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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진영 Oct 22. 2018

‘별과 달에게 바치는 궁전’, 시토라이 모히 코사

우즈베키스탄 주말여행 4


부하라에서의 첫째 날!


아침 9시, 룸메이트였던 일본인 아저씨의 끔찍한 코골이를 견디고 겨우 일어났다. 너무 피곤했다. 사실 코를 골면 고는 사람이 더 힘들다던데 그래서 또 뭐라고 할 수도 없다. 그래도 일어나서 씻고 아침을 먹고 부하라를 어떻게 돌아보면 좋을지 고민을 했다. 부하라는 작은 것 같지만 큰 도시인데, 이유는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관광지는 올드타운에 몰려있어 돌아다니기 편하지만, 도시 외곽에도 볼 거리가 많기 때문에 동선을 짜기가 은근히 까다롭기 때문이다.

호스텔 주인인 산자르는 자신의 아버지인 사포랑 함께 돌아다니면서 멀리 있느 관광지들을 둘러보고, 설명도 해주는데 대략 8불정도 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어제 택시타고 오면서 사포 할아버지랑 얘기할 때 좋은 분 같았어서 그러겠다고 했다.

약속한 출발시간 전에 약간 시간이 남아서 초르 미노르를 보러 떠났다. 부하라의 올드 타운에 있는 건물들은 모두 흙빛이었고, 포장되지 않은 도로는 울퉁불퉁했다. 그리고 골목골목 할아버지들이 나와서 앉아있었다.


부하라 구시가지의 골목


물 한 병 사고 좀 걸으니 초르미노르에 도착했다. 초르 미노르는 타지크어로 네 개의 미나렛 이라는 뜻이다. 흙네 개의 미나렛 꼭대기에 옥색으로 칠해져 있는게 귀여웠다. 그리고 그 중 하나의 꼭대기에는 둥지를 튼 두루미 모형이 있었다. 예전에 부하라에서 연못이 차고 넘칠 때 두루미가 많이 살았다고 한다. 인터넷에서는 각 탑에 세계 대표 종교 네 개를 상징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고 하는데 나는 잘 모르겠다.


초르 마노르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기념품 상점이었다. 위로 올라갈 수 있는데 별건 없지만 그렇다고 올라가지 않기도 좀 그래서 올라가서 둘러보았다. 상점 주인이 나보고 한국인이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그녀가 주섬주섬 3천원을 꺼내며 이것 좀 숨으로 바꿔줄 수 있냐고 물어봤다. 대체 그걸 어디서 났는지 모르겠지만 여기서 쓸 수 없는 돈이라서 그냥 바꾸어주었다.




나와서 천천히 올드타운을 돌아봤는데 느낌이 참 달랐다. 사마르칸트에서의 뜨거운 태양과 거대한 건물, 잘 닦인 도로와 정신없는 사람들의 이미지와는 정 반대로, 부하라는 선선한 날씨에 고요하고 아기자기한 마을, 울퉁불퉁한 도로에 삼삼오오 모여 있는 주민들을 볼 수 있었다. 사마르칸트에서 돌아다니면서 아 이건 진짜 강행군이다 라고 느꼈다면 여기서는 진짜 여행을 온 기분이었다.


우즈베키스탄의 독특한 문화인 얼굴모양 태양, 그리고 새(?). 이슬람권에서는 전통적으로 우상숭배를 이유로 얼굴을 그리는 것이 금지되어있다.


다시 호스텔로 돌아와서 사포 할아버지와 떠날 채비를 했다. 할아버지의 티코를 타고 가장 먼저 ‘시토라이 모히 코사’로 향했다.

시토라이 모히 코사는 타지크어로 ‘달과 별에게 바치는’ 이라는 뜻의 부하라 왕궁 여름궁전이다.


하트모양 창문<3


우즈베키스탄에서 가장 늦게 복속된 부하라는 그만큼 1900년대 초까지도 그 왕실을 유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시토라이 모히코사는 엄청나게 고풍스럽거나 오래된 유적은 아니다. 차에서 내려 싸움난 사람들의 무리를 지나 할아버지와 함께 궁전 입구로 들어갔다. 정원이 비교적 잘돼있어서 쾌적한 느낌이었다. 여기저기 기념품도 팔고 장인이 물건도 만들고 있었다. (궁전보다는 공원같은 느낌)

사실 시토라이 모히 코사는 거대하고 웅장한 궁전을 생각하면 안 된다. 작은 건물 두 세 개가 있고, 그 안에 아기자기한 장식으로 이루어져 있을 뿐이다. 궁이라기보다는 파빌리온 정도의 느낌. 하지만 지금까지 우즈베키스탄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특별한 분위기를 자아내면서 독특한 색과 장식들로 꾸며져 있었다.

