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베키스탄 주말여행 6
끔찍한 밤을 보냈다.
호스텔은 정말 너무너무 좋은데 코골이 때문에 매일 밤이 끔찍하다. 그래도 마지막 밤이니까 잘 견뎌준 나에게 칭찬해... 하면서 아침을 먹으러 나왔다.
씻으러 가는데 처음 보는 여성분이 나보고 어젯밤에 시끄럽게 해서 너무 미안하다고 얘기를 했는데 나는 응? 했다. 이 사람은 내 룸메이트가 아닌데? 그래서 아니라고 괜찮다고 하고 씻으러 갔다.
어제 너무 못자서 오늘은 좀 천천히 일정을 시작하려고 했다. 그래서 어제 산 엽서를 가지고 친구들한테 보내려고 아침을 먹으면서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아까 그 여성분이 내 앞에 앉더니 서로 인사를 주고 받았다. 터키에서 온 30대 중반의 여성인 에스라는, 말 한 마디 한 마디 이슬람의 향기가 뿜어져 나왔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어제 가지 못한 낙쉬반드 묘소 얘기가 나왔고, 나는 그녀에게 수피즘이 뭔지 물어보았다. 낙쉬반드가 이슬람의 수피즘에서 중요한 인물이란 것만 들었지, 정작 그게 무엇인지는 몰랐기 때문이다.
“수피즘이라는 것은 정말 너무 설명하기가 어려워. 음 뭐랄까. 가령 네가 나한테 돌을 던진다고 생각해보자. 나는 네가 던진 돌을 맞은 다음, 너에게 사랑을 베풀어 좋은 일로 되돌려 주는 거라고 할 수 있어.”
그런 철학의 지주가 낙쉬반드라고 한다. 자기가 어제 그 낙쉬반드 묘소에 가 봤는데 너무너무 좋았다며 내게 그 곳에서 찍은 새 울음소리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그게 다 신이 이렇게 아름답게 지저귀라고 했기 때문에 그런거라면서.
내가 어제 이슬람식 예배를 드렸다니까 너무 기뻐하면서 마 샤알라~ 마 샤알라~(오마이갓) 그랬다. 그녀는 오전에 초르 미노르를 보러 나보다 먼저 채비해서 나갔다.
나는 아홉시가 넘어가서도 여유를 부렸다. 오전에 낙쉬반드 묘소에 갈 수 있냐고 아저씨한테 물어보니 지금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때문에 부하라의 모든 도로를 막아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쩌면 못 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여행지에서 장소가 나를 거부하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래서 일단 밖으로 나왔다. 바로 칼론 모스크로 향했다. 정말 대통령이 오긴 오는지, 광장에는 사복경찰이 깔려있었다. 아침이라 사람이 없어서 오히려 사복경찰이 더 많았다. 모스크 안으로 들어가서 한 바뀌 쭉 둘러보았다.
머릿속에서 자꾸 미나렛에 올라갈 수 없을지에 관해 고민이 들었다. 미노라이 칼론은 현재 안전상의 이유로 올라가는 것을 막아놓았다. 그래도 아쉬워서, 아마 이쯤에 올라가는 계단이 숨어있을 것 같은데..하고 모스크의 구석을 찾아보니 역시나 있었다. 그런데 설마, 문이 열려 있었다! 주위에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고 철창으로 된 무거운 문을 열고 올라갔다.
올라가니 휑한 모스크 옥상이 있었고, 아무도 없었다. 비닐만 뿌스럭뿌스럭 날리고 있었다. 그래도 위에서 보니 뷰는 더 좋았다. 조용히 사진을 막 찍는 도중에 미나렛으로 건너가는 다리가 보였다. 역시 미나렛의 문도 열려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왜 미나렛 문이 열려있지 라는 생각이 들 때쯤, 광장 아래에 있던 사복경찰이 생각나 섣불리 옥상의 가장자리로 다가갈 수 없었다. 혹시라도 그들이 올라간 나를 보고 트러블을 만들 수도 있어서 괜한 위험한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어제 아르크에 갔다가 스나이퍼가 깔려있다는 얘기를 들었던 기억이 났다. 혹시라도 미나렛에 올라간다고 해도, 올라가서 총을 들고 감시하던 군인과 마주친다면? 생각도 하기 싫었다. 그래서 적당히 사진만 찍고 바로 내려왔다.
사실 오늘은 굉장히 여유로웠다. 부하라에서 보려고 계획했던 것은 낙쉬반드 묘소를 제외하면 어제 다 봤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천천히 내려와 시장을 지나 운하 쪽으로 걸어갔다. 기념품점에서 회사 사람들 선물 살 것 그냥 한큐에 다 사버렸다. 그리고 맞은 편에 있던 우체국에서 쓴 편지들을 적어서 드디어 한국으로 보냈다.
