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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알 Nov 04. 2022

남녀 모두의 축구

차연희 감독 취재기


막 스포츠부로 발령받은 5월 초부터 선배들은 이제 2년 차가 된 내가 적응하도록 여러 도움을 줬다. 그달 말 내가 담당하게 된 프로축구 K리그 구단 강원FC의 프런트 사람들과 술자리에 나를 불러준 것은 빨리빨리 돌아가는 정보꾼의 세계에서 내가 조금이라도 사람 같이 구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거기서 만난 프런트 직원이 “우리 구단에는 기사가 될 만한 대단한 사람이 많다”고 하자 어느 선배가 누가 있냐고 물었고, 그는 누가 있고, 또 누구도 있다고 했다. 그 대열 중 유일하게 기억나는 이름이 전 여자축구 국가대표 선수였던 차연희였다. 작년까지만 해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 살았기 때문이다. 대학에 입학하고서부터 8년을 연희동에서 살았고, 그 동네가 좋았다. 지하철역에서 꽤나 거리가 있어서 마을버스를 타고 돌아다녀야 하는 동네지만 마당이 있는 고급 주택들이 즐비해 건물들의 높이가 낮아 하늘이 잘 보였다. 브런치 식당과 국밥집도 곳곳에 있어 상황대로 골라먹기 좋았다. 무엇보다 내 친구들이 있었다. 다들 각자의 길을 가면서 학교를 떠난 지금은 아무도 거기에 살지 않는다.


리오넬 메시처럼 공을 잘 차서 ‘지메시’라는 별명이 붙은 지소연보다도 일찍 유럽에서 뛰었다고 그 직원은 열변을 토했다. 그때 나는 사실 여자축구 같은 건 아무래도 좋았다. 남자도 여자도 다 같은 사람이라서 발이 달렸으니 축구를 하겠지. 축구를 하면 리그가 있겠지. 여러 국가가 할 테니 대표팀끼리도 붙겠지 정도로 생각했다. 새 부서에서 무슨 기사를 어떻게 써야할지도 모르는데 은퇴한 선수까지 세상에 소개할 여유가 없었다. 3주 정도가 흘렀고, 6월 중순 콜린 벨 감독이 이끄는 우리나라 여자 축구대표팀이 평가전을 준비하기 위해 경기도 파주에 모인 현장을 취재하고 나서 내 생각은 조금 바뀌게 된다. 훈련의 밀도와 강도는 남자 선수들 못지않아 보였다. 그 선수들도 쉴 새 없이 단거리를 전속력으로 질주하고, 공에 몸을 날리며 태클을 했다. 속으로 호오 여자축구 선수들 대단하잖아, 다들 자기 일에 진심이군, 대충하는 사람이 없어, 하고 감탄했다. 내가 겨우 안면을 튼 타사 기자는 새삼스럽다는 눈으로 날 쳐다봤다. 그때 파주에 있던 기자 중 감탄한 건 나뿐이었던 것 같다.

https://www.yna.co.kr/view/AKR20220706096800007?section=search

7월이 되자 유수 영미권 외신에서는 ‘여자 유로 2022’라 불리는 2022년 여자 유럽축구선수권대회 기사를 연일 메인 페이지에 걸었다. 대서특필할 만 했다. 영국에서 펼쳐진 이 대회는 엄청나게 흥행했다. 대회 총 관중은 57만4천875명으로 역대 최다 기록을 세웠다. 잉글랜드와 독일의 결승전에는 8만7천192명의 관중이 찾았다. 남녀 유럽선수권대회를 통틀어 역대 최다 관중이다. 상암에 있는 서울월드컵경기장의 최대수용인원이 6만6천여석이다. 아무리 국가대항전이라지만 여자축구 경기에 이토록 많은 관중이 찾는다는 사실에 놀랐다. 실제로 작년 런던에서 열린 이탈리아와 잉글랜드의 남자축구 선수권대회, 속칭 유로 2020 결승전 관중도 이보다 2만명이 적었다. 여자 축구가 더 흥행했다는 게 어릴 적 또래 남자애들과 공을 차고 놀았던 내게는 특별한 이정표처럼 다가왔다. 물론 단순히 관중 수만으로 흥행을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 영국 BBC방송 보도를 보니 여자 유로의 입장권 가격은 15파운드(약 2만4천원)부터 시작했지만 작년 남자 유로 결승전 가장 싼 좌석이 250파운드(약 41만원)였다. 


