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사빠 Jul 02. 2022

불편한 사이

캥거루 주머니 속 발차기는 오늘도 ing

"건강검진에서 우울증이 나왔어. 콜레스테롤도 높게 나왔지 참. 오늘부터 간식은 안먹을거야~"

엄마는 원래부터 마른 비만이었으니까 콜레스테롤은 뭐 그렇다치지만... 우.울.증? 말도 안돼.

내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우울증은 아무나 걸리는 게 아니라고 나무라니까 엄마는 나보다 늦게 귀가한 동생한테 "엄마 우울증이래", 또 퇴근하고 온 아빠한테 "의사가 나 우울증이래" 하며 자신의 말을 들어달라고 어필했다. 

우리가족은 누구 할 것 없이 "질문에 체크를 잘못했겠지"라며 흘려 들었다. 


포털사이트 지식백과에 따르면, 우울증은 의욕 저하고 우울감을 주요 증상으로 하여 다양한 인지 및 정신, 신체적 증상을 일으켜 일상 생활의 기능 저하를 가져오는 질환이라고 나와있다. 


그런데 우리 순자 씨는 누구보다 매사에 의욕적이고 진취적이다. 집에 있으면 좀이 쑤시는 듯 평일에는 물론이고, 쉬는 날에도 일단 밖에 나가는 게 우리 엄마다. 

60이 넘은 나이에도 사람은 일을 해야 한다며 청소 아르바이트에, 얼마 전 지방선거 때는 투표사무원 아르바이트도 하고 왔다. 거기서 덤으로 동네 친구도 사귀었다고 자랑했던 게 어제같은데 무슨 우울증이란 말인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자려고 누워 곰곰히 생각해보니까 괜스레 걱정이 됐다. 

"엄마가 요즘 외로운가? 우리가 너무 우리끼리만 다녔나?" 

"엄마도 엄마 또래 친구가 있을 거야. 잔다~"

신경쓰지 말라며 돌아누워 자는 동생의 모습에 이렇게 쿨할 수가 있나 싶었다. 


아줌마와 할머니 그 사이 어딘가에 우리 엄마가 있다. 밖에서 예순이라는 나이는 확실히 아줌마의 나이는 아니다. 하지만 엄마를 할머니라고 하기엔 아직... 아직은 아줌마 울타리 안에 두고 싶은 게 딸의 마음인가보다. 

엄마를 다른 예순의 할머니들과 동일시하지 않다보니 유독 엄마한테 엄격한 편이다. 

 

신문물이 범람하는 IT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핸드폰과 키오스크 사용법을 알려줬지만, 엄마는 늘 버벅거렸다. 알려줄 때마다 늘 처음 듣는다는 반응은 나중에는 나를 질리게 만들었다. 늘 서로에 대한 비난으로 끝맺음했다. 

엄마는 "알아듣기 쉽게 가르쳐주면 어디가 덧나니"하고 날 다그쳤고, 나는 "몇번이나 가르쳐줬던 건데 왜 못하는 지 이해할 수 없다"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두 번 다시 나한테는 물어보지 않겠다는 엄마와 두 번 다시 가르쳐주지 않겠다는 나지만, 얼마 안가 또 물어보고 알려주다보니 그만큼 비난하는 말도 자주 오갔다.  


그러다가 거리두기를 했던 것 같다. 엄마와 나는 살 게 없어도 종종 마트에 갔는데(그때마다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그때마다 의견이 안맞아 다퉜다.)언젠가부터 마트가기를 중단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기분 좋게 나가서 남남처럼 들어오는 모녀를 쳐다보며 아빠와 동생은 혀를 찼고, 그럴 거면 애초에 같이 다니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다. 

붙어있는 시간이 길면, 부딪히는 시간도 비례하기 마련이라고 누가 그랬다. 맞는 말이다. 

'내가 독립해서 살았다면 어땠을까. 가끔 보는 엄마의 모습에 애틋함을 느꼈겠지.'라고 생각이 들자 조금씩 거리두기를 하는 게 괜찮겠다 싶었다. 

그런데 나름의 갈등을 최소화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거리두기는 부작용을 낳고 말았다. 심각한 수준은 아니겠지만, 건강검진 결과를 운운하며 말하는 엄마의 모습에 분명 서운함이 있었다. 


어렵다. 서른이 넘어서도 독립하지 못한 딸과 엄마의 관계는 남녀관계만큼이나 어렵다. 

다 커버린 새끼 캥거루에게 어미 캥거루 주머니는 너무 작다. 작아진 어미 주머니는 벗어나야 정상이지만, 나는 독립할 용기도 없다...  지금도 유일한 반항인 주머니 발차기로 생채기나 내고 있는 중이다. 



작가의 이전글 꿈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