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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진영 May 14. 2018

관뚜껑을 열면 재앙이 닥치는 티무르의 저주

우즈베키스탄 주말여행 3

“Can you speak English?”

그는 영어 교사였다. 학생들과 사마르칸트에 견학을 왔다가 외국인인 나를 보고 아이들을 실전 연습 시켜야겠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관광지 한 가운데 아이들과 둥그렇게 모여 서서 짧은 토크쇼가 이어졌다. 아이들은 쑥스러워했지만 선생님이 옆에서 계속 부추겨서 민망했다. 그래도 어차피 시간도 많은데 수다나 떠니 재미있었다. 참 좋은 선생님과, 참 착한 학생들 같았다.



그렇게 나와서 다른 사람들과도 계속 사진 찍고 나오니(누가보면 한류스타인줄) 힘들어서 뙤약볕에 걸터앉아서 좀 쉬었다. 계속 사람들이 쳐다보기도 하고 나랑 사진찍자고 다가오기도 하고 그랬다.

그렇게 있다가 레기스탄 광장을 원없이 봤다고 생각하고 빠져나오니 오전 열한 시였다. 너무 뜨거워서 도저히 안되겠다. 어디 앉아있어야겠다고 느꼈다.(지금까지 계속 앉아있었음) 광장을 나와 카페나 식당을 찾아보았는데 주변을 둘러보니 광장 주변에는 도로에 마티즈들만 먼지 뿜어내며 달릴 뿐, 아무것도 없었다.



길을 건너 헤매니 식당 하나가 나오길래 보지도 않고 바로 들어갔다. 들어가서 사장이 내 얼굴을 보더니,

“한국인이세요?”

너무 발음이 좋아서 진짜 한국인인줄 알았다. 사장은 일산에서 5년을 일했다고 한다. 우즈베키스탄에 와서 놀랐던 점은, 1개국어만 할 줄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기본으로 우즈벡어와 타직어를 구사하고, 나이가 좀 있는 사람들은 모두 러시아어까지 할 줄 알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한국어까지 할 줄 알았다. (나중에 부하라 가서 느낀 점은 그만큼 또 터키어를 구사하는 사람도 많았다)

“형님, 우즈벡 어때요? 좋아?”


딱 봐도 나보다 열 살도 많은 사장님이 그렇게 얘기하니 몸둘 바를 몰랐다. 일단 앉아서 라그만과 환타를 마셨다. 쉬는데 졸렸다. 오전부터 무리하긴 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앉아서 쉬고 나오니 정오였고, 태양은 오냐 너 나왔구나 하면서 뜨겁게 내리쬐고 있었다.


레기스탄 광장으로 다시 가봤다. 사람들은 어쩜 더 많았다. 여기서 뭘 할 수가 없을 것 같아서 (사람도 많고 날도 뜨겁고) 다시 길을 건너서 헤매다가 ‘맥주’라고 써 있는 것을 발견했다.

식당 안에 들어가니 샤슬릭 굽는 연기로 매캐했다. 연기를 뚫고 자리 하나 잡고 앉아 뜨듯미지근한 맥주를 한 병 마셨다. 그리고 졸았다. 너무 피곤했나보다.

그렇게 또 시간을 보내다가 맥주를 다 마시고 나왔다. 역시나 너무 뜨거웠다. 사마르칸트는 정비를 잘 해놓은 도시이지만 그늘에 앉을 벤치는 많이 없었다. 거기에 잔디에 앉기에는 물을 계속 뿌려놓아서 죄다 젖어있었다. (그 위에 그냥 앉은 사람들도 있긴 있었음)



땡볕아래 혼미해지면서 걷다가 겨우 그늘아래 벤치를 찾아서 앉았다. 뭔가 음악을 들으면서 바람도 느끼고 여유를 부리며 쉬고 싶었으나 너무 덥고 피곤해 이어폰은 꽂지도 못 한 채 꾸벅꾸벅 졸았다. 그게 목이 아파 나중엔 아예 가방을 베고 잤다.

자꾸 뭔가 간질간질 거려서 보니까 연두색 날파리 같은게 붙어있었다. 얼굴, 목, 옷이고 뭐고 다 붙어있어서 뭐지 하고 뒤를 보니 더러운 물웅덩이가 있었다. 일어났다. 실컷 잤으니 이제 돌아다녀야 한다.

세 시가 넘었고 다시 기운차려 택시를 하나 잡아타고 (걸을 기운이 없었다) 다시 티무르의 묘소 구르에미르로 갔다. 가자마자 내 시선을 끈 것은 구르에미르의 아름다운 돔과 미나렛이 아닌, “coffee & wifi” 였다ㅋㅋ. 들어가서 앉아서 라떼 하나 시키고 또 쉬었다. 더울 때는 쉬어야 한다. 아무것도 못 한다.


구르에미르의 돔 주름 갯수는 티무르의 나이!


쉬면서 폰질도 하고 사진도 정리하고 하다가 늦은 오후가 되었다. 본격적으로 다시 돌아다니자 하고 구르에미르 안으로 들어갔다. 표를 사려는데 할아버지가 나보고 “따바리쉬”(동무)라고 불렀다. 누가 나를 동무라고 실제로 부르는 건 처음이라 재밌었다.

구르에미르 건물이 주는 독특한 느낌은 오롯이 돔으로부터 나온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하게 가분수 느낌이 나는 거대한 돔은 티무르의 나이 수 대로 주름을 만들었다고 한다.



