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우울우물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도연 Dec 16. 2020

대충대충할테니

대충대충 할테니 대충대충 읽어주세요.

대충살자.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이 말을 되새긴다. 나를 일으키는 첫말. 대충살자. 물에 빠지지 않으려 잔뜩 겁을 먹고 팔을 휘휘 저으며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임당수로 빨려들어가는 심청이라고 생각했었다. 언니 말로는 내가 어려서 조금 과장하는 버릇이 있다고 했다. 호들갑이 심했다고. 꼭 과거형이라 말하고 싶다. 지금은 팩트위주로 뼈를 때리는 김객관 씨라고... 나는 나를 그리 부르니까. 


그사이 동생이 많이 아팠고 중환자실에 들어간 그 친구를 걱정하느라 내 감정의 안위를 물을 새가 없었다. 나는 동생과 닮았고 꽤 친하다. 같이 살 때 동생의 회사 동료가 나를 보고 동생으로 착각할 정도로, 옷을 사러 들어간 상점에서 주인이 우리를 쌍둥이로 오해할 정도로 닮았다. 섬망이 와서 헛소리를 한다는 말을 전해듣고, 섬망증상을 검색해 보니 죽기 전에 기력이 소진된 환자가 하는 행동이라는 글을 찾게 되었고, 울어버렸지 뭐. 의사 선생님이 썼다는 지식인 검색의 답글이었는데, 의사선생님이 너무 겁을 많이 줬더라. 동생은 두달만에 퇴원을 했고 나는 병원에 감사하다는 의미로 답례떡을 돌렸다. 죽음의 사신이 잘 지나가기를, 우리 가족은 가만히 숨죽였었다. 사신은 후레시로 가족의 얼굴을 일일이 비추었고 동생의 들숨날숨에 따라 불빛이 밝아졌다 어두워지기를 반복했다. 한번도 태어나서 우는 모습을 본 적 없는 아버지가 울었고, 무릎 관절이 좋지 못한 어머니가 중환자실을 나오다 넘어지셨고, 조카가 유치원에서 친구를 물어버렸다.  


아버지는 밭에 까마귀가 하루종일 날아와 까악까악 울어댄다고, 불길해서 걱정이라고, 전화기를 통해 우울한 말을 전해왔다. 그런데 어떤 것도 해줄 수 없어서 답답하다고. 아버지는 동생을 특히 예뻐하는데 상심이 크신 듯 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내가 죽어도 이렇게 사람들이 아파할까, 동생만큼은 아니겠지, 아무래도 동생만큼은 아닐거야라는, 솔직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건 내가 죽어보지 않았으니 모를 일이다. 동생은 아플 때 남편이 옆에 있어야지 아무도 없으면 너무 불쌍하다고 했고, 병원에서 남편이 없는 여자들은 얼마나 불쌍한지 모른다며 돌아갈 가족이 있다는 게 병을 이기는 힘이라고 했다. 엄마는 옆에 누구라도 있으면 눈을 낮춰 주우라고...(어머니의 표현) 했지만,  그 말을 들은 나는 비루해 질 바에는 깔끔하게 뒈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이렇게 내 멋대로 해석한다.


동생은 다시 가족의 곁으로 왔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일상이라는 바퀴를 굴리고 있다. 밥을 챙겨먹고 유튜브로 웃긴 영상도 찾아보고, 가끔은 짜증도 내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일상이라는 부르는 것들을 해내고 있다. 삶은 살아진다. 아침에 눈을 떠 시간의 등 위에 올라타면 어디를 정처없이 떠돌다가, 이렇게 괴로운 하루가 절대 끝날리 없다며 머리를 절래절래 저어도 해질녘에는 집에 돌아와 누워 있다. 시간의 등 위에서 내리고 싶다고, 제발 내려달라고, 응앙응앙 울어봐도 제 때가 되면 우리는 모두 다 내려야한다. 


그때까지는 조금 더 버티는 걸로. 여전히 삶이 그렇게 신나거나 재미는 없어도 안간힘을 쓰지 않기로 했다. 애쓰는 나는, 내가 봐도 조금 안쓰러워 자기 연민에 빠지기 쉽다. 연민은 우울을 부른다. 물에 빠지지 않으려 잔뜩 겁을 먹고 팔을 휘휘 저었는데 알고보니 얕은 웅덩이었을지도 모르니까. 개구리들이 왁자지껄 울어대는 개구리밥으로 가득한 작은 웅덩이에서 응앙응앙 주문을 외워본다. 대충대충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디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




매거진의 이전글 북촌일기- 봄날의 창덕궁 오후 2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