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곁에 우리가 있다면
‘내가 어려울 때,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습니까?’라고 묻는 국제 조사가 있습니다. 국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더 나은 삶의 질 지수’(Better Life Index)를 조사하면서 이 질문을 던집니다. 바로 ‘공동체 연대성’(Quality of support network) 지표입니다.
2017년 기준, 우리나라는 총 38개국 중 38위로 최하위였습니다. 내게 문제가 있을 때, 도움을 요청할 친척이나 친구, 이웃이 있는지 묻는 문항에 대하여 한국인은 72퍼센트가 ‘있다’고 답했습니다. 즉, 10명 중 3명은 주변에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OECD 국가 평균은 88퍼센트로 이는 10명 중 1명 정도만 주변에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결과적으로 우리나라는 이보다 세 배쯤 높은 셈입니다.
예전에는 공동체 지향성이 높아서 ‘우리’가 그렇게 중요했던 우리사회에서 점점 공동체가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이 아프게 다가옵니다. 특히 고립된 상태로 외톨이처럼 지내는 사람들도 갈수록 많아지고 있습니다. 늘 경쟁하며 각자도생으로 살다보니 진심으로 믿을 사람이 곁에 없다는 우리사회의 아픈 현실입니다.
나 혼자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몸과 마음 모두 힘듭니다. 자신이 힘들어지니 남에 대한 관심도 떨어지면서 계속 외톨이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고, 삶은 더 힘들어지는 악순환이 이어집니다. 지금 우리사회는 정서적 고립 사회입니다. 이웃사촌, 골목, 동네, 마을 등 일상에서 쌓을 수 있는 관계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현재에 맞는 마을 공동체 등을 만들어보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널리 퍼져나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사회적 동물입니다. 아무리 성공한다 해도 곁에 아무도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지금 너무 아프고 힘들어도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촉진하는 것이 우정, 사랑, 친밀감 같은 정서적 연결감입니다. 이런 연결감이 안정과 행복을 가져옵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연구들도 있습니다. 기초자치단체별로 자살률을 조사한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연구는 자녀와 접촉 빈도, 친구와 접촉 빈도, 친목 단체 참여도가 높을수록 자살률이 감소한다는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사회적으로 고립(외톨이)된 사람이 심장병으로 입원했을 때, 이 사람은 사회 관계망이 두터운 사람보다 사망률이 두 배 이상 높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미국 베스트셀러 소설이자 영화로 만들어진 <가재가 노래하는 곳 Where the Crawdads Sing>에는 연결된 마음이 사람을 어떻게 살게 하는지 보여줍니다. 주인공 카야는 부모, 오빠와 언니 등 가족이 모두 떠난 습지의 집에 혼자 삽니다. 이웃도 없고, 친구나 친척도 없습니다. 고립된 카야가 굶어 죽지 않고 생존과 희망을 품을 수 있었던 것은 식료품 가게 주인 부부 덕분이었습니다. 마을에서 유일하게 카야를 존중해주고 친구로 대해준 사람들이었습니다. 카야가 세상과 연결되고 세상을 견딜 수 있게 만든 것이 바로 ‘연결감’이었습니다.
지금 너무 아프고 힘들어도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촉진하는 것이
우정, 사랑, 친밀감 같은 정서적 연결감입니다
『고통의 곁에 우리가 있다면』 중에서 https://c11.kr/19z0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