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단기선교를 준비하며 읽은 <예수는 누구인가?>
가끔씩 유튜브에서 베이직 교회의 조정민 목사님의 설교나 문답으로 이루어진 짧은 영상들을 보곤 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 사실은 '기본'이라는 교회 이름에 충실하듯, 목사님의 교회는 주일 예배와 아침 예배만이 교회의 주된 사역이라고 합니다.
다른 훈련이나 양육 프로그램 없이, 오직 말씀을 읽고 스스로 변화를 체험하고 사는 것. 말씀과 성령 외에 다른 부수적인 것들에는 힘을 빼는 것. 이것이 목사님이 바라는 교회의 방향이기 때문입니다. (p.141)
선교를 준비하는 과정 역시 비슷할 것입니다. 공연과 선교지에서의 봉사활동을 포함해 많은 것들을 열심히 준비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우리가 먼저 예배자로 서는 것이 먼저 되어야 합니다. 선교라는 중대한 사명마저도, 예수님을 알게 된 이후 따라오는 자연스러운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선교의 모든 여정을 통해 우리가 예수가 누구인지 깊게 알아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구원이라는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 예수가 누구인지 나부터 먼저 깨달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이 제 개인적인 바람입니다.
조정민 목사님의 <예수는 누구인가?>라는 책에서는 8가지로 예수를 설명합니다.
이 글에서는 더 간단하게 요약해 예수는 하나님이고, 사랑이자 사랑의 증거라고 설명하겠습니다.
공관복음서는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을 지칭하는 표현입니다. 이들은 예수의 생애와 사역을 같은 시각에서 기록했습니다. 이 세 책은 순서, 문체, 가르침과 교훈이 거의 비슷한 관점에서 적혀 있습니다. (두란노닷컴)
요한복음은 조금 다릅니다. 요한은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예수님의 제자로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모신 인물이기도 합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예수의 어릴 적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이 포도주로 만든 사건을 다루는 등, 예수가 하나님으로 이 땅에 왔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p.212)
요한복음은 예수가 하나님이라고 직접적으로 설명해주는 책입니다.
요한복음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 (요 1:1)
성경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한 분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이때 존재하던 것은 하나님과 그 영, 그리고 말씀뿐이었습니다. (창세기 1:1-3)
요한은 그 셋이 사실은 한 존재나 다름없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때 존재하던 '말씀'이 육신을 입은 것이 바로 예수라고 선언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요 1:14)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요 1:18)
잠깐 상상해 봅시다. 죄가 없는 사람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요?
정답은 '하나님 형상'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창세기 1:26)
처음 아담이 죄를 짓기 전까지, 인간은 하나님을 닮은 유일한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아담이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먹으며 인간의 죄가 대물림되기 시작됩니다.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로마서 5:14)
그런데 하나님이 인간이 되면서 '하나님 형상'을 온전히 가진 인간이 생겨났습니다. 아담이 타락한 이후 처음으로 세상에 죄 없는 인간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렇게 인간은 드디어 죄의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얻게 됩니다. 죄의 시작이 한 사람(아담)의 불순종으로 생겨난 것처럼, 죄의 끝 역시 한 사람(예수)의 순종으로 얻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로마서 5장 12-21절)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로마서 5:19)
여기서 말하는 순종은 예수가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은 사건을 의미합니다. 그는 마땅히 십자가에서 내려올 능력이 있었고, 십자가를 내려놓고 싶었음에도 하나님 뜻에 순종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인간을 용서하고 싶었기에, 우리 죄를 용서해 달라는 제사의 산 제물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예수는 십자가에서 피 흘림을 통해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담을 허물어 화평하게 하는 역할이 되었습니다. (에베소서 2:11-22)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에베소서 2:16)
왜 선한 한 사람이 다른 모든 죄인을 위해 희생해야 했을까요? 하나님은 왜 자기 자신을 죽이면서까지 인간과 화목하고자 했을까요?
이유는 사랑뿐입니다.
성경은 믿음 이외에는 다른 어떠한 방법으로도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그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고, 예수를 보낸 하나님을 믿는 것이기도 합니다. (요 14:1-24)
...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예수는 제자들이 서로 사랑하기를 바랐습니다. 이로써 율법을 완성하기를 원했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 13:34)
예수는 제자들이 자신을 사랑하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기를 바랐습니다.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요 14:23-24)
예수는 모두를 위해 목숨을 내어 놓습니다. 인간으로 할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요 15:13)
예수가 보여준 사랑, 그것은 목숨을 내어놓는 것으로 완성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십자가에서 죽은 이유는, 결국 사랑밖에 없었습니다.
요한은 긴 삶의 묵상 끝에 예수가 끊임없이 자신이 하나님임을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는 십자가에 매달리기 직전까지 끊임없이 제자들에게 알려주고 계셨습니다. (p.231)
예수께서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요 8:58)
그는 양 떼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유일한 목자였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생명을 위해 목숨을 다해 사랑하였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자신을 포기하는 '권리'를 행사하였습니다. (p.69-73)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요 10:17)
아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믿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장에서 나사로가 죽은 이후 오랜 시간이 흘러 예수가 그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나사로의 동생인 마르다는 예수님이 자신의 오빠가 다시 살아나리라고 말하자 "마지막 날에는 그렇게 되겠지요" 하면서 대답합니다. 그녀의 대답은 '안다'였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녀는 예수가 정확히 누구인지, 부활이 무엇인지도 온전히 알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믿는다'라고 대답하지 못한 것입니다. (p.82-84)
책은 이런 사람들이 '말씀을 먹는 대신 분석하고 해석하고 자기가 이해한 만큼만 적용'한다고 꼬집습니다. 그런데 내가 이해한 만큼만 안다고 생각하고 멈추게 된다면, 어떻게 크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을까요? 우리의 비루한 상상력보다 풍부하게 일하실 하나님을 기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온전히 믿으십시오.
이미 성경의 많은 구절을 통해 예수님은 우리와 만나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께 묻고 직접 들으십시오. 예수님 안에서 자유하십시오. (p.140)
어떻게 예수님을 만날 수 있냐고요?
말씀을 읽으세요!
예수의 본질은 말씀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말씀은 곧 성경입니다.
성경 안에서 예수가 누구인지를 찾고 매일 새롭게 묵상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나에게 하는 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그 아들을 보내주셨습니다. 하나님이었던 말씀은 그렇게 인간이 되었고, 죄 없는 그 존재가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우리 죄의 삯을 미리 치러주셨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예수였습니다. 그는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주었고, 모든 인간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내어주는 것으로 자신의 사랑을 증거 하였습니다.
인간은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수를 믿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 기준과 내 선택 대신 예수님이 하신 선택을 매 순간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도록, 우리는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책을 읽거나 <요한복음>을 묵상하시면 더욱 풍성하게 글을 즐기실 수 있습니다.
해당 책은 '밀리의 서재'를 이용해 읽고 일부 발췌하였습니다.
더욱 자세한 내용은 담임 목사님 혹은 담당 목사님과 상의하세요 ;)
1편 | 우리의 믿음이 어디에서 오는가 (brunch.co.kr)
2편 |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누구인가 (현재 글)
하루하루 마음이 정말 무겁습니다.
이태원 사고 사망자와 유가족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위로와 평안이 필요한 모든 이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