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루지kluge>
너는 인간이 완전한 존재라고 생각해 불완전한 존재라고 생각해?
누군가 내게 이렇게 물어본다면 큰 고민 없이 불완전한 존재라고 답할 것이다. 문제는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물어볼 때다.
"어... 음... 합리적이거나 이성적이지 않을 때가 많으니까...?"
기껏해야 이 정도 답을 할 수 있으려나. 인간은 불완전하다고 단언함에도 어떤 점이 그렇게 불완전한지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은 다소 아이러니하고 민망하다.
이 책은 인간의 마음이 '클루지'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클루지스러운 모습을 기억, 신념, 언어 등 아주 구체적인 소재를 통해 생생한 예시와 함께 보여주며, 그 원인을 진화심리학적으로 설명한다. 책의 말미에는 짤막하게나마 그 결함들을 보완할 수 있는 몇 가지 팁도 제시한다.
우선 '클루지'가 무엇이냐. 저자는 '클루지'를 어떤 문제에 대한 서툴거나 세련되지 않은 (그러나 놀라울 만큼 효과적인) 해결책이라고 정의한다. 인간의 마음이 클루지라는 것은 인간의 마음이 삶을 살아가는 데 적당히 기능을 하기는 하지만 완전무결한 최선의 상태는 아니라는 의미다.
저자가 '모든 클루지의 어머니, 단일 요인으로는 인간의 인지적 기벽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것'이라고 지칭하는 '기억'에 대해 맛보기로 소개해 본다.
저자는 우리의 허술한 기억력에 대해 개탄하는데 그 원인을 '맥락 기억contextual memory' 체계에서 찾는다. 컴퓨터의 기억 체계와 달리 인간은 맥락이나 단서를 통해 무언가를 기억하도록 진화되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화장실에 있을 때보다 부엌에 있을 때 요리에 대해 더 잘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
맥락 기억은 유용성이 높은 정보를 빠르게 기억해 낸다는 장점이 있지만 단서를 중심으로 기억하기 때문에 내용의 신뢰성이 낮다는 단점이 있다. 또한 기억이 한데 뒤섞임에 따라 결과적으로 기억이 왜곡되기도 한다. 평소에는 기억이 일정 부분 왜곡되더라도 일상생활에 큰 지장이 없겠지만 구체적이고 정확한 정보를 기억해내야 할 경우, 이를테면 법정에서의 목격자 증언과 같은 상황에서는 문제가 된다.
몇몇 사람들은 이러한 기억의 한계를 오히려 환영하는 것처럼 보인다. 가장 흔한 주장은 어떤 기억들은 차라리 잊는 편이 낫고, 불완전한 기억 덕에 우리의 고통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던 사람 중 하나다.) 이에 대해 저자는 인간은 기억하고 싶은 것은 기억하고, 잊고 싶은 것은 잊도록 설계되어 있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우리의 기억은 맥락과 빈도, 그리고 최근도의 함수일 뿐, 내면의 평화를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인간의 기억 체계는 이렇게 진화되었습니다.'라고만 글을 맺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허술한 기억 체계에 대처하는 몇 가지 기억술도 제시한다. 한 발 더 나아가 이 기억술들에도 한계를 느낄 경우 기억의 한계에 맞추어 우리의 삶을 조정하면 된다는 귀여운(!) 조언을 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열쇠는 꼭 현관에 두는 식이다. 다양한 기억술로 기억력을 높여도 좋지만 반대로 기억에 대한 요구를 줄이는 방향으로 습관을 들이는 것도 방법이라는 것이다.
'기억'편이 흥미로웠다면, 혹은 '신념', '언어', '의사결정' 등의 다른 클루지들이 궁금하다면, 아니면 생각해본 적 없는 소재들에 대한 신선한 정보를 접해보고 싶다면 오늘 밤 <클루지> 한 권 어떠신가요.
저자는 위트 있는 문장으로 다소 어려울 수도 있는 소재들을 꽤나 흥미롭게 녹여냈으니 한 챕터 정도 읽어봐도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