안에 들어가자 티무르의 관이 놓여 있었다. 그 관 안에 티무르는 없다. 구르에미르 뒤쪽 어딘가 지하에 따로 묻혀있다고 한다. 티무르의 묘를 열면 저주가 씌인다는 전설이 사마르칸트에 있었지만, 너무너무 궁금했던 소련 학자들이 그 뚜껑을 열었고, 곧 독일이 소련을 침공했다. 이후 이 지역의 예법대로 제사를 지내니 소련이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말도 안되는 전설이 내려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말도 안되는 전설은 실제로 티무르 베크맘베토프 감독의 영화 <데이 워치>의 주제이기도 하다.


구르 에미르의 내부, 티무르의 관
구르에미르 입구


구르 에미르를 나와서 택시를 잡아타고 레기스탄으로 또 다시 갔다. 사마르칸트 하루만에 레기스탄 나와바리가 되었다. 레기스탄에 굳이 다시 온 이유는 늦은 오후 사마르칸트의 파노라마 뷰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울루그벡 마드라사 관리인에게 2만숨을 쥐어주면 왼쪽 미나렛에 올라갈 수 있다. 나는 고소공포증이 있지만 항상 그걸 극복하고 싶었고, 할까 말까 고민도 많이 했지만 결국 하기로 했다.

그래서 결국 올라갔는데, 생각보다 그렇게 많이 올라가지는 않았다. (미나렛 올라가기 전에 이미 건물 내부에서 많이 올라감) 올라가니 위에가 뻥 뚫려있었는데, 맨 끝 계단에 올라서면 내 허리정도 까지 벽이 내려온다. 거기에 매달려 사마르칸트 아래를 내려다보니 마법같았다.




틸랴코리 마드라사와 쉐르도르 마드라사의 옥색 돔은 늦은 오후 햇빛을 받아 빛나고 있었고,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을 마주보고 있었다. 무서웠다. 바람이 꽤 불고 있었어서, 허리까지 나온 나로서는 다리에 힘을 꽉 주고 바들바들 사진을 찍었다. 내려오면서 다리가 후들거렸다.

미나렛 하나 올라갔다 내려오니 기운이 쫙 빠져서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그래도 해질녘의 샤히진다를 보러 다시 택시를 타고 갔다.



노을을 받는 샤히진다는 아름다웠다. 그리고 이번엔 사람도 없었다. 마음 편하게 실컷 사진도 찍고, 사람이 많아 정신없어서 제대로 보지 못 했던 문양도 제대로 감상했다.

해가 지고 나니 이어폰이 없어진 것을 깨달았다. 머리를 잘 굴려보다가 아무래도 아까 카페에 두고 온 것 같았다. 그래서 택시를 타고 다시 구르에미르로 갔다. 역시 있었다!



기차타기 전까지 다시 그 카페에 죽치고 앉아 해가 질 때까지 쉬다가 택시를 타고 기차역으로 이동했다.

그렇게 사마르칸트는 끝났다. 하루 종일 뙤약볕 아래 수만보를 시뻘개지며 걸었다. 여행보다는 강행군에 가까웠어서, 이미 다리는 고장났고 내일은 무슨 기운으로 돌아다닐 수 있을지 궁금했다.

사마르칸트 기차역에 왔는데 이번에 타고 가는 기차는 우리나라 KTX처럼 우즈베키스탄의 고속열차 Afrosiyob이었다. 아프로시욥은 사마르칸트의 예전 이름이라고 한다. 내부는 KTX보다 더 좋은 것 같았다. 승차감도 좋았고.

문제는 내가 역방향 첫 줄이라 모든 사람을 마주보고 있는데, 너무 피곤한 나머지 웃긴 모습으로 졸았다... 잠에서 깨긴 했지만 민망해서 좀 눈 계속 감고있었다. 진심 너무 피곤했다.

두 시간쯤 지나 부하라에 도착했다. 부하라의 기차역은 시내와 아주 멀어, 숙소에 이미 차량 요청을 해 놓았다. 타지크인 할아버지 두 분이서 내 이름을 들고 서 계셨다. 인사를 나누고 할아버지 차인 티코를 타고 시내로 들어갔다.

여기 와서 놀란 것 중 하나는, 거리에 대우자동차말고는 다른 브랜드의 차를 하나도 보지를 못했다. 차가 꽤 많이 돌아다니는데, 하나같이 전부 다마스, 티코, 넥시아, 마티즈, 새로 나온 쉐보레 중소형 차들이었다. 물어보니까 우즈베키스탄에 공장이 있어서 그렇다고 한다. 거기다가 우즈베키스탄은 내륙국으로 둘러싸인 이중내륙국이라 항구는 꿈도 못 꾸어 차를 수입할 수도 없다고 한다.

아무튼 친절한 할아버지들이랑 수다를 떨면서 시내로 향했다. 숙소에 도착하자 이메일을 주고받은 산자르가 반겼다. 방에 들어가 짐을 풀었다. 다른 침대에는 한 일본인 아저씨가 있었다.

호스텔을 이용하다보면 나이든 남성은 불안하다. 다른 게 아니라 코를 심하게 골기 때문이다. 사실 호스텔을 이용하는 사람이라면 이 부분은 감수해야 한다. 누구랑 자게 될지 모르니까.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심하게 고는 정도가 아니었다. 과장 좀 보태면 누워있는 나 바로 옆에 탱크지나가는 소리(?)가 들려서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정말 온 세상의 듣기 싫은 소리는 전부 내면서 코를 골길래 도저히 안되겠어서 이어폰을 귀를 틀어막고 겨우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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