그러나 티켓값 차이는 빼고서라도 아무래도 유럽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 분명해보였다. 또 우리나라에는 그 무슨 일이라는 게 벌어지지 않았다는 것도 분명해 보였다. 국가대항전이 아니긴 하지만 우리도 여자 유럽축구선수권대회처럼 ‘선수권대회’가 붙은 게 있다. 국내 최고 권위의 전국여자축구선수권대회다. 마침 여자 유로 막바지인 7월 말에 시작해 8월 9일에 끝난 그 대회는 우리나라 여자 선수들이 뜨거운 여름을 보내는 경쟁의 장이 됐다. 나는 한국여자축구연맹에 올해 경기당 평균 관중 수를 물어보려다가 그만뒀다. 올해 잉글랜드 슈퍼리그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와 수원FC위민에 합류한 여자축구 간판인 지소연이 8월 19일 실업축구 리그인 WK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수원FC가 보은 상무를 3-0으로 격파한 이 경기가 올해 WK리그 최다 관중 경기다. 수원종합운동장에 1천91명이 찾아왔다. 여자 유로 결승 관중의 88분의 1 수준이다. 굳이 두 대회를 비교해 기사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무리한 기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알릴만 한 뉴스를 쓰라는데, 이런 차이는 전혀 알릴 만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명색이 지구촌 시대인데 우리나라가 세계적 흐림과 완전히 동 떨어진 건 아니었다. 최소 생활체육에서는 축구를 즐기는 여성들은 많아졌다. SBS 예능 프로그램 ‘골때리는 그녀들’의 인기가 이런 생활체육 측면에서 여자축구 부흥의 원인인지 결과인지는 분명치 않다. 하여간 이 예능이 증폭기나 촉매 역할을 하는 건 맞는 것 같다. 작년 설특집 파일럿으로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6월에 정규방송으로 편성됐다. 그해 10월부터는 시즌2가 출범했고 지금까지 순항 중이다. 시청률 조사회사 닐슨 코리아 조사를 보면 안정적으로 6~7%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는 동안 K리그 팀들은 앞다퉈 여성 동호인 풋살 팀을 창설했고, 한국프로축구연맹도 2010년부터 주최해왔던 여자 대학생 동아리 축구 대회를 올해부터 성인 여자 풋살대회로 확대 개편했다. 강원FC도 올해 8월 여자 풋살팀 ‘오렌지 레이디’를 창단했다. 도내 20∼40대 여성을 대상으로 풋살팀에서 활동할 10인의 선수를 뽑았다. 8월 8일 이런 사실을 알려온 구단의 보도자료에는 오렌지 레이디의 사령탑이 유소년 아카데미를 담당하는 차연희 감독이라고 적혀 있었다.

