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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진영 Oct 25. 2018

중세 우즈벡 도시 그대로의 모습, 부하라!

우즈베키스탄 주말여행 5


선선했던 날씨는 뜨거워지고 있었다.


여기저기 올드 타운을 거닐며 기념품 구경도 하고 그러다가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파서 점심을 먹으러 들어갔다.      



길거리 표지판에 적힌 식당에 들어가니 옛 마드라사 건물안에 들어선 레스토랑이었다. 지저분한 테이블을 물티슈로 닦고 앉으니 종업원이 메뉴판을 들고 왔다. 샤슬릭을 먹고 싶었는데 없어서 추천받은 닭요리를 시켰다.     


먼저 주문한 수프가 나왔는데 먹다가 너무 피곤한거. 룸메 코골이 때문에 어젯밤에 하도 잠을 설쳐서 오늘 돌아다닐 때에는 엉덩이 붙이고 앉자마자 눈이 감겼다. 식사를 들고온 종업원이 웃으며 깨워줬다. 민망해서 얼른 일어나 닭고기를 먹었다. 닭고기는 내가 살면서 먹어봤던 닭 요리 중에 가장 부드러웠다. 심지어 가슴살 까지도 쫄깃졸깃했다. 약간 안익은 것 같이 불안했던 부위는 빼 버리고 나머지 부분을 다 먹었다.     


부하라는 금속공예로도 유명하다!


나와서 계속해서 서쪽으로 걸었다. 뙤약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올드타운을 헤매면서 발길 닿는대로 걷고 있는데 정말로 듣던대로 곳곳에 유적이 숨어있었다.


건물들이 죄다 똑같은 모래색이어서 지나치기 쉽지만, 조금만 자세히 보면 현판이 붙어있고, 언제 어떤 용도로 사용된 건물인지 명시가 분명히 되어있다. 중세 우즈베키스탄 도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부하라만의 매력이었다!


보통 이정도 깊이의 현관이면 최소 500년은 된 건물이다


이러한 유적들은 최소 100년에서 천 년까지 되는 건물들인데, 각 시대별로 현관의 높이가 다르다. 오래된 유적일수록 현관 높이가 낮은데, 이유는 수백년동안 모래가 쌓이면서 지대가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게 타키 텔팍 푸루숀 시장을 지나서 쭉 잘 정비된 길을 올라가니 타키 자르가론과 울룩벡 마드라사 광장이 나왔다. 타키 자르가론 역시 과거에 시장으로 이용되었던 곳(지금은 기념품 상점만 한가득)이고, 울룩벡 마드라사와 맞은편의 압둘아지즈칸 마드라사 역시 과거에는 모두 신학교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현재는 두 유적 모두 폐허로 남은 상태이다.     



잠깐 호스텔에 들렀다가 다시 나와 이번에는 부하라의 상징이자 말로만 듣던 미노라이 칼론으로 향했다.     


미노라이 칼론은 타지크어로 ‘거대한 미나렛’이라는 뜻인데, 바로 옆 칼리안 모스크와 함께 붙어있다. 12세기 몽골의 침입 때 부하라의 모든 건물들이 불탔으나 웅장한 미노라이 칼론만은 부술 수 없었다고 한다. 이슬람이 들어온 후 아잔을 알리는 탑으로 사용되었고, 이따금씩 죄수를 처형시키는 용도로 사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미노라이 칼론

   

미노라이 칼론, 칼리안 모스크, 그리고 맞은편의 미르이아랍 마드라사가 함께 앙상블을 이루던 부하라의 중심 광장은 직접 보니 Wa....아우라...(이맛에 여행함) 이게 그 사진으로만 보던 미나렛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홀린 듯이 다가가 벽을 만졌다. 인터넷에서 본 대로의 조로아스터교 스타일의 리본무늬와, 아랍어 서예, 그리고 소련의 폭격으로 무너진 부분을 시멘트로 채운 것까지 하나하나 그대로 내 눈앞에 있었다.


1500년대에 건설되어 지금까지도 신학교로 운영중이다


맞은편의 미르이아랍 마드라사는 유일하게 지금도 운영되는 마드라사이기 때문에 관광객의 입장은 금지되어있다. (후에 또 쓰겠지만 나는 누군가의 도움으로 다음날 이곳에 들어갔다.) 그래서 학생들이 꾸란을 어떻게 공부하고 생활하는지 보고 싶었지만 참고 나왔다.     


광장의 맞은 편에는 3층짜리 테라스 카페가 있었는데, 올라가니 역시나 이곳이 포토스팟이었다. 비록 모래바람이 날리는 테라스였지만 어차피 이미 하루종일 모래바람 맞아서 꼬질꼬질해진 이상 한참을 앉아 맥주 한 잔 시키고 풍경을 감상했다.



태양이 그 기력을 슬슬 잃어가기 시작하던 늦은 오후, 카페에서 나와 성벽 ‘아르크’를 향해 걸었다. 아르크는 부하라의 요새로, 러시아 중세 도시의 크렘린과 비슷하다고 한다.


아르크에 간 이유는, 인터넷에서 이 곳의 경찰에게 뒷돈을 주면 관광객에 개방을 하지 않는 멋진 곳까지 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르크를 갔는데, 아니나 다를까 관광객에 개방된 입구 주변 구간은 너무나도 협소하고 별로였다. 좀 걸으면서 뒤쪽을 갈 방법을 탐색하다가 기념품점 아저씨와 눈이 마주쳐 “앗살라무 알라이쿰” 인사를 했다. 그리고 살짝 뒤로 가보니 잠겨있는 문이 보였고, 그 담장 너머로 뒤쪽에 들판이 있었다.



