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코의 시선으로 본 마네에 관하여
마네는 19세기 미술사에서 '회화적 재현'의 테크닉과 방식을 변혁해 19세기 후반의 예술사 전반을 걸쳐 인상주의 운동을 가능케 한 선구자로 여겨진다. 미셸 푸코는 마네를 인상주의를 넘어서서 '인상주의 이후의 회화, 즉 20세기의 회화, 그 속에서 지금도 현대 미술이 펼쳐지는 그러한 회화'를 가능케 했다고 평가했다. 그가 바라본 마네의 위대성은 어디 있을까? 그의 감상을 따라가 보자.
초기 르네상스 이후 서구 미술에서는 전통적으로 회화가 벽이나 합판, 천과 같은 특정한 단편적이 공간 위에 그려지거나 새겨진다는 사실을 잊게 하거나 감추거나 교묘히 피하려고 했다. 그랬기에 르네상스 이래 회화는 이차원의 평면 위에 삼차원을 재현하려 했다. 그러기 위하여 전통 회화에서는 회화가 직선의 사각형 위에 그려졌다는 사실은 은닉하기 위해 사선이나 나선을 부각시키고, 캔버스 내부 조명을 재현함으로서 캔버스를 비추는 현실의 빛을 부정하고, 감상자의 이상적인 감상의 자리를 고정시킴으로서 그림의 물질성을 은폐했다. 이것은 초기 르네상스 이후 서구의 재현적 회화가 행했던 감추기, 은폐, 착시, 생략의 놀이였다.
푸코에 의하면, 마네는 서구 미술에서 르네상스 이후 처음으로 자신의 그림이 재현하는바 내에서 화가가 그리는 공간의 물질적 속성들을 과감히 이용하고 작동시킨 화가였다. 푸코가 주목한 점은 마네가 공간에서 재현하고 이용하고 작동시킨 바는 캔버스가 수직적이고 이차원을 갖는 표면이며 입체감이 없다는 사실이다. 또한, 마네에게 캔버스 표면의 물질적 속성들과 유희하는 또 다른 방식이 있는데, 바로 앞면(verso)과 뒷면(recto)을 작동시키는 것이다.
1. 캔버스의 공간
고전적인 작품인 마사초의 <세금을 바치는 예수>(1425)를 보면 원을 형성한 사람들이 응시하는 대상을(대화이거나 세금징수원에게 돈을 건네는 베드로)확인 할 수 있는 반면에, 마네의 그림에서는 그들의 시선이 향하는 광경은 그림에 잘려 볼 수 없어, 어떤 의미에서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고 재현하지 않는다. 사실 이 그림의 첫 버전인 <카페-콩세르의 구석>에서 응시의 대상은 지나가거나 혹은 노래를 부르고 있거나 아니면 춤의 한 동작을 시작하고 있는 카바레의 여가수였다. 마네가 광경을 잘라내 버려 이 작품에서 볼 수 없으며, 그림은 비가시적인 것을 향하는 시선이 된다.
1. 캔버스의 공간
고전적인 작품인 마사초의 <세금을 바치는 예수>(1425)를 보면 원을 형성한 사람들이 응시하는 대상을(대화이
거나 세금징수원에게 돈을 건네는 베드로)확인 할 수 있는 반면에, 마네의 그림에서는 그들의 시선이 향하는 광경은 그림에 잘려 볼 수 없어, 어떤 의미에서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고 재현하지 않는다. 사실 이 그림의 첫 버전인 <카페-콩세르의 구석>에서 응시의 대상은 지나가거나 혹은 노래를 부르고 있거나 아니면 춤의 한 동작을 시작하고 있는 카바레의 여가수였다. 마네가 광경을 잘라내 버려 이 작품에서 볼 수 없으며, 그림은 비가시적인 것을 향하는 시선이 된다.
2.조명
<피리 부는 소년>에서 마네는 회화의 입체감을 제거했다. 소년 뒤에는 어떤 공간도 존재하지 않고, 소년은 허공에 발을 딛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푸코는 여기서 공이 점이 아닌 소년이 조명을 받는 방식을 논한다. 전통적인 회화에서는 일반적으로 조명이 항시 어딘가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는 직접적으로 표현되거나 혹은 단순히 광선에 의해 지시되는 빛의 원천이 캔버스 내부나 외부에 존재했다. 그러나 <피리 부는 소년>은 캔버스 내부가 아닌 정면에서 수직적으로 캔버스를 때리는 조명을 받는다. 전통적인 회화에서는 그림 내부에서 허구적인 조명이 등장인물에게 빛을 뿌려 입체감을 부여하는 창문을 재현했지만, 여기서는 내부 조명이 철저하게 제거되고 캔버스를 비추는 외부의 실제적인 조명만이 캔버스 안에 구현되어 있는 것이다.
3. 감상자의 자리
마네는 위 그림에서 거울로 만든 불가능한 장치들을 통하여 감상자의 위치를 불명확하게 만든다. 정면에서 보는 것과 거울 속에 보이는 것 사이에 왜곡을 주면서 거울이 전통적인 회화적 관습과는 다르게 캔버스 내 재현에모순을 주는 장치로 작동된다. 고전적 회화가 선·원근법·소실점등의 체계를 통해 감상자와 화가에게 고정되고 부동적인 장소를 부여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감상자가 위치해야 하는 안정적이고 정해진 장소는 모호하게 되었다. 그 중 크게 세 가지의 왜곡된 양립 불가능성의 체계를 찾을 수 있다.
첫째는 감상자는 중앙에서 여인의 정면을 보면서도 거울 속 여인의 뒷모습을 보기 위해선 오른쪽에 있어야한다. 둘째는, 정면에서 외부조명이 오기 때문에 여인의 얼굴에 그림자가 없지만, 거울 속에서는 남성이 여인을 마주보면서 조명을 가리므로 여인의 얼굴에는 그림자가 생겨야한다. 양립 불가능한 존재와 부재가 함께 발생한다. 마지막으로 거울 속 남성은 여인을 위에서 아래로 굽어보고 있지만, 하단의 대리석과 거울의 테두리 사이의 거리가 매우 좁은 점으로 보아 정면에서는 여인을 약간 아래에서 올려다보았다. 방향성이 반대인 두 시선이 동시에 존재한다.
평평한 표면의 거울은 벽과 같이 그림의 뒷부분 전체를 점유하면서 공간을 폐쇄한다. 캔버스의 속성을 작동시키고 재현이 더 이상 감상자를 고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캔버스는 감상자가 이동하는 공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