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사빠 Nov 08. 2017

#1. 11살 차이의 벽에 쿵!

내가 아는 지인 A의 이야기이다.

대학교 2학년이 되어서야 첫 연애를 하게 된 A의 전화를 받았을 때는 깜짝 놀랐다.

"응. 나 남자친구 생겼어. 11살이나 많지만, 우리는 서로 잘 맞는 것 같아. 재미있고 좋아."

네가 즐거우면 됐지라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A의 남자친구는 이러했다. A와는 같은 종교생활을 하고 있었으며 어릴 때부터 알던 사이였다. A의 말에 따르면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알던 '선생님'이라고 했다. 왜 그런거 있지 않은가. 교회 학생회에서 봉사활동하는 선생님. 그런 개념이었다. (참고로 말하자면, A는 절에 다녔다.)

A에게 남자친구는 특별했다. 때로는 선생님같았고, 때로는 자상한 아빠였으며 로맨틱한 남자친구였다. 단점도 없지는 않았다. 대학생인 그녀가 학교 생활로 고민을 토로할 때 함께 고민해주지 않았으며 통하는 관심사도 딱히 없었다.

그녀 나이 21, 당시 남자친구 나이 32. 남자는 이미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대학 생활은 이미 오래전 일이라 A가 걱정이나 고민을 말할 때 돌아오는 대답은 "사회 생활하면 더 힘들어. 공무원이 정답이지."라는 식의 부모가 자식에게 해주는 고지식한 말뿐이었다는 거다.

평소에는 행복했다고 한다. 차도 있겠다, 주말이면 교외로 나가 드라이브도 하고, 일반 대학생에게는 부담스러울 수 있는 가격대의 공연(연극, 뮤지컬, 조성모·자우림·컬투쇼 크리스마스 콘서트)도 심심치 않게 봤다고 자랑을 늘어놓던 A였다.

오래가진 못했다. 8개월 째에 헤어졌다. 첫 연애의 실패에 A는 많이 아파했다. 오죽하면 응급실에 실려가서 주사를 두방이나 맞았다. 별건 아니었고, 스트레스와 탈수증, 고열이 한꺼번에 몰려왔던 거였다.

"너무 나빠. 나쁜 사람이야. 나한테 먼저 고백했으면서. 내가 먼저 좋다고 사귀자고 한 것도 아니고, 나 좋다고 사귀어달라고 해서 사귄 건데 왜 나를 차? 어떻게 나한테 헤어지자고 할 수가 있어?"

그날 카페에서 만난 A가 눈물, 콧물을 닦느라 티슈 한통을 다 써서 알바생이 눈치를 줬던 걸로 기억한다.

A가 그 남자를 처음부터 사랑했던 건 아니었다. 그 남자는 A를 만나기 전에 5년동안 만난 애인이 있었다. 결혼을 전제로 만나던 여자였고, A도 그 두 사람이 결혼할 것이며, 예쁜 예비부부라고 응원한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두 사람은 헤어졌단다. 아무리 곱씹어봐도 이유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여자가 사준 지갑을 남자가 잊어버렸다고 했던가.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지만, 그때보다 수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어떻게서든 이유를 찾아 헤어지고 싶었던 두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다.

어쨌든 그렇게 헤어지고나서 남자는 A에게 고백을 했다.

"A야, 이제 곧 이번 학기 종강이지? 기념해서 놀러가지 않을래?"

"둘만요? 이상한데요? 제가 왜..."

"아니, 어색하면 너 동기들도 같이 불러서 가면되지."

그렇게 같은 절에 다니던 동기(남자1, 여자1)와 A, 11살이나 많은 남자는 강원도 펜션에서 1박2일을 보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남자는 A에게 고백을 했다. 진부하지만 '오랫동안 생각해봤다. 아무래도 내가 너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나이차이가 마음에 걸리지만, 진지하게 만나고 싶다'라는 말을 덧붙여서.

A는 그렇게 난생 처음으로 하게 된 연애를 11살 나이차 많은 남자와 하게 됐고, 그녀의 입을 빌려 말하자면 '부유한 연애'라고 했다.

앞에서도 말했듯 물질적으로는 부유했을 진 모르겠지만, 정신적으로는 아니었나보다. 솔직히 두 사람은 맞지 않았다.