우선 응접실로 사용되던 건물로 들어가 보았다.

비취색의 벽에 화려하게 장식된 별 모양 기하무늬가 우선 눈에 띄었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벽을 화려하게 장식한 꽃병을 보았다. 꽃병에서는 수많은 꽃들이 하늘 위로 피어 솟아나오고 있었다. 이 꽃의 공간은 약간 사람을 몽롱하게 만드는게 있었다.


시토라이 모히 코사의 응접실

옆방은 러시아건축가와 우즈벡건축가가 합동으로 디자인한 방이라고 하는데, 백색의 벽에 붉은 카펫, 그리고 샹들리에가 영락없이 러시아 느낌을 주었다. 다만 벽의 아치 모양으로 파인 장식과 꽃병들이 우즈벡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있었다. 각 방마다 극단적으로 분위기를 대조하고 있어 신기했다.


우즈베키스탄 식의 벽장식과 러시아식 샹들리에와 천장!


다음 방으로 넘어가보니 유리장식으로 꾸며진 화려한 형형색색의 방이 나타났다. 현란한 색의 향연 속에서 전시된 물건들은 솔직히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부하라의 몇 남지 않은 하우즈(연못)


응접실을 나와서 좀 걷다가 왕의 거주공간으로 갔다. 창문 틀도 결코 평범하게 만들어놓지 않았다. 정말로 이곳에는 별 장식이 굉장히 많았다. 그리고 침실 바로 앞에는 하브즈가 있었다. 하브즈(Havz)는 부하라에서 흔히 만들어진 연못인데, (라비하우즈 볼로하우즈 등) 전염병 창궐의 주범이라서 아름다운 몇 개만 빼고 소련 시절 모두 없애버렸다.

이곳에서 부하라의 왕은 연못 안에 놀고 있는 궁녀들에게 사과를 던져, 그 사과를 받은 궁녀와 함께 밤을 보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마지막으로 부하라 전통 의상이 전시된 건물(솔직히 무서웠다..옛 우즈벡 여성용 의상이 약간 디멘터같다)을 보고 나서 나오려던 찰나, 공작이 보였다! 우리에서 나와 마당을 돌아다니던 공작은 사람을 그다지 좋아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무서워 하는것도 아니었다. (그냥 귀찮아했음)

이렇게 생겼다.... (출처: 위키피디아)


공작이랑 겨우 같이 셀카를 찍고 나서 이번에는 파이줄라 호자예브의 생가로 갔다.


호자예프의 생가


파이줄라 호자예브는 부하라의 첫 대통령이다. 1900년대 초 부하라 한국이 망하고 제일 가는 부자였던 그는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비록 소비에트 연방을 구성하는 지방 중 하나였지만 독립하여 민주공화국을 세우고 싶어 했다. 하지만 결국 스탈린의 대숙청 시기에 역시 숙청을 당했다.

그의 생가를 돌아보는데, 역시 우즈벡 전통가옥처럼 남성과 여성의 생활공간이 분리되어 있었다. 제일가는 부자라기엔 생활공간이 넓지는 않았다. 그리고 다른 부하라의 명소처럼 볼거리가 많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부하라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가진다고 생각하면 분명히 방문할 가치가 있는 곳인 것은 맞다.



그렇게 다시 호스텔로 돌아왔다. 원래는 낙쉬반드 묘소에도 가야 하는데 터키 대통령이 와서 도로를 닫았을 수도 있어서 다음날 가기로 했다. 내일도 역시 터키 대통령은 내 일정에 어마어마하게 영향을 주게 된다. (도로통제는 양반)

아무튼 점심을 먹으러 나왔다. 오전에 선선했던 날씨는 뜨거워지고 있었다. 여기저기 올드 타운을 거닐며 기념품 구경도 하고 그러다가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파서 점심을 먹으러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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