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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진영 May 14. 2018

우즈베키스탄의 자존심, 사마르칸트

우즈베키스탄 주말여행 2



새벽 5시에 일어났다.

이미 날은 밝아있었다. 날씨는 선선해서 돌아다니기 딱 좋았고, 얼른 씻고 후딱 숙소를 나왔다. 여섯시도 안 되었는데 사람들은 이미 공원에 나와 운동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고 있었다.


티무르 제국의 황제, 에미르 티무르


쭉 걷다가 에미르 티무르의 동상이 보였다. 아, 저 사람이 말로만 듣던 타메를란, 티무르구나 하면서 셀카봉으로 또 인증샷을 막 찍어댔다.

그리고 동쪽으로 계속 걷다보니 주름진 옥색 돔과 두 미나렛이 보였는데, 티무르의 묘소인 ‘구르 에미르’였다. 아침 햇살에 빛나는 구르 에미르는 따뜻하게 빛나고 있었다. 여섯시 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미 사람들이 꽤 있었다. 빗자루 쓸던 수위가 다가오더니 나보고 티켓 값을 내라길래 그냥 나왔다. 오전에는 건물의 아침 모습만 보고 직접 들어가서 자세히 보는 것은 오후에 다시 할 거라서. 그나저나 무슨 유적지가 새벽 5시에 문을 여나 싶었다. 여기 사람들도 어지간히 부지런한 민족인가보다.


티무르의 묘소, 구르 에미르

쭉 걷다가 또 묘소 비슷한게 나왔다. 그다지 눈길을 끌 정도로 잘 빠진 것은 아니었어서 관심 끄고 가려다가 아쉬워서 슬쩍 가까이 다가가봤다. 내부에 관이 여러개 있는 걸 보니 가족이 묻혀있는 것 같았다. 뒤를 돌아보니 구르 에미르가 보였고, 둘은 마주보고 있었다.

한 할아버지가 다가오더니 나보고 손짓으로 들어가라고 한다. 아무 생각없이 들어가서 할아버지랑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들었다. 할아버지는 타지크인이라고 한다. 여기 오기 전에 이미 사마르칸트와 부하라에는 우즈베크인보다 타지크인들이 더 많이 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묘소는 티무르의 스승인 루하바드와 그 가족의 묘소라고 했다. 한 서양인이 묘소 주변에서 서성이자 할아버지가 들어오라고 했는데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떠났다. 이런저런 얘기를 듣다가 지루해져서 일어나려던 찰나, 할아버지가 나보고 만오천 숨을 내야 한다고 했다. 아뿔싸... 걸려들었어...  

우즈베키스탄의 문화유적은 외국인과 내국인 요금을 차등으로 받는다. 외국인은 내국인의 약 20배가량 비싸게 내야 한다. 그래봐야 천원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이렇게 내야 하는 문화유적이 한 두 개가 아니다.

그래도 우즈벡에서는 아무리 바가지를 쓰고 함정에 빠져도 나가는 돈이 채 5천원을 넘지 않는다. 그래서 그냥 앉아 쉬면서 이야기 들은 값으로 속편하게 생각하고 나왔다. 7시가 안됐는데 해는 이미 하늘 높이 떠 있었다.

쭉 걷다가 느낌이 이상해지던 찰나, 지도를 봤는데 역시나 잘못된 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방향을 꺾고 바로 골목으로 들어가자, 햇살을 등진 레기스탄 광장의 건물 실루엣이 무슨 알라딘의 메트로폴리스처럼 빛나고 있었다. 마치 신기루에 홀린 것처럼 그 실루엣을 향해 계속 걸었다.


레기스탄 앙상블


구석으로 살짝 돌아가긴 했지만 오히려 새로운 광경을 보면서 레기스탄 광장에 도착했다. 아직 문을 열지 않아 광장에 사람은 없었다. 레기스탄은 페르시아어로 ‘모래의 땅’이라는 뜻이다. 광장을 이루고 있는 울루그벡 마드라사, 틸랴 코리 마드라사, 쉐르다르 마드라사는 각각의 건물만 떼어놓고 보면 그냥 보존이 잘 된 우즈벡의 마드라사(신학교)이지만, 그 세 건물이 한 광장에 모여 앙상블을 이루니 알 수 없는 어마어마한 기운이 쏟아져 나왔다.


레기스탄 광장


그렇게 광장에 혼자서 또 셀카를 열심히 찍는데, 한 우즈벡 여성이 나에게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다가왔다. 그래서 흔쾌히 감사합니다~ 하고 사진을 찍었고, 그리고나서 나 혼자 또 다시 찍는데 그 여성이 다시 나에게 돌아와서 셀카 같이 찍자고 했다. 오 이건 뭐지 신기하다 그러면서 같이 셀카를 찍었다. 그리고 그녀는 총총총 사라졌다.

