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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연 Apr 20. 2022

[4월 19일] 부메랑

던지지 않으면 돌아오지 않지  

잔인해지고 싶을 때가 있다. 나는 적당히 호구였고 적당히 사기를 당했으며, 이에 보상이라도 받듯 적당히 친구들의 조롱과 위로를 받았다.  호구의 장점이라고 하면 가끔은 사람들에게서 "애는 착하다"라는 말과 함께 동정표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지. 관심이든 동정이든 나를 안타깝게 봐주는 사람들의 보살핌이 보상으로 돌아오니, 호구 짓을 멈추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중독성이 강한 호구 짓.


착하면 어떤 일이 생기는 줄 아니? 돈을 뜯기는 아주 스펙타클한 사건 말고, 일상에서 잔잔하게 일어나는 일 말이다. 말이 많아진다. 어색한 상대방과 앉아 있다면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상대방이 기분 좋은 순간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소리 저소리 지껄인다. 말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불편해서... 내 감정이 불편해서가 아니라, 침묵 속에 내버려진 당신이 불편하고 행복하지 않을까 이말 저말 하면서 침묵을 깨 주는 것이다. 침묵이 무슨 얼음장도 아니고, 상대방이 얼음 속에서 바들바들 떠는 것도 아닌데 여러 상황까지 고려하고 마음을 쓰다보면 자연스럽게 아가리가 열린다. 덜덜덜. 그리고 이 말 저말 아무 말이나 소리 내어 얼음을 깨어본다.


누군가 불행한 일을 당했다고 하소연을 하면 그걸 내가 해결해 줘야 할 것 같은... 강한 부담감에... 오답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그냥 들어만 달라고. 그냥 내 앞에 앉아 경청하는 귀로 존재해 달라는 무언의 요청에 귀 막고, 오직 상대방에게 해결책을 줘서 낫게 만들겠다는 의무감에 휩싸일 뿐이다. 집에 오는 길에 왜 이리 지치나 생각해보면, 나는 너무 착했고, 착해서, 착하므로, 어리석고, 지쳐버렸다.


불 꺼진 집에 들어와 씻지도 않고 웅크리고 앉는다. 핸드폰을 충전기에 꽂고 숫자가 올라가는 것을 지켜본다. 20% 30% 아이가 젖을 먹듯 파란 게이지의 숫자가 올라간다. 너 배고팠구나. 하루 종일 쓸데없는 카톡에 일일이 답하고 통화하면서 지치고 힘든 건 나인 줄 알았는데 네가 축나고 있었구나. 밥 먹는 핸드폰 옆에 앉아 하루 종일  뱉은 말들을 곱씹어 본다.  읽씹 당한 카톡도 읽어본다.


"누가 나를 멈춰줬으면 좋겠어. 불안해하는 나를, 가만히 있으면 거절당할 것 같아... 이렇게 저렇게 애쓰는 나를 가만히 있어도 된다고 나직하게 말해주면 좋겠어. 내 말이 부메랑이 되어 나를 다치게 하지 않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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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으로 자판을 치며 짧게 글을 씁니다.

친구가 준 키워드는 부메랑이었어요.

돌아오는 것. 뭘 실고 돌아올까요.

너무 애쓰지 말고 가볍게 살자 고민하며 자기 전에 짧게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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