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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롬 Jun 11. 2020

그 순간 웃어버린 내가 너무 실망스럽다

"장애인에서 탈출한 느낌이에요."


처 카센터에서 차 수리를 마치고 온 동료가 말했다. 그는 현지어를 모르는 상태에서 이곳 로마에 오게 되었고, 처음에는 일상의 아주 작은 일에서도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했다. 조금씩 이탈리아어를 공부한 그는 이제 혼자서도 필요한 것을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며 그동안의 답답했던 생활을 장애에 비유한 것이다. 여기까지만 읽은 누군가는 그가 굉장히 개념 없고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물론 저 말은 해서는 안 되는 말이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고 나는 평소에 그를 안 좋게 생각해본 적이 거의 없었다. 본인이 맡은 업무에 책임을 다하는 것은 물론이요, 항상 팀원들을 배려하려 노력하는 그였다. 남들이 다 주저하더라도 해야 할 말이라면 먼저 용기를 내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는 내게 충분히 훌륭한 직장동료였다. 다만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인권감수성이 다소 부족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 역시 풍부한 인권감수성의 소유자가 아닌데 다른 사람의 인권감수성에 대해 논도 되는 걸까.


반전(?)이 있다. 그의 말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불쾌한데 내 기분을 더 나쁘게 만든 것은 순간 내가 웃었다는 사실이다. 전혀 재밌지 않은 저 말을 듣고 나는 "하하"하고 웃었다. 그리고 이내 부끄러웠다. 저 일이 있고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자신이 실망스럽고, 가슴에 맺힌 묵직한 응어리가 풀리지 않는다.

  

나는 내가 왜 웃었는지 알고 있다. 일종의 '착한 아이 콤플렉스'. 평소 주변 사람들에게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둥, 회사에서만큼은 적당히 싸가지없는 게 차라리 낫다는 둥 착한 아이 콤플렉스와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고 다니지만 사실은 현재의 내가 정말 그렇다기보다 내가 바라는 이상을 자꾸 되뇌는 것에 가깝다. 그렇게 선언(?)을 하다 보면 언젠가 정말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옆의 누군가가 말을 내뱉었고,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은 나는 그 말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전혀 생각하지 않은 채 맞장구를 쳤고, 그게 웃음으로 발현되었다. 생각을 하고 웃었어야 했는데, 웃고 나서 생각을 하게 된 나는 내가 여전히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라는 사실에 자꾸만 심연으로 가라앉는다.


그때 나는 어떻게 반응했어야 했을까. 그런 인권 침해적인 발언은 듣기 불편하다고 정면으로 나서야 했을까. 나중에 둘만 있을 때 그런 말은 좀 그렇지 않냐고 가볍게 언급하는 게 좋았을까. 아니면 그냥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 것이 현실적으로 적당했을까. 웃음이 부적절했다는 것은 확실한데 그렇다고 적절한 반응이 무엇인지 여전히 모르겠는 나는 머리와 마음이 계속 복잡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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