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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속의집 Sep 20. 2022

고통 한가운데서 일어나기 ● 트라우마와 그라운딩

<마음이 힘들면 몸을 살짝, 움직입니다>

몸이 후들후들 떨리면서 앉아 있는 것도 힘드네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잔뜩 웅크린 자세로 O씨가 말했다. 긴장한 듯 그녀는 내 눈을 바라보지 못하고 여기저기 두리번거렸다.


“가슴이, 가슴이 너무 아프네요.”
숨을 헐떡거리며 가까스로 그녀가 말했다. 숨을 쉬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니, 가슴이 아픈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마치 누군가에게 공격을 당할까봐 숨어 있는 사람처럼 그녀의 양쪽 어깨가 동그랗게 말려 있었다. 또, 척추는 안으로 구부정하게 굽어져 있었다. 그 자세로 숨을 쉬고 있으면 흉곽이 펴질 수가 없어서 가슴이 아플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우선, 말씀을 나누기 전에 제 안내에 따라 좀 움직여볼까요? 의자 바닥에 지금 엉덩이가 닿아 있는 것이 느껴지세요? 양쪽 엉덩이가 의자 바닥에 어떻게 닿아 있나요? 골고루 다 닿아 있나요? 아니면 한쪽 엉덩이가 더 많이 닿아 있나요?”


먼저, 그녀와 함께 바닥에 닿아 있는 내 몸을 느껴보는 그라운딩을 시작했다. 불안에 휩싸인 환자들에게 그라운딩은 바닥 위에 일으켜 세워진 자세와 정렬을 가다듬어 몸과 마음이 안정되도록 도와주곤 했다. 그라운딩을 시작하자, 그녀의 거칠고 가쁘던 숨이 점차 부드러워졌다.


“자, 엉덩이 부분에는 골반이라는 뼈가 있습니다. 골반 위에는 척추가 차곡차곡 쌓여서 우리 몸을 세웁니다. 골반 위에 척추가 어떻게 세워지면 몸이 좀 편안해질 수 있을까요? 상체를 조금씩 움직여보면서 편안하다고 생각하는 곳에 상체를 가만히 일으켜 세워볼까요?”


조금 전보다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그녀는 자신의 몸에 집 중하기 시작했다. 고요히 움직이던 그녀의 몸이 한 군데에서 가만히 멈추었다.





그녀는 오랜 기간 남편의 폭언과 폭행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지금은 남편과 따로 살고 있지만, 그런데도 많은 순간 그녀의 몸은 불안하고 긴장되곤 했다. 오늘처럼 낯선 사람들을 만나면 더욱 긴장되고 떨려서 제대로 할 말을 다 하지도 못했다. 그녀가 힘든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그녀의 몸에서 무척 흥미로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어느새 어깨가 다시 동그랗게 말리고 척추가 굽어졌다. 숨도 거칠어져 있었다. 그녀의 오래된 상처와 트라우마는 마음뿐만 아니라 몸에도 새겨져 있는 듯했다. 그녀의 몸이 고통의 시간을 기억하고 있었다.


트라우마 전문가 베셀 반 데어 콜크 박사는 그의 저서 《몸은 기억한다》에서 트라우마는 암호화되어 몸에 남게 된다고 말했다. 결국 트라우마가 새겨진 몸은 그 사건이 일어난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반복해서 트라우마를 재생하여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치료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나는 그녀가 바보가 아니라 누구보다 지혜롭고 강인한 여성이라고 느꼈다. 그녀는 고통을 피하지 않고 누구보다 치료에 열심히 임했다. 그녀는 온몸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근육의 움직임을 알아차리고, 작고 부드럽게 자세를 변화시켜가면서 스스로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자신의 몸 안에 스스로를 위로하는 힘이 있다는 것을 그녀는 ‘희망’이라고 느꼈다. 그러면서 몸을 움직인다는 것은 자신에게 사랑을 주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트라우마라는 폭풍이 남긴 상처는 여전히 그녀의 몸과 마음 곳곳에 새겨져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이제 폭풍 속에서도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는 법을 알고 있었다. 모진 세월 속에서도 그녀를 일으켜 세운 것은 그녀의 몸과 마음, 바로 그녀 자신이었다.


허휴정(정신과 전문의), <마음이 힘들면 몸을 살짝 움직입니다> 중에서 https://url.kr/uszyj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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