 입이 쓰다. 듣자 하니 며칠 전에 실패한 적이 있었는데, 얼굴도 앳되고 말투도 여리니 신규 간호사임을 간파하곤 아예 손도 못 대게 한 것이다. 이 사람밖에 없다면 할 수 없지만 다른 방을 오가는 대체재들이 있으니 수령코자 한 것.
선 뜻 도와주지만 마음이 아리다. 거절당하고 다른 사람에게 묻기까지 이 친구는 얼마나 속상했을까. 이번 일은 다른 사람이 해주지만 다른 간호 제공으로 계속 대면해야 할 텐데, 평소 씩씩한 이 친구가 혹 자신감이 떨어져 잘할 것도 실수하여 서로 얼굴 붉히게 되진 않을까.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간호 거절은 환자가 아닌 같은 간호사에게 들은 것이었다. 신규 간호사로 입사했을 때 기본 간호에 대해 재교육하는 시간을 가지는데, 학교에서 배운 내용이지만 졸업을 할 때쯤이면 기억은 희미해지기 마련이기 때문에 현장 배치를 앞두고 있는 신규 간호사 입장에서는 새삼스럽지만 중요한 시간이기도 하다.
혈당 측정하는 시간이 이었는데, 학생 간호사 때도 이미 여러 번 해보았고 환자들이 각자 집에서 스스로 시행할 정도로 간단한 거라 부담도 없었다. 내 차례가 되어 동기에게 혈당 측정을 할 때였다. 내가 손에 힘을 세게 주었는지 상대방의 건강한 손가락에 모세혈관이 발달한 탓인지 손가락에 핏방울이 맺혔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크게 맺혔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 것 아닌데 실제 피를 본 것에 놀라서 인지 나도 순간 흠칫했다.
“뭐야? 헐, 나 oo한테서 안 받을래.”
다른 동기의 목소리가 들렸다. 학교 동기이기도 했던 친구라 친숙한 목소리라 더 또렷이 들렸다고 생각했는데, 우습지만 그게 아니라 의연 중에 경쟁상대라 느껴 부끄럽고 자존심이 상해 더 오래 기억에 남았던 것 같다. 그렇지만 상대가 누구든, 주제가 무엇이든, 거절은 수치심으로 돌아온다.
한편 나라도 싫을 것이다. 환자 입장에선 아픈 것도 싫고, 미숙한 것도 싫고 원치도 않던 '실험용 쥐'가 되는 것은 더 싫을 것이다. 병원은 치료를 받는 곳이지 해코지를 당하는 곳이 아니니까. 그래도 대부분은 점잖게 거절하시는 편이다. “내가 간호사가 싫어서가 아니야, 혈관이 워낙 없어서 그래. 괜히 고생하지 말고 다른 언니 간호사 불러와요.” 일반 가게를 배경으로 한 어느 드라마에서 '여기 담당자 누구야? 매니저 불러와!' 하는 장면이 스친다. 의료가 특수한 서비스직이라 이 선에서 끝났겠지.
신규 간호사들이 자신의 부족함 때문에 환자들이 좋은 간호를 받지 못하여 상황이 악화되진 않을까 죄책감 속에 괴로워하며 일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 나 또한 그런 생각을 했었으니까. 털어놓지 못하고 고민하다 꽃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임상을 그만두곤 한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저 포기하지 않고 출근하는 것만으로도 두려운 상황을 피하지 않고 직면한 엄청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저 그것만으로 스스로를 칭찬하기엔 상황이 참 박할 뿐.
신규 간호사나 학생 간호사를 대동하고 환자 앞에설 때, "우리 새싹 간호사를 위해 기회를 주세요. 앞으로 아주 잘할 친구예요."라고 인사시키면 대부분은 허허 웃으시며 허락해 주시니,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다음에 찾아가면 나뿐만 아니라 우리 병아리들에게 아는 척하시며 눈을 맞춰주신다. 이런 좋은 기억은 서로를 성숙시킨다. 성장의 기회는 어쩌면 다른 이들의 희생 속에 나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상대에게 받는 배려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기를, 개개인의 단독행동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공동체 안에서 발생하는 시너지에 대해 간과하지 않기를. 겸손하고 공손한 마음을 되뇌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