"오늘도야. 결혼하고 싶다는 말을 너무 자주해. 나는 아직 대학생인데... 졸업까지 2년이나 더 남았다고. 지금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서 안정적인 가정주부가 되는 게 어떠하냐는데? 이건 아니지 않아?"

장래를 고민하기 바쁜 A에게 툭하면 결혼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자녀 계획까지... A에게는 모든 게 부담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A는 이 일을 계기로 아이들을 지나치게 싫어하게 됐다.

예상하지 못했겠지만, A의 남자친구는 유치원 선생님이었다. 아마 지금도.

"얘 너무 귀엽지 않아? 얘는 우리 반에서 내가 제일 귀여워하는 애야. 말은 잘 안듣는데 정이 가."

"얘는 어때? 옷 입은 것 좀 봐. 하하"

두 사람의 공통된 관심사나 여러가지 고민에는 무심하던 남자가 본인 애도 아닌 유치원생들 이야기로 만나는 시간을 꽉 채우는 것에 불만이었던 A는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나는 애들이 싫어. 우리 둘의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어. 그리고 그 아이들에게 난 관심이 없어. 어떻든 말든 내 관심사가 아니라고. 내 고민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데? 내가 최근에 어떻게 지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있어?"

그렇게 두어번 정도 크게 다투고난 어느 날 이별 통보를 받은 것이다.

A는 처음에 자신을 자책했다. "나 때문이야. 내가 애들을 싫어해서 그런 가봐. 엉엉... 그게 아닌데... 내가 사랑한다고 표현을 안했었나?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여자친구가 되지 못했나봐"

아니다. A는 충분히 노력했다. 다만 숨김없이 감정을 표현한 게 죄였다면 죄였던 걸까.

자책은 분노로 변했다.

"내가 먼저 사귀자고 했어? 먼저 고백해놓고 이제와서 왜 저러는 거야? 내가 뭐가 모자라서? 내가 어디가 어때서? 속이 다 후련하다! 인생에서 꺼져줘서 참 고맙다!"

2주 정도 까칠하던 A는 곧 평정심을 되찾았다.

그리고나서 A는 한가지 깨달았다고 했다.

그렇게 이별을 하고 나니까 못해준 것들이 많이 생각나서 안되겠다면서 앞으로 사랑할 때는 모든 것을 쏟아부을 거라고 했다.

아차, A는 남자친구였던 그 사람의 결혼식에도 갔다고 했다.

남자는 A와 헤어지고 1년이 채 안되어 결혼을 했다.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와 심증을 토대로 날짜 계산을 해봤더니 아마도 A와 헤어지기 며칠 전 선을 봤고, 결혼이 목표였던 남자는 공통된 목적을 갖고 있는 여자와 미래를 계획하기로 결심, A를 뻥 차버린 거였다.

A에게 물어봤다. 결혼식에는 왜 갔고, 가끔 얼굴을 마주해야 할수도 있는 모임에 왜 끊임없이 나가느냐고.

"내가 피해야 할 이유는 없지. 그리고 결혼한 여자 사진을 봤는데 11살 많은 아줌마더라고. 아줌마 보면서 평생을 살아야 하는 사람한테 가끔 젊은 미모를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서. 언젠가 나도 나이가 들고 하겠지만, 그때에도 나는 그들보다 11살이나 어린걸. 내가 할 수 있는 복수를 하고있는 것 뿐이야. 멋진 남자와 함께하는 예쁜 내 모습을 지켜보게 하는 거. 그리고 그게 싫으면 당사자가 안나오면 되는 거 아닐까?"

A는 진심으로 그 남자를 사랑하지 않았다. 사랑한 적이 있었을 수도 있겠지만, 분명 잠깐이었을 거다. 부족한 것 없이 물질적으로 채워주는 남자에게 호감이 있었던 것임은 맞다. 헤어지고 나서도 분노와 증오만 남았지 슬픔이나 애틋한 감정은 하나도 남지않은 걸 보니 말이다. 그러니 A가 그 남자에게 서운해할 이유도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아주 잠깐 든 생각인데 A의 지독한 혼전순결 때문에 남자가 나가떨어진 건지도 모르겠다. 그때 당시만해도 A는 지독한, 아주 지독한 혼전순결 주의자였다. (나쁘다는 건 아니다. 그리고 A의 혼전순결 주의가 지금까지 지켜지고 있다고도 안했다.)


작가의 이전글 달, 슬픈 얼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