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곁에 우리가 있다면>
트라우마는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운 상태로 주변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과 사회의 편견, 무지, 가짜 정보가 일으키는 혐오와 차별이 범람할수록 트라우마는 치유는커녕 더 깊은 나락으로 빠져들고 맙니다. 그렇다면 우리사회는 트라우마에 처한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가갔을까요?
2014년 4월 16일, 이날은 우리가 잊을 수 없는 날입니다. 250명의 안산 단원고등학교 학생들을 포함하여 304명의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날입니다. 더 큰 문제는 참사 직후에 일어났습니다.
트라우마의 후폭풍은 쉴 새 없이 몰아쳤습니다. 갑자기 250명의 학생을 잃은 단원고도, 학생들이 주로 살던 동네도 모두가 고통 속에서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특히 근거 없이 떠도는 숱한 의혹과 가짜 정보, 차별과 혐오 등이 유가족과 생존자들의 트라우마를 깊게 후벼 팠습니다. ‘교통사고와 다를 바 없으니 그만하라’ ‘시체 장사하느냐’ 등의 혐오 표현이 난무했고, 세월호 참사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집단들에 의한 2차 트라우마도 지속되었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생존자들과 유가족들의 상태를 모니터링하는 코호트 연구(대상자를 선정하여 일정 기간 동안 시간 경과에 따라 추적· 관찰하는 연구)에 따르면, 트라우마 자체도 힘들지만 생존자들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은 무지와 편견에 사로잡혀서 내뱉는 ‘막말’과 ‘혐오’였습니다.
일부 정치인이 생각 없이 하는 말 한마디, 언론의 왜곡된 보도는 간신히 버티고 있는 트라우마 생존자와 유가족의 상처를 후벼 팠습니다. 참사 희생자들을 물고기밥 취급했던 이른바 ‘어묵 사건’, 4월이면 온라인 등을 통해 쏟아지는 “시체 팔이 그만해라” “돈 받았으면 적당히 해라” 등과 같은 악랄한 혐오 표현들, 유가족들이 광화문 광장에서 단식 투쟁을 벌였을 때 그 앞에서 피자, 치킨 등을 폭식한 패륜 행위, 4·16 생명안전공원과 기억교실을 만드는 것에 대한 지역사회의 반대 등이 트라우마의 고통을 더 부추겼습니다.
이러한 혐오 표현을 전달한 일부 언론의 문제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언론은 이러한 혐오 표현을 정제하지 않고 보도해 이른바 ‘클릭수 장사’를 했습니다. 우리사회와 달리 독일은 2018년 ‘헤이트 스피치법’을 만들어 온라인상에서 혐오 표현 등이 포함된 게시글을 규제하지 않는 SNS 등에 최대 5천만 유로(약 700억 원)의 벌금을 부과하는 등 혐오 표현을 강력하게 제재했습니다. 하지만 우리사회는 어떤가요. 혐오 표현을 ‘자유’라는 이름으로 방치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혐오, 편견, 무지 등에 기인한 발언은
마음에 큰 화상을 입은 사람을 다시 불로 지지는 격입니다.
명백한 폭력입니다.
채정호, <고통의 곁에 우리가 있다면> https://c11.kr/19z0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