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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윤 Jul 17. 2022

사랑을 믿는다면, 영화 [모어]

색채의 향연보단 논밭의 사랑이 넘쳐흐른다


@kjyooon


출처 | IMDB

내가 중학생이던 어떤 여름날, 가족들과 거실에 둘러앉아 불을 끄고 본 영화 '스틸 앨리스(2014)'는 기억을 잃어가는 교수이자 아내이자 엄마 그리고 자기 자신 앨리스를 연기하는 줄리안 무어의 열연이 빛나는 영화이다. 화려한 배우들의 열연 속 그 영화는 한창 빠르게 머리가 커가던 내게 커다란 무언가를 던져두고 그대로 내 마음속 한편에 자리 잡았다. 그 무언가는 '사랑'.


잊어도 잊어도 채워질 수 있는 것이 곧 사랑이며, 결국 사랑을 향해 가는 이 영화를 본 이후로 나는 결국 세상의 모든 것들이 결국, 사랑이라는 한 지향점을 향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결국 '사랑'


그렇게 나는 우리 모두 사랑을 위해 살고, 사랑을 위해 울고 웃는다는 그 강력한 믿음 아래에서 어느 날은 모든 사랑을 새까맣게 잊고 깊은 동굴 속에 들어가 나오기를 영영 거부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또 어느 날은 버스를 타면서도 세상 만물을 사랑하느라 정신이 혼미하기도 하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문득 오랜만에 내 속의 흐릿해진 사랑을 끌어올리는 작품들을 만날 때면 다시 '결국, 사랑'이라는 내 안의 캐치프레이즈를 떠올리고, 스틸 앨리스를 보았을 때의 작지만 컸던 나 자신을 떠올리며 기쁘다가도 슬프기를 반복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 기쁨과 슬픔의 반복적 느낌은 내가 가장 행복을 느끼는 시간이기도 하다.


출처 | IMDB

고등학교 3학년, 헤드윅을 보게 되었다.


뮤지컬을 보기 전 예행연습 같은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영화였다. 가벼운 마음이 내 마음을 모두 짓누를 만큼 무겁게 변한 건 한셀이 헤드윅의 이름을 갖게 되었을 때였던 것 같다.



헤드윅의 이름을 하고 엄마가 들려주었던 그 바이블 같은 the origin of love가 담담하게 들려올 때면 내가 그토록 믿던 '결국, 사랑'이 들려왔다. 조각난 나의 반쪽을 찾는 일이 과제이자 숙명으로 들려올 때면 어김없이 눈물이 났고, 영화와 뮤지컬 모두 제일 사랑하는 작품이 되어 이제는 사랑이 흐릿해지거나 나에게 내가 흐릿해질 때면 꺼내보는 작품이다.


그리고 2022년, 모어를 만났다. 오랜만에 내가 제일 사랑하는 네 글자 '결국, 사랑'이 깊은 마음속에서 쏟아져 나온 작품이었다.

출처 | 네이버 영화

81분의 1시간 20분 남짓하는 짧지만 소중한 다큐멘터리. 


그야말로 한 사람의 에너지가 총집합된 영화는 모든 걸 뒤집어 꺼내놓고 보여주며 솔직한 태도로 모어가 사랑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드랙 아티스트에서 배우, 그리고 다시 드랙 아티스트로 돌아가는 모어의 인생 전환기를 크게 세 개의 시퀀스로 나누어 둔 영화는 큰 시퀀스의 틀을 지키면서도 모어의 과거와 현재를 가르며 빈틈없는 짜임새를 유지한다. 


그리고 사이사이 모어에게 영향을 준 인물들에 대한 대담한 이야기와 인터뷰는 모어라는 사람에게 주었던 영향을 보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유추하게 만들고 느낄 수 있도록 돕는다. 



출처 | 네이버 영화

모어는 너무나도 사랑하는 존 카메론 미첼을 만나게 되고, 미첼 역시 모어의 wig in a box 영상을 떠올리며 둘의 인연은 시작된다. 영화에 그대로 담긴 이들의 대화가 어쩌면 영화를 대변해서 우리에게 말을 건네는 듯하기도 하다.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이기심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나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 영혼이 죽는다."


2022년 7월 9일, 영화 '모어' GV


여느 GV보다도 웃음과 위트가 넘쳐흘렀고, 행복의 눈물마저 함께하는 시간이었다. 러닝타임 동안 웃고, 울고(아주 많이) 하며 모든 에너지를 다 썼다고 생각했는데, GV가 시작되자 감독님과 아티스트 모어의 에너지가 다시 관객들의 마음을 채워 넣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GV에서 나누었던 흥미로운 이야기 몇몇을 적어본다.)


- 처음부터 뮤지컬스러운 다큐를 만들자는데 목표가 있었다. 그래서 (모어가 춤을 추거나 연기를 하며 삽입된 노래에) 싱크를 맞추는 것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이 혼재된 노선을 택한 것이다.


- 노고를 느끼는 건 관객의 몫이 아니다. 그건 실패한 연출이다.




영화 '모어'는 그저 모어라는 세계에 관객을 빠지게 해 놓고 방관하는 것도 아니며, 이분법적으로 세계를 나누는 영화도 아니다. 특히, 퀴어축제 속 여러 사람들의 뒤섞인 아름다움과 그에 반(反)하는 것들을 보고 있자면 더욱 그러하다. 혼재된 사람 개개인의 세계를 펼쳐놓고 구분 짓지도, 평가하지도 않는 영화 '모어' 속에는 논밭과 함께하는 사랑이 있고, 포켓몬 고와 함께하는 사랑도 있다.


영화 '모어'를 본 후 또다시 흐릿해졌던 '결국, 사랑'이라는 말을 오랜만에 내 눈앞에 스스로 꺼내 두었고, 흐릿해졌던 나 자신 또한 다시 꼿꼿이 바라보게 되었다.


당신이 기대하는 색채의 향연보단 논밭과 사랑이 넘쳐흐르는 영화이지만,

"사랑을 믿는다면" 모어를 보시길 아주 간곡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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