레기스탄의 뒤쪽으로 쭉 걸어가면 잘 꾸며진 도로로 기념품 상점들이 나 있고, 그 도로는 곧 비비하눔 모스크로 이어진다.


비비하눔 모스크


비비하눔은 티무르 황제의 아내로, 중국인이었다. 티무르가 전쟁에서 이겼다는 소식을 듣자, 그녀는 남편이 오기 전에 멋진 모스크를 만들어 놓고 선물하려 했다. 그러나 그 모스크를 짓던 건축가는 비비하눔을 연모하고 있었고, 자신과 키스를 하지 않으면 모스크를 완성하지 않겠다고 비비하눔을 협박했다고 한다. 결국 그 둘은 키스를 하였고, 너무나도 뜨거웠던 나머지 비비하눔의 얼굴에 상처가 났다고 한다.(화상?) 티무르가 돌아오자 비비하눔의 얼굴을 보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챘고,(알아채는게 신기) 그 건축가는 처형을 당했으며 비비하눔은 자살했다고 한다.

그런 모습들을 상상하며 비비하눔 모스크의 한 바퀴를 쭉 돌았다. 겉으로 볼 때는 괜찮게 보존이 된 것 같았다. 단지 가운데가 뻥 뚫린 것은, 사마르칸트에 있었던 대지진으로 무너졌기 때문이다.



돈을 내고 안에 들어가봤다.

무너진 공간은 이제는 정원으로 바뀌었다. 비비하늠 뒤쪽의 아름다운 돔 내부로 들어가니 황량하게 버려진 누런 내부에 비둘기들이 살림집을 차려놓고 있었다. 내정원의 나무 아래에는 노인들이 바람을 맞으며 쉬고 있었다. 한 바퀴 쭉 둘러보다가 단체관광객들이 몰려오자 후딱 빠져 나왔다.

7시 반 정도가 됐는데, 이미 햇살은 따가워졌다. 한낮이 되면 돌아다니지 못 할 것 같아서 걸음을 재촉했다. 비비하늠 모스크 옆에는 시욥 바자르가 있었다. 바자르는 이제 막 문을 열어 상인들이 물건을 진열하는 중이었다. 바자르 한켠에 있는 오픈된 하수로에 더러운 물이 흐르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물건을 구경하고 있었다.

보통 나는 여행을 다니면 돌아다니면서 과일을 사먹는 것을 즐기는데, 여기 진열된 과일 중에서는 멀쩡해 보이는게 단 한개도 없었다. 특히 그 중에는 회색 딸기가 압권이었다.

아무튼 시장을 나와 동쪽으로 조금 걸어가면 샤히진다가 나온다. 샤히진다는 사마르칸트의 네크로폴리스로, ‘살아있는 왕’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샤히진다에 도착하니 이미 사람들은 바글바글 했다. 이때가 아침 9시가 안 되었을 때였다. 여기서 돌아다니면 모든 이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다. 특히 샤히진다는 단체관광객으로 그 좁은 길에 성수기 명동거리 이상이었다.


길게 늘어선 무덤방


샤히진다에 내려오는 전설은, 정문을 통과해 올라가는 계단에서 올라갈 때의 계단 수와, 내려갈 때의 계단 수가 같다면 천국으로, 다르다면 지옥으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올라갈 때 열심히 세어보니 36개였다. 다 보고 내려올 때 세어 보니 35개였다.... 큰일났다.... 망함.....


샤히진다의 계단


일단 계단을 올라간 뒤 문으로 들어가니 화려한 옥색과 청색 타일로 장식된 거대한 무덤방이 오밀조밀 모여있어 마치 골목길처럼 보였다. 그 골목을 지나니 작은 광장이 나오면서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도 여기서 셀카봉을 들고 찍고 있었는데, 한 무리가 다가오더니 뭐라고 하면서 사진 찍는 시늉을 했다. 그래서 나는 아 사진찍어달라는 거구나 (원래 만만한 상이어서 사진찍어달라는 부탁을 자주 받음) 하고 카메라 달라고 했더니 그게 아니라고, 같이 찍자고 했다. 오 이건 뭐지 하면서 사진 찍고 나도 신기해서 같이 내 폰으로도 사진을 찍었다.


팔자에 없는 인기


그런데 찍자마자 다른 사람들이 오더니 찍자고 하고, 나는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사진을 찍히고 있었다. 다른 곳으로 움직이지를 못 했다. 하도 정신없이 사람들이랑 사진을 찍고 나니 겨우 피해 다른 곳으로 숨어들어왔다.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었다. 외국인을 처음 봐서 신기해서 사진을 찍자고 했을 가능성, 세상에 이렇게 눈이 작은 사람도 있구나 신기했을 가능성, 우즈벡에서 유명한 사람이랑 닮았을 가능성, 그냥 별 생각이 없었을 가능성. 그게 무엇이든 어쨌건 나는 팔자에 없는 인기를 만끽하고 있었다.