https://www.yna.co.kr/view/AKR20220802004000085?section=search

그날 회사 데이터베이스에서 차 감독에 대한 기사를 찾아봤다. 2009년 4월 2일에 기사가 집중돼 있었다. 그날 차 감독은 박희영이라는 또 다른 선수와 서울 종로구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취재진에 한국 선수 중 1호로 유럽에 진출하는 포부를 밝혔다. 독일 프로축구 SC 07 바트 노이에나르 입단을 알리는 자리였다. 기사에는 차 감독은 그때 “처음 나간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낀다. 좋은 활약으로 한국 축구의 강한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했다고 나와있다. 후에 지소연도 비슷한 뉘앙스로 말했다. 2014년 1월 28일 영국으로 출국한 지소연은 인천공항을 나서며 “제가 잘해야 한국 여자축구가 많은 관심을 받을 것”이라고 당차고 또 비장한 각오를 밝혔다. 지소연보다 일찍 책임감을 느낀 ‘유럽 진출 1호’ 차연희는 1년 2개월간 독일 무대를 누비고 돌아와 2018년까지 국내에서 선수생활을 이어갔다. 입지적 인물이라는 강원 프런트 직원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후 내가 인터뷰를 추진해달라고 요청한 건 단순히 입지적이라서가 아니다. 차 감독은 어떤 면에서 최근 여자축구의 흐름을 반영하는 상징적 인물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차 감독은 한국과 유럽, 남자축구와 여자축구, 엘리트와 생활체육 사이 모든 흐름의 교차점에 있는 듯한 인물이었다. 그는 한국 여자축구 선수 중 최초로 유럽 무대를 누빈 선수다. 국가대표팀을 이끌었던 에이스로, 국내 엘리트 선수 중 정점에도 서봤다. 지금은 오렌지 레이디라는 여성 동호인 팀을 이끄는 유소년 축구 지도자인데, 남자 프로축구단에서 그 직책을 맡고 있다. 무엇보다 나같이 축구를 ‘남자 문화’로 인식하는 한국 사회에서 버텨온 여성 축구인일 터였다. 나는 그 여성 축구인을 결국 만났다. 인터뷰는 9월 6일 강원 춘천의 강원FC 유소년 아카데미 건물에서 이뤄졌다. 시내에서 10분가량 차로 이동하자 높은 건물이라고는 볼 수 없는 교외의 평화로운 풍경이 펼쳐졌다. 중앙선 등 차선이 희미해진 시골 도로의 모서리에 듬성듬성 전봇대가 박혀 있고, 뒤편으로 텃밭에 지푸라기와 용도를 모를 검은 비닐들이 잔뜩 뒤엉킨 채 버려져 있었다. 곧 3~4층 빌라 건물이 몇 채 나타나더니 평탄한 땅에 큰 검은색 컨테이너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공이 나가지 못하게 그물로 쌓여 있는 야외 풋살장이 그 옆에 설치돼 있었다. 차 감독의 일터였다.


