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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May 29. 2023

후회하지 않는 삶

간호사로소이다

오래간만에 대학동기 몇몇으로 이뤄진 단체 톡방에 불이 들어왔다. 다른 커리어를 선택해 자리 잡은 다른 동기의 근사한 인터뷰가 실린 기사를 담고. 사회적 이슈가 생겼을 때 문의할 정도의 자원이 된 그는 그간 열심히도 살아왔더랬다. 대학 졸업 후 여러 시도를 하며 도달한 성취 앞에 박수를 보내는 한편 솔직하게는 속이 시끄럽다. 올림픽이나 영화제 같은 동떨어진 세상에서 이뤄낸 성취와 나와 비슷한 행적을 딛었음에도 다른 결실을 맺은 사람들의 성취는 같고도 다르다. 전자는 멀게 느껴져 순수한 찬미의 대상이 되지만, 후자는 못난 내 마음속에서 끝내 질투의 대상이 되어 소화시켜야 할 숙제로 남는다.

 

얼마 전 방영된 KBS예능 홍김동전에서는 이대생들을 앞에 두고 버스킹을 벌였다. 연예인 홍진경은 자신의 삶을 반추해 봤을 때 좋은 선택이 중요하며 그에 경험이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직장에서 만난 친구와 후배 여럿이 같이 술자리를 하던 날, 동기인 친구가 날더러 부지런하고 바쁘게 살아왔다고 말해서 놀랐다. 일하면서 미국 면허를 따고, 석사까지 마치지 않았냐고. 그런데 나는 그저 남들도 다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의 경험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래봤자 일반병동 간호사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폄하하며.


간호사는 간호대학을 졸업해 동일한 면허를 따지만 입사하는 병원과 그에 따라 배치받는 부서에 따라 개인의 능력치가 달라진다. 그 병동이 주로 입원하는 과에 맞는 지식과 정보가 채워지며 필요한 인력으로 키워지기 때문이다. 임상에서는 대처능력의 결핍만큼 두려운 게 없으므로 무지와 무식은 곧 공포다. 따라서 특수한 의학지식과 그에 대한 경험은 목소리를 크게 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결국 중환자실이나 응급실, 검사실 같은 특수과에 배치받는 게 나중에 큰 힘이 된다.


상대적으로 일반병동 간호사는 애매하고 얕은 지식만 쌓인다. 일이 몸에 익어갈 무렵, 환자 옆에서 간호 수행을 하는 것보다 동의서나 필요서류 챙기는데 더 많은 에너지를 쓰는 것에 현타가 여러 번 왔더랬다. 비교적 이른 연차에 미국 면허증이나 가방끈 늘리기에 눈을 돌린 건 이런 지식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함이었다. 바깥에서 볼 땐 큰 병원에서 오랫동안 일한다고 추켜세워 주지만 사실은 애매한 자신을 숨기기에 바쁘니, 뻐기기는 커녕 초라해 보이지 않으면 다행이다.


간호사로써는 다신 살지 않겠다며, 입사한 지 만 일 년을 넘긴 후배 간호사가 얼마 전 퇴사했다. 또 다른 후배도 비슷한 이유로 퇴사를 앞두고 있다. 똑똑하고 일도 잘하던 친구들이 임상에 남지 않고 다른 길을 택한다. 다른 분야, 혹은 외국으로 나가 삶의 만족도를 높인 간호사들의 사례를 보고 있자니 퇴사는 현명한 친구들의 좋은 선택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최근 간호법 입법을 대하는 각 분야의 입장과 태도를 보며 더더욱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빠져나가라고 응원이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현장에서 환자를 대할 때면 우리가 필요한 존재 같은데, 바깥세상에서는 간호사가 쓸모도 소용도 없는 존재라 격에 맞는 법조차 필요치 않다고 여기니 처우개선 따위 감히 바라서 되겠는가며 고된 하루하루를 삼킨다.


후회하지 않는 삶이란 없을 테지. 그저 선택을 후회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삶만이 존재할 뿐. 애매한 전문성이나마 주워 담으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가늠해 본다. 그간 걸어온 '간호사로써의 삶'에는 성취나 행복, 인류애 충전과 같은 사랑스러운 일면도 넘쳤던 탓에 그저 별로인 직업으로 치부하기엔 속상한 마음이다. 여전히 갈길은 멀고, 먼 미래엔 간호사마저 값싼 외국 인력으로 모조리 대체될 것이라는 무섭고 비관적인 소리마저 들린다. 우물 안 개구리인 나는 다양한 세상으로 나아간 친구들을 향한 불같은 질투를 진화하고 진심 어린 응원을 보내고자 마음먹는다. 그들이 들려주는 무용담 속에, 어쩌면 그 너머에 있을 반짝임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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