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어 봐야 알 수 있는 맛처럼.
인도 여행기를 읽었다.
날것 그대로의 생생함이 느껴졌다. 그 나라의 풍경과 냄새가 글 사이로 전해졌다.
읽는 것만으로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안다.
아무리 여행기를 정독한다 해도, 직접 발을 디뎌본 사람이 느끼는 그것엔 미치지 못한다는 걸.
그건 독서를 하면서 가장 자주, 가장 깊이 느껴온 지점이기도 하다.
‘아’는 것과 ‘하’는 것은 비슷하지만 전혀 다르다.
‘아’는 것은, 무(ㅇ)에서 하나의 가지(ㅏ)를 뻗는 일.
‘하’는 것은, 그 아(아)에서 또 다른 방향(ㅗ)으로 손을 뻗는 일.
아는 것과 하는 것 사이에는 언제나 ‘경험’이라는 강이 흐른다.
속독 강의를 할 때, 매주 독서량을 늘리라고 요청한다.
첫 주엔 10권, 다음 주엔 15권, 그다음은 20권, 마지막은 25권.
4주간 총 70권을 읽는 과제다. 어떤 분은 하다가 포기하고, 어떤 분은 어떻게든 완주하려 한다.
물론, 단기간에 그렇게 많은 책을 읽는다고 해서 내용을 다 소화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렇다면, 왜 읽는가?
그건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많은 책을 접하다 보면,
양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각의 확장이 있다.
1권 읽는 데 한 달 걸리는 속도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감각이다.
당연히 밀도는 낮아진다. 그런데 오히려, 그 얕은 흐름 위에서 진짜 보고 싶은 깊은 물길을 발견하게 된다.
과거엔 책을 완독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하지만 빠르게, 가볍게 읽는 법을 익히고 나면 어느 순간 궁금해지는 책이 생기고, 다시 깊이 파고들고 싶은 문장이 눈에 띄게 된다.
그건 '의무'에서 '욕망'으로의 전환이다.
지식이 아니라, '새로운 관점의 탄생'이다.
또 하나 있다.
짧게 훑어보는 독서만으로도, 책을 대하는 감각이 달라진다.
이건 사람을 만나는 것과 비슷하다. 모든 사람을 깊이 사귀지 않더라도, 여러 사람을 두루 만나며 얻는 감각이 있듯 책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책을 접하며 독서의 문턱이 낮아진다.
책이 점점 만만해진다. 독서가 자유로워진다.
책을 잘 읽기 위해 독서법을 배우는 게 아니라, 책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배우는 것이다.
책 중심이 아니라, 나 중심의 독서. 그게 진짜 독서력의 시작이다.
그렇게 되면,
다시 읽고 싶은 책, 머무르고 싶은 문장, 궁금해지는 작가들이 생긴다.
욕망이 깨어나는 것이다. 그때부턴 독서가 즐겁다.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이 된다.
그게 핵심이다.
많이 경험한 사람은 몸이 먼저 안다.
일주일에 20권 이상 읽어본 사람은 1~2권 읽고선 "많이 읽었다"고 느끼지 않는다.
하루에 2~3권 읽는 것도 그다지 대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건, 가본 사람만이 아는 감각이다.
여행을 가본 사람만이 느끼는 감상이 있고, 먹어본 사람만이 아는 맛이 있다.
아무리 설명을 잘해도, 그 영역은 넘을 수 없다.
그리고 거기에 닿은 사람만이, 말할 수 있다.
'아'는 것과 '하'는 것의 차이를.
어쩌면 그래서,
우리가 감탄할 때 내뱉는 말이 ‘아하!’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