차 감독은 본래 선수 생활을 접고 현업에 복귀하지 않으려 했다. 은퇴 후 가장 먼저 선택한 게 커피라는 차 감독의 대답에 사뭇 놀랐다. “가족이랑 시간을 보냈어요. 한 1년 정도. 제가 커피를 워낙 좋아해서 바리스타 자격증을 1급까지 땄어요.” 지역지 장성투데이에는 전남 장성군 북일면 출신의 차 감독은 읍내 카페 매니저 일도 잠깐 했다고 나와있다. 차 감독은 “일은 힘들었는데 즐거웠다. 좋아하는 커피 일을 하면서 새로운 경험도 했다”며 “카페 일을 하는 동안 팬이라면서 나를 알아봐주는 사람이 딱 한 명 있었다. 색다른 경험이었다”고 되돌아봤다. 미래를 고민하던 차 감독에게 지인들이 축구일을 도와달라고 부탁했고, 그렇게 축구계로 돌아왔다. “지도자 과정을 밟을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차 감독이 거듭 강조했다. 사설 축구교실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지난해 5월 갑자기 차 감독에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이영표 강원FC 대표이사였다 그는 팀에 유소년 아카데미를 만들 계획이니 감독을 맡아달라고 제안했다. 차 감독은 “교류도, 친분도 없었다”며 “여자축구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았다. 내게 설명해주셨던 여자축구, 유소년 축구에 대한 비전이 마음에 들어 수락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얼떨결에 남자 프로축구팀의 유소년 지도자가 된 차 감독은 내가 듣고 싶었던 모든 주제에 대해 자기 생각을 들려줬다. 그와 이야기할수록, 매 질문마다 깊게 고민하지 않고 내놓는 단호하고 튼튼한 대답을 들을수록 점점 짐작이 확신으로 변해갔다. 차 감독은 최근의 여자축구를 둘러싼 변화를 시대보다 앞서 자신의 삶으로 체험해왔던 사람이 맞았다. 차 감독은 무엇보다 최근 여성들이 축구에 보이는 관심이 커졌다며 기꺼워했다. “축구는 남자가 하는 스포츠라는 선입견이 있었잖아요? 축구는 그냥 하나의 종목일 뿐인데 거기서 남녀를 구분 짓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차 감독은 “힘들고 몸싸움도 과격한데 여자가 어떻게 하냐는 선입견이 오히려 일반 여성분들에게 더 많았던 것 같다”며 자신이 겪은 일화를 들려줬다. “축구하면 살이 좀 빠지냐고 처음에는 많이들 그렇게 물어보셔요. 그러면 농담으로 저도 ‘뺄 수는 있는데 식단 조절하셔야 해요’라고 답하죠.” 차 감독은 여성들도 이제 팀 스포츠의 재미를 아는 시대가 됐다고 봤다. “이제 필라테스, 헬스, 런닝 같은 개인 종목들이 아닌 진짜 팀 스포츠의 매력을 다들 느끼는 거죠.” 미용이나 몸 관리와 같이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닌 운동 그 자체를 위해 축구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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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스포츠의 매력을 알게 됐다는 차 감독의 진단은 틀리지 않았다. 차 감독의 현장 경험은 작년 11월 나온 논문에서 김재운 경인교대 교수와 박찬우 서울대 강사가 내놓은 분석과 거의 유사했다. ‘축구의 매력에 빠진 그녀들’이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두 연구자는 13명의 여대생들이 여자축구 동아리에 그렇게 매진했는지 이유를 들었다. 여대생들은 일단 축구라는 종목 자체가 재미있다고 했고, 또 팀으로서 결과를 내는 과정이 그간 경험하지 못한 일체감을 선물했다고 진술했다. 구력 3년의 수비수라는 한 여대생은 “(대회에서) 승부차기 끝에 졌다. 결과나 나오자마자 양 팀이 다 달려 나갔고, 우리는 골키퍼에게 가서 ‘우리 고생했다’며 껴안았다”고 되돌아봤다. 역시 구력 3년의 골키퍼인 한 학생은 “같이 있으면 행복하다”고도 했다. 이게 차 감독이 말한 팀 스포츠의 매력이다. 무엇보다 연구 참가자들은 여자축구가 그냥 축구가 아니라 ‘여자끼리 하는 축구’라는 점을 꼽았다. 여자축구는 축구와 달리 여학생들도 주도적으로 즐길 수 있는 종목이다. 남자가 없기 때문이다. 구력 4년의 공격수는 중학교 때 축구하던 남학우들을 언급하며 “거기에 끼려면 잘해야 했다. 남자애들한테 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돌아봤다. 신체적, 기술적 숙련도가 비슷한 처지끼리 ‘잘해야 한다’는 부담 없이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생활 체육 분야에서 여성들의 약진을 반긴 차 감독의 얼굴은 ‘전문 스포츠’로서 여자축구 이야기를 꺼낼 때는 어두워졌다. 차 감독은 여자 유로의 흥행을 알고 있다며 그렇게 놀랄 만한 일도 아니라고 했다. 그 열기를 몸으로 겪어봤기 때문이다. 차 감독은 “내가 독일에서 뛸 때가 10년 전인데 그때 일반 리그 경기인데도 경기장이 매진되는 날이 있었다. 남자 A매치(국가대표팀 간 경기) 수준으로 관중이 오기도 했다”고 말했다. 차 감독의 소속팀이었던 SC 07 바트 노이에나르는 독일 서부의 작은 도시 바트 노이에나르아르바일러가 연고지다. 라인강가의 구릉지대에 선 도시로,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 프랑스의 영토로 넘어갔던 적도 있다. 16세기부터 광천수가 발견돼 도시 곳곳에 온천이 발달했다. 근대화 이후 온천탕을 비롯한 휴양시절이 우후죽순 들어서며 독일에서 ‘노년을 보내고 싶은 곳’으로 꼽힌다고 한다. 2020년 말 기준 도시 전체 인구는 2만9천명 정도다. 이차 감독의 고향인 전남 장성군의 2020년 인구인 4만4천여명보다 적다. “내가 뛰던 팀은 시골에 있었어요. 그런데도 시즌권 구매자가 매 경기 1천명은 넘게 경기장을 찾아왔어요. 정말 뛸 맛이 났죠.”


