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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tFly Mar 08. 2020

조각가 양혜규에 관한 소고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의 공간사유를 통해 보다.

루드비히 미술관 (Museums Ludwig, Germany)《ETA》

설치미술가 양혜규는 1994년 서울대 조소과를 졸업한 후 독일로 유학, 미술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통해 베를린, 런던, 동경, 상파울로 등 세계의 다양한 도시의 전시들에 참여하면서, 정착민의 시각에서 벗어나 유목민적 시각으로 개인과 공동체의 문제를 광범위하게 다룬다. 매체를 다양하게 사용하는 그녀의 작업에는 하나의 주제가 존재하지 않아 객관적 해석이 어렵고, 작품을 진솔하게 대면하기란 쉽지 않게 느껴진다. 그러나 그녀의 작품세계의 그물망을 엮어내면 공간과 정체성에 관한 관심이 드러나는데, 이는 미셸 푸코의 공간사유와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녀가 2006년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블라인드라는 소재는 그녀를 떠올리게 하는 대표적인 일상적 매체로서, 이를 이용하여 전시장을 가로지르거나 비껴가는 공간을 구획하고, 거기에 여러 감각기들을 투사해 낸다. 이를 통해 작가는 사적공간과 공적공간을 넘나드는 ’다른-공간‘을 만들어 낸다.



세계적 권위의 볼프강 한(Wolfgang Hahn Prize) 수상과 함께  루드비히 미술관 (Museums Ludwig, Germany)에서는 1994년부터-2018년까지 양혜규의 작품을 망라하는 《ETA(약어’도착예정시간‘(estimated time of arrival)》(2018.4.18.-8.12)회고 전시를 개최하였다. ’ETA‘는 서울과 베를린의 스튜디오를 유지하고 국제적으로 전시된 작가의 이동 예술경력과 꾸준한 일정을 가르킨다. 관람자는 이미 여러 감각기를 통해 전시장을 통과한 한 바 있다. 전시장 초입에는 관람객의 움직임을 따르는 물 분사기로 시각적 경험을 준비한 관람객에게 촉각적 감각을 깨운다. 또한, 전시장을 통과하면서 선풍기의 바람, 열을 내는 라디에이터 등으로 공간에 여러 감각기를 투사하고 관람객은 그것을 감각적으로 대면한다. 관람객은 그동안의 온도, 바람, 습도, 공기, 열 등의 흐름을 안고 블라인드 작품에 다다르게 되는데, 그러한 흐름이 닫히지 않고 틈 사이로 유통되면서, 열림과 닫힘의 체계를 가진 중성적 공간을 경험하게 된다. 이것은 고립시키는 동시에 침투할 수 있게 만드는 열림과 닫힘의 체계를 전제하는 헤테로토피아적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Mountains of Encounter, 2008Aluminum Venetian blinds, powder-coated aluminum hanging structure

푸코는 우리가 사는 세계는 경계가 지어지고 잘려진 공간이며, 이것을 정화시키는 공간을 ‘헤테로토피아’(Les Hètèrotopies)적 공간이라고 표현한다. 작가 양혜규는 사적인 장소와 공적인 것 또는 개인의 경계들에 있어서의 교차에 관심을 가지며, 이러한 경계를 중화시킨다. 그녀에게 있어 안과 밖 혹은 예술과 비예술은 대결적인 의미가 아니며 필연적으로 연결된 동의어라 할 수 있다.

DC홀에 설치된 <Mountains of Encounter>는 사이사이가 벌어진 붉은 블라인드 구조물로 전시장의 공간을 가르고, 사이와 바깥에 투광등은 블라인드 사이를 빠져나와 스크린처럼 벽이나 바닥에 투사되어 전시장 곳곳이 이미지를 담는 화면이 된다. 현대적인 커튼으로 오피스나 가정에서 유리창에 불투명과 투명성을 동시에 부여하는 블라인드라는 일상소재로 인공적인 환경을 만들어 내는데, ‘공간을 차지 하지 않으면서도 구획을 짓는’ 블라인드의 조형물은 물질성이 없으면서 공간전체를 아우른다. 이것은 내부와 외부 같은 분할관계만 맺는 것이 아니라, 중심과 주변이 없는 파편화된 중립적인 층위에 있는 공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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