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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풀 Mar 01. 2023

오랜만에 달렸더니 다리가 무겁다 '오히려 좋아'

<나는 좌절의 스페셜리스트입니다>의 '굳은살'에 공감한 이유

지난해 손기정 마라톤에서 하프마라톤을 완주하고 달리기를 멈췄다. 추워진 날씨 탓도 있었고 하프마라톤이라는 연중목표를 달성하고 동력이 약해지기도 했다. 달리기 대신 수영을 한다는 좋은 핑계도 있었다. 덕분에 마음 편히 달리기에 소홀해졌다. 그러다 올 1월, 제주도에 간 김에 일출을 보겠다며 성산일출봉 근처를 달렸다. 새해 첫 달리기였다. 숨이 차고 다리가 무거웠다. 몸이 예전과 달라졌다는 게 단번에 느껴졌다. 몸은 정직하다. 몸의 시간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야속하지만, 한편으로 오히려 좋다.


해가 뜰 준비를 하는 새벽 어스름. 2023년 1월 8일 오전 7시10분. 오른편 하늘은 주황빛으로 달아오르는데, 왼편 하늘은 차분한 푸른빛에 하얗고 둥그런 달이 빛나고 있었다.


성산일출봉을 배경으로 뿌듯한 만세! 오랜만에 달리기로 땀을 빼니 상쾌했다.

 
아주 오랜만에 달렸는데도 전처럼 숨이 차지 않고 편안하게 오래 달렸다면 억울했을 것 같다. 뛰기를 멈춘 시간만큼 다리가 무겁다는 건 꾸준히 달려온 시간에 힘이 있다는 말이다. 굳은 몸은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노력을, 시간을 증명해 준다. 그래서 삐걱대는 몸을 체감하고 나서 다시 달리고 싶어졌다. 날도 서서히 풀려가고 겨우내 잘 먹고 잘 놀아서인지 인생 최고 몸무게를 찍기도 했다. 달리기에 소홀해졌던 이유만큼이나 뛸 이유도 많다.
 
요즘 읽는 책 <나는 좌절의 스페셜리스트입니다-피아니스트 백혜선의 인생수업>(백혜선, 다산북스,2023)에서 비슷한 생각을 마주했다. 피아니스트 백혜선은 자신의 손에 굳은살이 박인 때의 에피소드를 들려주며 이렇게 회상한다.


"엄지손가락으로 손끝을 문질러 봤더니 짧게 자른 손톱 아래로 굳은살이 느껴졌다. 연습을 도중에 멈추어야 할 정도로 너무 아팠는데 이상하게 코웃음이 나왔다."(p.80) 

 
그가 굳은살 앞에서 코웃음을 지을 수 있었던 건 그간 말랑하고 여린 손을 유지해온 연습의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는데 안심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나는 아마추어일 뿐이지만, 프로의 세계에서 그가 마주한 굳은살이 내가 체감한 무거운 다리의 느낌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굳은살이란 오히려 피아노를 한동안 치지 않았다가 오랜만에 쳤을 때야 박이는 것이다. 고로 굳은살이 박였다는 것은 곧 그 연주자가 훈련을 게을리했다는 뜻이 된다."(p.71)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지지난 주말, 친구와 서울신문 마라톤 대회 하프코스를 과감히 신청했다. 디데이는 5월 20일. 그때까지 두 달여가 남았다. 다시 5킬로, 6킬로 이렇게 달릴 수 있는 거리를 차차 늘려가는 중이다. 10킬로미터도 거뜬했던 몸이 무색하게 5킬로만 달려도 숨이 차고, 쉬고 싶어 지지만 괜찮다. 다시 또 달리는 시간을 쌓아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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