아무튼 이제 천천히 여기 저기 무덤방을 돌아봤다. 화려하게 장식된 공간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곳도 있었다. 마지막 공간에 다다르자 세 무덤방이 레기스탄 광장처럼 마주보고 있었다. 그 중 하나에 들어가자 사람들이 모여 앉아 기도를 하고 있었다.

나도 그 사이에 앉아서 사람들 하는걸 어설프게 따라했는데, 너무 어설펐는지 맞은편 앉은 여자아이들이 나를 보고 키득거리기 시작했다. 나도 민망해져서 나오는 웃음을 꾹 참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기도를 끝나고 나오니 또 아이들이 몰려서 사진찍자고 난리였다. 얼마나 됐다고 이제 이런 인기는 익숙해~하면서도 넙죽넙죽 다 찍어줬다.

겨우 쇼히진다를 내려와서 (내려올 때 계단 수가 달라서 충격먹은 후) 대통령 묘소로 갔다. 그런데 여기 단체관광객들이 동선이 거의 비슷한가보다. 샤히진다에서 같이 사진찍은 익숙한 얼굴들이 대통령 묘소에도 있었고 자꾸 눈인사를 건넸다. 모든걸 다 떠나서 이방인으로 환영받는 느낌이었다.

우즈베키스탄의 초대 대통령이자 25년 동안 해먹은 이슬람 카리모프 대통령은 2016년 사망하여 그의 고향인 사마르칸트에 묘소를 마련했다. 높은 언덕 위의 묘소는 마치 궁전처럼 화려했고, 사람들은 그를 만나러 그 땡볕 아래 땀을 뻘뻘 흘리며 언덕 위를 올라가고 있었다.

조금 이상하기도 했다. 위대한 대통령이라고는 하지만 현재 우즈베키스탄의 상황을 보면 그냥 북한이랑 비슷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카리모프 대통령에 요만큼의 관심도 없지만 단지 이곳에 올라가면 비비하늠 사원과 사마르칸트의 파노라마 뷰가 매우 잘 보이기 때문에 가 봤다.

사진 찍고 나니 사마르칸트의 볼 것을 다 봤다. 그리고 시간은 오전 열 시가 채 안됐었다. 비록 겉에서 사진만 찍고 안에 들어가서 보는 건 오후에 계속 할 것이지만, 정말 사람들의 말대로 사마르칸트는 반나절이면 다 볼 도시였다. 다만 그 볼 것들 사이의 거리가 애매하게 멀어서 걸어야 하는 거리가 무척 길다는 점?

그래서 대통령 궁 근처의 정자에 앉아서 좀 쉬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피곤하기도 했고, 건조기후라 그늘에 들어가면 역시 시원했다.

그렇게 충분히 쉰 후 내려와 비비하늠을 지나 레기스탄으로 돌아왔는데 깜짝 놀랐다. 아까는 아무도 없던 그 큰 광장이 지금은 사람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매표소 앞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일단 그래도 표를 사서 들어와 봤다. 들어오니 역시나 사람들이 몰려와 같이 사진을 찍자고 했다. 사람들이랑 사진을 찍으면서 울룩벡 마드라사에 먼저 들어갔다. 마드라사는 신학교로 꾸란을 가르치던 교육기관이지만, 지금은 각 교실이 모두 기념품 상점으로 들어차버렸다. 뭔가 안타까워 할 법도 한데 나는 또 그 와중에 쇼핑할 거리 없나 기웃기웃거리기나 했다.

맞은편의 쉐르도르 마드라사에 들어갔다. 쉐르도르 마드라사는 양 쪽의 주름진 아름다운 돔이 인상적인 건물이다. 그러나 내부는 복원이 되지 않아 그 흔적으로만 느낄 수 있었다. 우즈베키스탄에는 수많은 유적들이 복원을 기다리고 있지만 사실 나랏돈을 사회 시스템부터 갖추는데 써야 한다고 한다. 그게 지금 우즈벡에는 없다고 하니까... 나중에 다시 이곳에 올 때는 부디 여유롭게 많은 유적들이 복원되었으면 좋겠다.


쉐르도르 마드라사


마지막으로 틸랴코리 마드라사(가운데)에 들어갔다. 이곳에 하늘색 돔이 특징인 모스크가 있는데, 그 내부가 무척이나 화려하다. 들어가서 보니 굉장했다. 천장의 보라색과 황금색 무늬의 화려한 대조가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렇게 감상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다가왔다.

“Can you speak English?”


가운데의 틸랴-코리 마드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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