차 감독은 “그 작은 도시에서 너나 할 것 없이 오는 게 신기했다. 아이들부터 성인, 할머니, 할아버지 가리지 않고 다 우리의 축구를 보러왔다”고 말했다. 차 감독은 그때를 그리워했다. 물론 출전 경쟁은 쉽지 않았다. 육상 선수 출신인 차 감독은 “내가 우리나라에서는 빠른 편인데 독일에서는 100%로 뛰어도 현지 선수들이 70%로 뛴 것과 비슷했다”며 “힘에서 밀리니 아이가 된 것 같았다”고 말했다. “놀라운 게 그 친구들은 다 공무원, 경찰 같은 직업이 있는 거예요. 저녁에만 훈련했어요. 물론 저는 오전부터 계속 공만 찼는데도 쉽지 않더라고요.” 독일과 유럽 선수들이 얼마나 잘하는지, 프로 선수라면 한 수 위 무대를 왜 경험해야 하는지, 진지한 이야기를 이어가면서도 차 감독은 옛 생각이 나는지 연신 웃었다. 그는 “나름대로 열심히 해서 선발 멤버에도 들었고, 골도 도움도 기록했다”며 “그때 정말 좋았다. 부모님이 독일까지 첫 골을 넣은 날이 보러오셨을 때였다”고 회상했다. 가족을 향한 세리머니를 했냐고 묻자 배시시 웃었다. “기억이 잘 안나요. 엄마한테 손으로 하트 정도를 보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애들이 와서 장난으로 ‘엄마가 와서 골 넣은 거냐’ 놀렸죠. 그 장면은 기억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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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현지 생활 자체가 녹록지 않았다. 차 감독은 낡은 자전거를 구해야 했던 사연을 들려줬다. “훈련장과 집 사이 거리가 도보로는 멀었죠. 원정경기를 다녀오면 새벽 1시가 넘어서 훈련장에 도착해요. 그런데 차가 없어서 오래된 자전거 하나를 구해서 그걸 타고 다녔어요.” 인기 종목인 프로축구 선수가 차를 살 돈이 없었다니, 속으로 놀랐지만 최대한 내색하지 않으려 애쓰며 당시 보수를 넌지시 물었다. 차 감독은 “지금으로 치면 100만원이 안 되는 돈을 받고 생활했다. 물가도 비싸서 열악하게 살았다”고 답했다. 원정 경기를 갈 때도 리무진 버스를 빌려서 팀 전체가 이동하는 현재의 K리그 구단과 달리 직접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이동했다고 했다. 경기장까지 이동 경로가 복잡해 곤란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나는 이때 인터뷰 기사의 제목으로 ‘유럽 무대의 외로운 개척자’라는 문구를 꼭 넣겠다고 결심했다. 회사 방침상 제목은 60바이트를 넘을 수 없는데, 차연희라는 이름과 ‘유럽 무대’, ‘여자축구’, ‘외로운 개척자’라는 단어를 모두 넣으려니 어떻게 해도 그 기준을 넘어 머리를 싸맸지만 그 얘기를 들으니 어느 한 단어도 빼기가 싫었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여자축구’의 ‘여자’를 한자로, ‘유럽 무대’를 ‘유럽땅’으로 줄였다. ‘女축구 유럽땅 '외로운 개척자' 차연희 "축구, 남녀 모두의 것"’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됐다. 


사실 차 감독이 겪은 생활고는 사실 내가 가장 따져보고 싶었던 ‘임금’과 연결된 부분이기도 했다. 여자 유로의 흥행은 남녀 축구선수 사이에 존재하는 임금 격차를 수면 위로 드러냈다. BBC는 폐회 사흘 뒤 이 격차를 지적하는 기사를 냈다. 잉글랜드 남자 대표팀 주장 해리 케인(토트넘)과 여자 대표팀 주장 레아 윌리엄슨(아스널 WFC)의 수입을 비교한 BBC 기사에서 여자 선수들이 마주하는 ‘우승 이면의 현실’을 드러났다. 여자 유로의 흥행을 이끈 윌리엄슨은 2021-2022시즌 20만파운드(약 3억2천만원)가량을 번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수 연봉 추적 사이트인 스포트랙을 보면 이 20만파운드는 딱 케인의 1주일치 급여다. 케인의 단짝 손흥민의 주급도 비슷한 수준인 19만2천파운드로 파악된다. BBC 자체 분석에 따르면 잉글랜드 여자슈퍼리그(WSL) 선수 평균 연봉은 4만7천파운드(약 7천500만원)이고, 남자 리그인 EPL의 평균 연봉은 이보다 100배가량 많은 470만파운드(약 75억원)이라고 한다. 물론 선수 연봉은 공개 자료가 아니라 정확한 수치는 아니다. 실제로 BBC도 중간 규모 클럽인 레스터시티, 울버햄프턴 원더러스,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선수단의 임금을 토대로 ‘대략적으로’ 산출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같은 아웃라이어 고액 연봉자가 계산에 들어가면 간극은 더 커질 것이다.