아, 저 곳이 내가 가야하는 곳이구나를 직감적으로 깨닫고 아저씨한테 다가가 조용히 저기 너머로 어떻게 가는지 물어봤다. 나이드신 분이라 다행히 러시아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아저씨는,     


“오늘은 안 돼. 터키 대통령이 부하라에 와서 온 동네방네 특수부대가 깔려있어. 저 뒤쪽에도 스나이퍼들이 있단 말이야. 내일 모레에 와.”     


안 된다. 내일 나는 모스크바로 떠나는데, 오늘 못 보면 내일이라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자 아저씨가 갑자기,

“아, 내일 저녁이면 괜찮겠다. 내일 7시에 이 곳으로 와. 돈은 넉넉하게 준비해 두고.”     


오... 역시나. 내일 멋진 노을을 보고 부하라를 떠날 기대를 하고 아르크를 나왔다. 아직 해가 지려면 좀 멀었어서 조금 더 멀리 가보기로 했다. 모스크와 연못이 있는 볼로 하우즈에 가려고 좀 나왔는데 길을 살짝 잃었다. 돌아돌아 겨우 도착하니, 작은 연못에 작은 미나렛, 그리고 우뚝 솟은 나무기둥이 인상적인 모스크가 있었다.    


볼로 하우즈 모스크

  

곧 아잔이 울려퍼졌다. (여섯 시였음) 사람들이 한두명씩 모스크에 모이기 시작했다. 오 나도 드디어 무슬림 예배를 구경할 수 있는건가 라는 생각을 하고 모스크 현관에 다가갔다.


하지만 나는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앉아있던 분한테 나 바지 이건데 모스크 들어가도 되냐고 물었더니 된다고 하면서도 약간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가방 속에서 긴 바지를 주섬주섬 꺼내 입고 모스크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예배에 참여할 생각은 없어서 그냥 뒤에 주저앉아 사람들 하는 걸 구경할 생각이었다. 나를 본 사람들이 신기하면서도 낯설게, 호의적인 시선을 보냈다. 일부는 미소를 띄며 환영한다는 신호를 보내기도 했다.     


모스크는 신성한 곳이기 때문에 일단 떠들거나 핸드폰을 하면 안 되는 곳이다. 그래서 가만히 아빠다리하고 뒤에 앉아있었는데, 예배를 시작하기 직전 모여있던 사람들이 뒤를 돌아보고 날 보더니 옆으로 주춤주춤 움직여 자리를 만들고 나에게 얼른 이리 오라는 손짓을 했다..!     


당황한 나는 어쩌지 하다가 결국 그 틈으로 비집고 들어가 섰다. 머릿속에서는 아뿔싸... 구경만 하려고 왔는데...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왕 온 거 사람들 따라서 예배도 드려보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거절하는 것도 도리가 아닌 것 같고.


무릎을 꿇고 앉자 이맘처럼 보이는, 터번을 쓰고 수염을 기른 아저씨가 맨 앞에 앉았고, 꾸란 구절을 읽자 엎드려 땅에 키스했다. 그리고 모두 함께 일어나 자기 나름대로 중얼중얼 기도를 외웠다. 나는 그냥 가족들이 행복하고 평안하기를 빌었다.      


서기도 하고 숙이기도 하고 무릎을 꿇기도, 땅에 키스하기도 하고 그것을 반복하면서 예배는 진행되었다. 중간중간 알 함두릴라~ 알라후 아크바르~ 이런 말들도 들렸다. 1학년때 아랍어 배워두길 잘했다...다까먹었지만...


마지막으로 양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고개를 돌려 축복을 전하고 예배를 마쳤다. 얼떨떨했다. 나를 이리 오라고 손짓한 사람은 나를 보고 미소를 지으며 사라졌다.      



다시 광장으로 돌아왔다. 어제인지, 오늘 점심에 먹은게 잘못됐는지 자꾸 화장실에 가고 싶었고 지쳐서 저녁은 먹고싶지 않았다. 그래서 카페 하나 괜찮은 곳을 찾아 헤맸다.     


광장에는 전통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고 있었다. 해질녘의 붉은 하늘 아래 마드라사 앞에서의 노래와 춤은 마치 내가 다른 세상에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을 주었다.     



광장 뒤 쪽에 괜찮아보이던 노천 카페가 있었다. 다리가 너무너무 아팠고 얼른 앉아서 쉴 생각밖에 없었다. 라떼 한 잔과 물 한 병을 시켜 편지도 쓰고 다리도 주무르면서 한참을 앉아있었다.


어제 사마르칸트에서 그렇게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강행군을 하고, 부하라에서는 좀 쉬나 했더니 역시나 엄청난 거리를 걸어다녔다.     


무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리가 고장나서 내일은 요양만 해야겠다 결심하고 의자에 앉아서 한참을 슬라임처럼 늘어져 있었다.     


그렇게 쉬다가 해가 졌고, 호스텔로 돌아왔다.     


아직 룸메이트인 일본인 아저씨는 돌아오지 않았다. 얼른 그가 돌아와 씻고 누워 코를 골기 전에 나는 잠이 들어야 했다.  

   

돌아와서 침대에 누웠다. 저녁을 먹지 않았기 때문에 한 9시쯤 되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너무 기운이 없어서 살짝 잠이 들었다. 깨보니 11시. 룸메이트는 아직 오지 않았다.     


얼른 씻고 잠잘 준비를 하고 드러누우니 룸메이트가 들어왔다. 큰일 났다. 그리고 나는 아까 살짝 자서 잠이 깬 상태였다.     


아무리 이어폰을 틀어막아도 두 시까지 잠을 잘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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