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제주로부터 현재 너머로의 fusion 그리고 음식
태종의 차남 효령대군의 10대손이자 보물로 지정된 탐라 순력도를 제작하기도 한 병와 이형상은 1702년부터 제주목사 겸 병마 수군절제사를 지내었다. 이형상이 둘러 본 제주의 풍광은 그가 살아 오는 과정에서 보았던 것중에 가장 뛰어난 것이라고 회고했고,형 이형징의 사위인 윤두서가 제주가 어떤 곳인지를 묻는 편지에 대한 답으로 13,850자의 남환박물南宦博物: 남쪽 벼슬아치가 쓴 박물 즉 제주 박물. 을 저술했는데, 37항목에 걸쳐 역사 지리 물산 자연생태 봉수 노비와 서리 등등 백과사전 같은 제주의 세세하고 흥미로운 기록들을 담고 있다.- 2009년 #푸른 역사에서 번역본을 펴냄 .
그의 실학자 다운 호기심과 탐구정신에 실천력까지 남환박물 내용들을 읽는 내내 300여 년 전의 제주로 판타지 여행을 떠나고 있다. 고려나 조선시대의 여러 자료들을 들여다보다 보니 그동안 글자로 박제된 것들만을 알아 온 나의 제주의 역사상식이 얼마나 부끄러운 지 모르겠다. 지나간 시간의 역사는 앞으로 올 알 수 없는 미래만큼이나 미지의 세계, 수직선 상의 영점에서 -로 300여 년의 거리만큼의 과거로 가서 흥미로운 탐험하고 드 것을 현실로 이끌어 내는 제주 사람의 음식 이야기를 해 나가볼까 한다.
그림. 탐라순력도 귤림풍악
제주의 귤은 무척 귀한 과수여서 매해 조정으로 진상되었고 설날 아침 조회에서 제급하였다고 하는데 가을이 되면 일일이 그 열매의 숫자를 세어 확인 기록했고 귤열매 한 개당 가격이 정해졌다. 감자柑子(홍귤) , 유감乳柑 (이예 감을 말하는 것 같다.)은 한 개당 좁쌀 한 홉, 금귤. 동정귤. 청귤. 산귤(진피의 재료)등은 2개당 한 홉이었다.
과원이 설치되기 시작한 것은 1526년이었는데 다섯 과원으로 시작해 1702년에 42곳으로, 그 과원을 밤낮으로 지키는 군사들이 880여 명에 이르렀고 과원이 아닌 개인의 귤나무도 돌보는 군인이 정해졌다고 기록되어 있는데다 일일이 열매의 개수를 세어 관리하는 일에 백성들의 고통이 컸다.
기록에 남아 있는 귤의 종류는 당금귤 2그루, 금귤 165그루, 동정귤 28그루, 유감 45그루, 감자 120그루, 청귤! 255그루, 산귤 2,252그루, 돌 금귤 5그루 , 등자 귤 15그루 , 당유자 173그루, 유자 3,620그루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고 그 열매의 숫자 역시 각각 다 기록에 남아 있다. 맛 한번 보지 못했을 테고 귤 종류마다 달린 열매의 숫자를 확인하고 매일 지키고 있어야 했을 병사들에게 영주10경 귤림추색이라는 말은 들어 본 적도 없는 양반들 근처만의 문화코드였었겠지..
이 것은 300여 년 전의 일들이다. 그런 세월이 흐른 뒤 기록에 남이 있는 껍질 파아란 청귤( 껍질은 당유자와 비슷하고 청피라는 약재의 재료이기도 했다고 함)은 사라져 보기 힘들고 채 익지 않은 풋귤이 시쳇 말로 핫한 과일 청귤로 팔리기 시작했다가 명칭이 다시 풋귤로 이름이 정정되어가는 중이다.
유난히 장마가 긴 올여름인데다 오늘 지난다는 태풍 장미는 얼마나 많은 비를 또 뿌리고 갈런지 모르겠다. 얼마 남지 않은 8월의 햇빛이 마저 비춰 준다면 곧 풋귤들이 카페의 청귤 메뉴가 될 상품들로 팔려 나가기 시작하겠다.
풋귤은 노랗게 변하기 직전에 따서 속이 주황색으로 즙이 차오른 탱글탱글한 상태가 새콤하고도 달콤한 맛이 좋다.
그 풋귤을 얇게 저며서 맛있는 식초 살짝에 오일을 조금 섞어 뿌려주면 입안 가득 침이 고이는 샐러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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