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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하영 May 10. 2021

나는 이름을 바꾸기로 다짐했다

[일상] 일본 제품 불매운동, 그 속에 소외됐던 이들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한창이었던 2019년 여름, '일본산' 학습지 교사인 엄마를 둔 나는 일본 제품 불매운동을 하는 이들의 눈치를 봐야 했다. 그 때문인지 조금 다른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일본 제품을 무조건 불매하고 일본과 조금이라도 연관된 일을 하거나 제품을 구매하는 이들까지 혐오하는 건 올바른 일일까. 그 과정에서 부당하게 소외되는 사람들은 없을까. 

당시 유니클로 등 일본 기업 매장을 방문한 이들을 공개 저격하거나 취업 박람회에선 일본 기업을 제외하기도 했던 게 사실이다. 또 동네 일식집에서는 "우리 집에선 국내산 재료만 씁니다. 일본산은 없습니다."라는 안내문을 붙여놔야 했다. 분명 일본 불매운동에 눈물 흘렸던 이들이 존재했다.



내 이름은 ‘나라’다. 우리나라를 사랑하라는 뜻에서 할아버지가 지어주셨다. 평소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름 예쁘다는 소리도 몇 번 들어봤다. 문제는 내 이름에 성까지 붙여 부를 때 생긴다. 내 성은 ‘왜’다. 누군가 내 성과 이름을 함께 부르면 얼굴이 벌게지고 몸이 떨린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출석을 부를 땐 간절한 눈빛을 보내곤 했다. ‘제발 성 빼고 이름만 불러주세요’ 하고. 일부러 혼날 일도 하지 않고 그렇게 조용히 살았다. 가족 원망도 많이 했다. 왜 나는 ‘왜’씨 집안에서 태어난 걸까. 이름 석자로 매국노가 되어버린 찜찜한 기분은 언제나 나를 따라다녔다.

 

요즘은 찜찜한 기분을 넘어 정말 죄인이 되어버린 듯하다.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일본이 우리나라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인정하지 않는 데서 한 발 더 나아갔다. 우리나라를 상대로 수출 규제를 하며 도리어 보복까지 했다. 그에 대한 반격으로 우리나라 국민의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시작됐다. 그리고 나, ‘왜 나라 불매운동도 시작됐다. 툭하면 놀려대는 애들 탓에 공부에 집중할 수 없었다. 내 필통에 아직 남아 있는 일본산 볼펜을 쓸 때 아이들은 하이에나떼처럼 내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왜나라가 일제 쓴다’ 따위의 외침을 하루 종일 들어야 했다. 그들에게는 장난이었다. 학교 선생님도 별다른 말이 없었다. 한두 번 그만하라고 한 게 전부였다. 시대적 흐름을 잘 못 탄 이름을 가진 불쌍한 아이라는 눈초리로 쳐다볼 뿐이었다.


 

엄마에게 말해도 항상 같은 대답만 돌아왔다. "어쩔 수 없다"고. "그렇다고 이름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 아니냐"고. 그래, 나와 성도 이름도 다른 엄마가 이해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목소리 큰 아이들의 놀림은 나에겐 폭력이었다. 맞으면서도 뭐라고 따지기 힘든 지독한 폭력. 이 점이 나를 더 힘들게 했다. 한국인인 나에게 일본 불매 운동은 당연히 동참해야 할 것일지 몰라도, ‘왜나라’라는 이름을 가진 나에겐 빨리 끝나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는 비극이었다. 한동안 식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던 ‘왜나라’ 불매운동은, 내가 교실에서 한바탕 울어버린 그 날에 종료됐다.

 

엄마가 A사 학습지 교사라는 그 친구를 만난 건, 그로부터 한 달 뒤 즈음이었다. 일본 불매운동은 여전했다. 친구는 A사가 일본 기업이라 집이 졸지에 친일파 집안이 됐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친구 엄마는 불매 운동을 도저히 버틸 수 없어 한국 토종 기업 B사로 옮길 생각도 하고 계신다고 했다. 목소리 큰 여론에 가려진 이들의 비극을 아주 잘 아는 나는 친구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나도 새로운 ‘나’로 옮길 준비를 하고 있다. 나 또한 내 이름이 가져온 비극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다. 이게, 내가 나의 이름을 바꾸기로 다짐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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