모든 현상에는 그렇게 귀결된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런 격차는 근본적으로 선수들이 몸담고 있는 리그와 팀의 수익 규모 차이에서 발생한다. BBC는 이를 보여주기 위해 글로벌 회계법인 딜로이트 자료를 통해 현 EPL 최고 구단이라는 맨체스터 시티를 분석했다. 이 구단은 남녀 팀을 모두 운영한다. 남자 팀은 2020-2021시즌 EPL에서 5억7천100만파운드(약 9천142억원)를 벌었다. 이 중 62%가 선수단 임금으로 빠져나갔다. 같은 기간 여자팀은 WSL에서 290만파운드(약 46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남자팀의 200분의 1에 불과한데, 선수단 비용이 330만파운드(약 53억원)로 전체 수익을 초과해버렸다. 애초에 관중 수익에서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차이가 나지만, 무엇보다 중계권을 통한 수익 차이가 절대적이다. 남자 팀 수익의 85%가 중계권과 후원사를 통한 것이다. EPL의 전신 격이라고 봐야하는 잉글리시 풋볼리그(EFL)은 1888년에 출범했고, WSL은 2010년 이후 창설됐다. 뒤늦게 시작한 여자 프로리그가 똑같은 중계권 수익을 누린다는 건 사실 불가능한 일이다. 얼핏 봐서 남녀 선수들 모두 축구라는 동일한 ‘노동’으로 돈을 버는 것 같지만, 당장 그들의 작업장, 경제적으로 전혀 다른 세계에 있는 EPL과 WSL을 과연 같은 선상에 놓을 수 있는 활동인가 물으면 대답을 주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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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이런 여자 프로축구 리그조차도 없다. 실업 무대인 WK리그만 있다. 차 감독은 “아무리 실업 스포츠라고 하지만 여자축구 선수의 연봉은 규정상 5천만원이 최대”라며 “선수 처우가 내가 뛰던 10년 전과 달라진 게 없다”고 했다. 지난해 기준 K리그 연봉 1~3위는 전북 김보경(13억원), 울산 이청용(12억 8천600만원), 전북 홍정호(12억 6천200만원)로 비교가 안 된다. 물론 차 감독이 뛰었던 WK리그와 이 선수들이 뛰는 K리그가 산업 규모 면에서 비교할 수 없다는 점은 안다. 그래도 차 감독이나 이 선수들이 하는 그 활동, 발로 공을 차고 골대에 공을 넣으면 이기는 그 운동이 모두 같은 축구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 괜히 찜찜해진다. 만약 차 감독이 남자로 태어났으면 최소한 유럽 생활이 그렇게 고단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축구의 즐거움은 남자도, 여자도 모두 똑같이 느끼지만 대우는 다르다. 시장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는 왜 차 감독이 선수 시절 국내 유럽 진출 1호라는 영예의 주인공이 됐지만 현지에서 고군분투해야 했던 현실에 대한 설명이 된다. 그러나 이 설명의 타당성과 과연 이 현실이 마땅한지 도덕적 판단은 별개다. 그런 설명대로 지금의 현실이 성립했다하더라도, 이런 현실이 유지되는 게 마땅한지는 계속 따져볼 문제다.


