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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하영 Nov 24. 2021

소수자를 향한 님비현상은 현재 진행형

[일상] 장애인, 비장애인 복합 문화 공간 '어울림 플라자' 취재 후기


소수자들, 그러니까 이 사회의 주류라고 여겨지지 않는 이들이 일상 속에서 어려움을 겪는  ‘배타성’ 때문이다. 소수자와 함께 공존해야 한다는 건 알지만, 그들이 내 주변에 있는 건 싫어한다. 누구나 상황에 따라 소수자가 될 수 있지만, '지금 이 순간' 본인이 주류에 속한다고 느낀다면 비주류인 이들에게 배타적으로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서울 강서구 등촌동에 설립 예정이던 장애인, 비장애인 복합 문화공간인 ‘어울림 플라자’ 취재를 할 때 만난 한 시민도 그랬다. 70대 어르신이었는데 근처 봉제산을 거의 맨날 오른다고 했다. 따라 걸으며 질문을 던졌다.

 

“여기 어울림 플라자가 들어선다는데, 뭔지 아시나요?"

"알죠. 그 장애인들 하고 같이 쓰는 시설 같은 거."

"어울림 플라자가 여기 들어오면 휠체어를 사용하는 이들이 많아져서 교통이 불편해지겠다는 의견이 있더라고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는 어울림 플라자가 들어오는 것에 대해 어떤 생각이냐는 물음에 “아 함께 살아야죠”하고 답했다. 그 정도의 불편함은 감수해서라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공존해야 한다고 얘기했다.


‘이제는 세상이 확실히 달라졌구나'라고 생각했다. 신호등을 건너는 어르신을 따라 걸으며 한 번 더 물었다. “그럼 여기에 어울림 플라자 들어서는 것에 어르신은 찬성하신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런데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아 근데 왜 하필 여기인지는... 좀 그래. 다른 곳이면 좋겠는데”



당황스러운 마음에 다시 한번 물었다. “아까 공존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무슨 뜻이신가요?” 그는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젓더니 답했다. “그니까 함께 해야 하는 건 맞는데 너무 많아. 여기 산(봉제산)만 가더라도 가끔 특수학교 애들 보는데... 눈에 너무 많이 보이니까 좀 그래. 다른 곳이면 좋을 텐데.”


공존을 해야 하지만 내 주변에 많이 보이진 않았으면 좋겠다는 얘기였다. 이후에 만난 한 장애인 단체 관계자는 어울림 플라자 건립을 반대하는 지역 주민들의 대표적인 반대 주장도 바로 “왜 하필 이곳이냐”는 거였다고 했다.


소수자들을 향한 님비현상은 현재 진행형인 셈이었다.


지난해 6월, 서울연구원에서 서울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9.5%가 다른 문화를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답했고 69.4%는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에 대해 편견, 고정관념을 가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답했다. 대부분의 서울 시민들이 ‘소수자를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한다는 얘기다. 장애인에 대해서도 72.7%가 ‘존중한다’고 했다.

 

그런데 소수자가 ‘내 이웃’이 된다고 가정했을 때 부정적인 응답률이 높아졌다. 배타성이 커졌다. 응답자 중 61.7%가 장애인이 ‘나와 이웃이 되는 것’에 동의한다고 답한 것. 소수자가 내 주변에는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건 등촌동에서 만났던 70대 주민만이 아니라는 얘기다.


여전한 님비현상은 우리 주변에 ‘공존 공간’이 늘어나야 하는 이유가 된다.

‘내 주변은 안 된다’는 주장은 다양한 소수자들과 접촉을 할 기회가 많이 없기 때문에 나온다. 서울연구원도 문화다양성 인식 차원의 수용도와 실제 수용도 간 차이가 발생하는 건 '일상에서 다양한 정체성을 접하거나 교류해 본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함께 이용하는 공간이 늘어나고 일상 속에서 접촉과 교류를 늘리면 소수자에 대한 실제 수용도 또한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대구대 조한진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그런 의미에서 어울림 플라자가 초등학교 근처에 들어선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어릴 때부터 다양성과 공존의 가치를 학습하고 장애인을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접촉하는 중요한 공간이 될 거라는 것.


무장애연대의 김남진 사무국장도 어울림 플라자가 진정한 공존의 공간이 되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울려 사는 사회로 나아갈 지름길을 다져줄 거라고 했다. 김 사무국장은 "비장애인이 '내가 우려했던 것보다는 좋은데?', '이런 시설이 들어오니까 좋은데?' 하는 생각이 들도록 잘 운영하면 좋은 선례가 되어 다른 지역에 비슷한 성격의 시설이 들어갈 때 수용이 좀 더 쉬워질 수 있다"라고 했다.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지 관계없이 누구나 편하게 살 수 있는 사회가 지향점이 되어야 한다. 누구나 후천적으로 장애를 가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울려 살아가는 자세는 내가 이 사회에서 배제되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자세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직은 부족한 게 현실이다. 김초엽 작가는 책 <사이보그가 되다>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의 대부분은 장애인이 살아가기에 적합하지 않게 설계돼 있으므로 장애인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주위 환경은 물론, 지역사회와 공동체를 ‘땜질’하는 작업을 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받아들이고 바꾸어야 하는 건 언제나 소수자들의 몫이라는 얘기다.


이길보라 영화감독은 시사인에 기고한 글에서 그가 농인인 부모에게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를 사달라고 했을 때 부모는 아무런 물음 없이 사줬다고 했다. 청인인 딸의 세계를 인정하고 ‘듣고 싶음’이라는 청인의 욕구를 받아들이고 이해했다는 얘기다. 이 감독은 이 일화를 전하면서 비장애인들 또한 장애인 세계를 인지하고 지원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애인의 세계를 지원하려면, 소수자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가 아닌 공존의 자세가 필요하다. 어울림 플라자와 같은 장애인, 비장애인 복합 공간들이 전국 곳곳에 건립되고 적극적으로 이용돼야 할 이유다.



* <어울림 플라자 4년> 기사 읽으러 가기 *

어울림 플라자 4년 - 스토리 오브 서울 (storyof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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