길가에는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고 있었고, 오케스트라 준비가 한창이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애들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게 아니라, 다 이미 그려진 그림에 칠하는 척만 하고 있었다.
이 행사들 전부 터키 대통령 오는 것 때문에 기획된 것이었다. 불쌍했다. 이 땡볕에 앉아서 한없이 기다리기만 해야하는 학생들이 안타까웠다.
이 외에도 길거리에는 어제와는 다르레 온갖 춤을 춘다든지, 누가봐도 다 아는 트릭으로 마술을 부린다든지, 그런 행사들을 늘어놨는데 전부 에르도안 대통령을 위한 것이었다.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는 언제 이곳에 올 지도 모르고,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하염없이 기다리기만 해야 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어린 아이들은 임금도 못 받을 것 아닌가.
거기에 도로란 도로는 다 막아놔서 내가 제대로 돌아다니기는 상당히 성가셨다. 그래서 대로에서 벗어나 아예 더 깊숙이 골목으로 들어가봤다. 시나고그에도 들어가보고, 보물찾기처럼 골목골목 숨어있는 유적들을 찾아보기도 하고 그랬다.
점심을 먹고 난 뒤에도 그는 오지 않았고, 사람들은 아까랑 똑같이 밥도 못 먹고 앉아있었다. 라비하우스 근처에 있는 마드라사에 구경을 가려 했으나 경호원들이 막아 못 들어갔고, 라비하우즈 한 켠에 앉아 바람이나 쐬고 있었다.
그런데 아침에 떠났던 에스라가 흥분한 얼굴로 옆에 와서 앉았다. 아 맞다, 이 사람도 터키인이었지. 방금 자기 대통령을 봤다고 너무너무 좋아했다. 그러면서 "마이 브라더, 마 샤알라(오마이갓)"이러면서 동영상 찍은 것도 보여주고, 아까 뙤약볕 아래 앉아있던 아이들과 함께 노래도 부른 동영상도 보여줬다. (솔직히 별 감흥 없었음)
자기는 방금 마드라사에 들어간 대통령을 기다릴 거라고 했다. 그래서 어차피 나도 더운데 계획도 없고 얼굴이나 보자 라는 마음으로 에스라와 그늘에 앉아있었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다가, 아랍어로 장식된 그녀의 옷이 눈에 띄었다. 물어봤더니 그녀는 지금 서예를 공부하고 있다고 한다. 서예에서 중요한 것은 알리프(|) 하나를 쓸 때에도 비율을 정확히 계산해야 하는데, 이 모든 것은 알라가 주신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도 꾸란의 토시 하나 바꾸지 못 한 채로 수백년을 내려오고 있다고. 그리고나서 나에게 자신이 전통 종이에 연습한 아랍어 서예를 선물로 주었다! 이 때는 진심으로 기뻤다. 1학년 때 아랍어 수업 들으면서 열심히 alif, ba, ta 등등 썼던 기억이 났다.
그러다 경호원을 둘러싼 한 무리의 사람들이 다가왔고, 에스라는 벌떡 일어나 다가가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알고보니 터키 외교 장관이라고 한다. 그녀는 흥분해서 어쩔 줄 몰라하다 결국 마드라사 근처로 갔다.
나도 같이 가서 한참을 기다려도 나오지 않았다. 도대체 그 사람이 뭐라고 부하라까지 와서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지 약간 어이가 없었다. 그래도 일정을 망치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애초에 계획이 없었어서... 그래도 얼굴이나 한 번 보자 했는데 결국 건물에서 나오자마자 쌩 하고 벤츠타고 사라져 버렸다.
허무했다. 뭐 애초에 엄청 기대를 한 건 아니어서 실망이 크지는 않았지만 그거 하나 보겠다고 시간을 버린게 아까웠다. 그냥 다리도 아픈데 쉰 셈 치고 에스라와 함께 미노라이 칼론으로 향했다.
도착하자 그녀는 너무너무 흥분해서 인스타 라이브를 시작했다. 내가 보기에 에스라는 인스타 중독이었다. 팔로워도 2천명이나 됐다. 그렇게 나는 걷고 그녀는 인스타 라이브로 방송하고 걷다가 미르아랍 마드라사에 들어갔다.
내가 이 곳은 실제로 사용되는 마드라사이기 때문에 관광객은 못 들어간다고 하니까, 그녀가 자신있게,
“난 미친 사람이라 포기는 없어, 그러니까 나만 믿어, 대신에 너는 오늘 하루 무슬림이야. 알겠지? 혹시 누가 뭐라고 하면 라이라히이라알라(알라 이외에 신은 없다)라고 말 하면 돼~”
라고 하고 내 팔을 붙잡고 마드라사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를 제지하던 한 아저씨와 이런저런 대화를 주고받더니,
미소지으며 안쪽으로 안내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