“당연한 건 없다고 생각해요.” 차 감독은 “민감한 문제지만...”하면서도 자기 생각을 이야기했다. 그는 냉정했지만, 평생 해온 운동의 미래를 조심스럽게 낙관하고 있었다. “물론 지금은 남자 축구선수들이 더 많이 받고, 구단 입장에서도 수익 규모가 다르니 그게 타당하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하지만 ‘골때리는 그녀들’이 이렇게 이슈가 될 줄 알았나요? 장기적으로는 여자축구에는 미래 가치와 발전가능성이 있어요.” 실제로 이번 여자 유로의 흥행으로 유럽에서 여자축구의 위상이 올라간 것 같다. 글로벌 여론조사 업체 입소스가 여자 유로 결승 직후 영국 시민 1천명 대상으로 벌인 조사에서 일반 응답자의 44%, 자신을 축구팬이라고 표현한 응답자의 64%가 이 대회를 계기로 여자축구에 관심이 생겼다고 했다. 어쨌든 관심이 늘기는 한 것이다. 그럼 관중도 늘고, 중계권료나 후원 관련 협상에서도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다. 대규모 중계, 후원 계약이 성사되면 경기장에 자본이 투입된다. 돈이 풀리면 더 많은 선수가 유입되고, 경쟁이 생기면서 경기력이 좋아진다. 중계와 미디어 노출이 늘면 향상된 경기력에 감화된 관중, 시청자도 많아져 ‘판’이라는 게 커진다. 이게 남자 프로스포츠에서 수십년간 일어났던 일이다. 여자 스포츠에서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유럽에서는 이런 미래가 곧 다가올 것이라고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여러모로 불확실한 가능성, 내지 소망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 차 감독도 이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차 감독은 “여자축구가 더 이슈가 되고, 남자축구보다 여자축구에 더 매력을 느끼고 돌아서는 팬들도 장기적으로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하고 말했다. 이 대답에는 미래에 대한 전망과 그런 미래가 펼쳐지길 바라는 염원이 섞여 있다. 그래서 전문가의 엄밀한 분석이라고 하기 어려워보였다. 그렇지만 가타부타 첨언하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차 감독의 낙관적 염원대로 과연 여자 프로스포츠도 성장의 선순환 흐름을 탈 수 있을지 나도 아리송하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프로스포츠 산업은 수십년간 힘, 속도, 높이 등 소위 남자가 더 유리하게 타고난 특성에 환호하도록 성장해왔다. 이런 ‘남성성’의 우위가 곧 경기력으로 포장돼 소비자의 팬들에게 가점을 받는다. 한국 농구 선수의 골밑 슛보다는 미국프로농구 선수의 호쾌한 덩크슛을 선호하는 것이다. 차 감독이 아무리 육상선수 출신이라지만, 상대 후방을 순식간에 내달리는 손흥민의 스프린트(말 그대로 짐승같은)를 보다가 차 감독의 질주를 보면 감흥이 덜 할 것이다. 힘, 속도, 몸싸움, 높이 등을 일반인과 수준이 다른 운동선수들의 퍼포먼스를 즐기고픈 자본주의 사회의 스포츠 팬들의 눈을 만족시켜야 하는 과제가 여자축구에게 주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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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는 이 지점에서 태생적 한계를 맞닥뜨린다. 스포츠의 기원이 무엇인지는 여러 설이 있지만 사회학자들은 인류가 문명화하는 과정에서 고안해 낸 여가의 한 종류라고 본다. 신체를 겨루려는 인간의 본능적 욕구, 공격성 등 충동을 적절한 규칙을 ‘게임’으로 가공해냈다는 것이다. 적절하게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안전하게 폭력성을 발휘하도록 짜낸 인류의 발명품이라는 건데, 진화심리학에서는 더 강한 폭력을 행사하도록 진화한 쪽은 남성이라고 보는 것 같다. 우리 인류는 원시인, 나아가 먼 과거의 영장류 시절부터 암컷을 두고 수컷끼리 경쟁해왔던 내력이 있다고 한다. 남성호르몬이 많이 분비되고 신체적으로 강한 남성을 여성이 선택해오면서, 남자들은 신체적 경쟁을 자신들의 운명으로 내재한 ‘폭력적인 녀석들’이 됐다. 이런 남성-폭력성-스포츠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여자보다는 남자가 스포츠와 태생적으로 더 가깝다고 하겠다. 그래서 ‘태생적 한계’다. 스포츠의 기원이 뭐든 오늘날 사람들은 단순히 폭력이 아니라 긴장감, 박진감, 재미를 위해 스포츠를 찾는다. 이제 스포츠는 짝이나 먹이를 두고 벌이는 싸움이 아니라 놀이고, 정체적 폭력을 통해 재미를 누릴 권리는 남자만 독점할 수 없다. 그 권리는 모두에게 있다. 나는 차 감독이 “축구는 남녀 모두의 것”이라고 강조한 뒤편에는 이런 당위에 대한 직관이 담겨있다고 믿는다.


