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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풀 Feb 28. 2023

나도 최애 팀을 가지고 싶다

'야알못'이 읽은 야구팬의 일기 <죽어야 끝나는 야구 환장 라이프>

야구를 잘 모른다. 쓰리아웃이면 공수가 바뀌는 것, 타자와 투수가 있다는 것, 주자가 홈으로 들어오면 점수가 난다는 것. 그런 큰 틀 말고는 잘 모른다. 숫자로 환원되는 선수들의 능력치며, 외야수와 내야수의 다른 점 등등의 것들을 모른다. 그런데 야구에 완전히 무심하지는 않다. 잘 모르는 데 마음이 간다. 좋아한다. 우선 만화 <H2>, 드라마 <스토브리그>처럼 야구하는 사람들을 다룬 이야기를 좋아하고, 운동선수들의 인터뷰나 인생 스토리 읽는 걸 즐긴다.

딱 두 번이었지만 야구장에서 직관했던 경험은 응원한 팀이 졌음에도(두 번 모두, 홈팀을 응원했고 홈팀이 졌다) 그곳의 달뜬 분위기에 취해 즐거운 기억으로 남았다. 그 이후로 '나도 어떤 팀을 응원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지만 막상 정착할 팀을 찾지 못했다. 이미 응원하는 팀이 있는 주변 사람들은 무조건 잘하는 팀을 골라야 속이 편하다고 했지만, 잘하는 팀의 팬이 되기로 하는 건 왠지 꺼려졌다. 그 팀의 성적이 떨어지면 좋아할 동기가 사라지는 것이기도 하고 이건 상대의 스펙만 따지는 연애 같기도 해서. 게다가 한 계단씩 오르는 성장서사에 죽고 못 사는 내게 지금 잘하는 팀은 그렇게 매력 있는 선택지가 아니다. 물론 지금 잘한다고 계속 잘한다는 보장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뭔가 현재보다 미래가 '더' 기대되는 팀을 좋아하고 싶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팀에 마음이 동하나. 축구로 치면 리버풀 같은 팀이다. 축구 또한 잘 모르지만, 레전드인 제라드가 있고 You'll Never Walk Alone 같은 심금을 울리는 응원가가 있는 그런 스토리가 있는 팀이면 마음이 간다. (대학생 때 주변에 리버풀팬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오롯한 팬심은 뭔가 특별해 보였다.) 서사가 없는 팀이 어딨겠냐마는 그래도 이왕이면 내가 힘든 시절부터 같이 하든, 어떤 한 선수의 성장을 응원하면서든 팀의 우승을 진심으로 바랄 수 있는 팀이었으면 좋겠다. 팀의 색깔이 명확했으면 좋겠고, 몇몇 에이스들의 활약보다 팀워크가 빛나는 그런 팀 말이다. 그렇게 나는 한동안 어떤 팀의 승패에 내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하고 싶다는 이상한(?) 마음을 품었다. 그리고 여러 팀을 탐색하다 그렇게 탐색만 하다 끝나버렸다.


야구에 진심이고 싶지만 아직은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서 야구(구체적으로 말하면 삼성 라이온스)가 곧 인생인 사람의 얘기 <죽어야 끝나는 야구 환장 라이프>를 읽었다. 책 속에 'xx'가 빈번하게 나오듯 욕 나오게 속 터지는, 그럼에도 놓을 수 없는 나의 팀에 관한 애증의 기록들이 재밌었다. 역시 가까이서는 죽을 맛의 비극이어도 멀리서 보면 희극인 걸까. 욕인 듯 하지만 그 안엔 결국 찐사랑이 묻어있는 (삼성)야구 이야기를 읽고 나니 다시 나도 내 팀을 가지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죽어야 끝나는 야구 환장 라이프'의 후반부 190페이지.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김대우 선수에 관한 얘기였다. 저자는 '주연이 있다면 조연도 있다고도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내가 맡은 조연이라는 역할에 충실하려고 한다'는 김대우 선수의 인터뷰를 언급하며 적재적소에서 제 몫을 해주는 선수가 담담하게 조연을 말하는 순간 휘몰아치는 감정을 느꼈다고 말한다. 그리고 한 경기의 주연이 아니어도, 한 시즌의 주연이 아니어도, 구단 역사의 주연이 아니어도 그날의 김대우는 많은 팬들의 인생에 출연했을 거라며 존경을 보낸다.

결국 야구가 인생이고 인생이 야구인 저자는 스트레스에 속병을 앓아도 야구에 몰입했던 순간들이 자신만의 의미들로 남았다고 전한다. 어쩌면 내가 응원하는 팀을 만들고 싶어 했던 건 그들로 말미암아 내 인생의 순간순간들에 의미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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