차 감독의 바람처럼 여자축구의 시장성이 더 커진다고 해도 신체적으로 강건하고, 더 짐승 같은 움직임을 주고받는 남자축구보다 인기를 끌지 난 회의적이다. 물론 내 비관적 전망과 별개로 시장 규모 차이가 줄어드는 일은 그 자체로 의미 있겠다. 차 감독 같이 탁월한 기량으로 시대를 선도한 여자 축구선수가 같은 종목에서 큰 활약을 하지 못한 남자 축구선수보다 크게 떨어지는 대우를 받는 일도 드물어질 것이다. 무엇보다 프로 스포츠나 국가대표와 같은 전문 체육은 종목 부흥의 선봉장 역할을 한다. 나는 더 많은 여성이 공을 차면서 스포츠의 재미를 알았으면 한다. 앞서 김재운 경인교대 교수와 박찬우 서울대 강사의 논문에 나온 여대생들처럼 말이다. 나 역시 그 재미를 알고 있다. 나는 축구가 아닌 다른 종목을 했지만, 팀으로 함께 싸우다보면 다른 어떤 활동보다도 그 운동이 가치 있는 것처럼 몰입되는 순간이 있다. “그걸 뭐라고 딱 표현할 수는 없는데, 축구라는 게 정말 묘한 매력이 있어요. 축구공은 둥글고 공은 하나잖아요? 단순히 많이 뛰고 골을 많이 넣는다고 다 이기는 것도 아니고... 아, 말로는 표현을 못하겠어요.” 차 감독은 말했다. 


9월 9일에 나간 기사는 쏟아지는 다른 기사들에 묻혀 별다른 반응 없이 정보의 바다 어딘가로 사라졌다. 그로부터 한달 후 나는 차 감독과 똑같은 말을 하는 사람을 만나 반가웠다. 제103회 전국체전이 열린 울산의 현대예술관 체육관에서는 처음으로 시범종목으로 채택된 여자 족구 경기가 펼쳐졌다. 10월 8일 오전 열린 대구와 광주의 경기에서 대구 대표로 나선 이도희는 연신 그림 같은 스파이크를 광주의 코트에 꽂아 넣었다. 대구가 14-9로 앞선 1세트 네트 앞에서 상체를 180도 가까이 비틀며 공중으로 뛰어올라 반대 코트로 날카로운 스파이크를 찍어 관중들의 감탄을 불러일으켰다. 족구 경력 20년이라는 한 관중에게 받아낼 수 있냐고 묻자 그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도희에게 족구의 매력을 물었다. “저도 그걸 찾고 있는데, 당장 말로는 못하겠고 일단 너무 재미있고 질리지가 않아요. 저도 왜 그런지 생각을 오래 해봤어요. 넷이서 조화가 잘 맞아야 하고, 또 이기는 게 좋아요.” 이도희는 장교 출신이라고 했다. 군에서 족구를 접했다는 이도희는 “그때는 계급이 높은 분들이 있어서 일종의 ‘접대 족구’를 했다. 봐주면서 할 수밖에 없었다”고 웃었다. “여자들도 요즘에는 힘이 많이 강해졌어요. 잘하는 여자들은 일반인 남자보다는 훨 잘할 걸요?” 이도희에 맞서 광주를 이끌었던 이수경도 같은 말을 했다. “족구는 보통 남자, 그것도 아저씨들이 많이 하는 운동이잖아요?” 내가 묻자 이수경은 웃으면서 “에이 그건 이제 옛말이죠”하고 슬며시 핀잔을 줬다. “여성들도 충분히 잘할 수 있는 경기로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우리 팀이든 어디든 다들 경기장에 와서 함께 뛸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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