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이 TV 예능 방송 프로그램에 넘쳐나던 시절이 있었다. 게스트로 출연하는 것은 물론, 아이돌이 고정 패널로 활동하는 일이 흔했다. 좀 재미있다고 소문난 아이돌은 이 방송 저 방송에 불려 나가 얼굴을 알리며 대중성과 인지도를 쌓고 그 아이돌이 속한 그룹을 알리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아이돌 멤버를 구성할 때 아예 예능 담당 멤버를 따로 두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이 공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었다. TV 예능 방송에 고정 출연하는 아이돌의 비중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아이돌에게 더 이상 예능이 중요하지 않냐면, 그건 아니다. 오히려 그 중요도는 과거보다 더 높아졌다. 단지 방식이 바뀌었을 뿐이다. 과거 여러 예능 방송인들과 함께 토크나 리얼 버라이어티에 참여하던 방식에서 점차 아이돌 멤버끼리만 출연하는 방식의 예능으로 대체된 것이다. 케이블 채널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방송하기 시작했고 이제는 웹 채널로 판이 옮겨졌다. 코로나 사태 이후 웹의 역할이 강화되며 쏠림 현상은 한층 가중되었다. 멤버 몇몇만 잘하면 됐던 예능은 이제 팀 전체에게 능력을 요구하는 상황으로 변모하였다. 개개인의 숨은 매력뿐 아니라 멤버끼리의 케미와 팀워크가 입덕 포인트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한 멤버에게 관심이 가서 콘텐츠를 찾아보다가 팀 전체를 좋아하는 '올팬'이 되는 건 드물지 않은 일이다.
아이돌이 예능에서 빵빵 터트리고 잘 놀면 당연히 좋다.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크게 문제가 되진 않는다. 유머 감각이 다소 부족하더라도 늘 웃을 준비가 되어 있는 덕후 앞에선 어차피 답은 정해져 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누구도 상처 받지 않는 유머를 구사하는 것이다. 웃겨야 한다거나 분량을 뽑아야 한다는 강박은 때때로 흉하게 망가진 모습을 보이거나 누군가를 상처 입히는 말과 행동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제 아무리 자기들끼리 친하더라도 방송에서 보일 때는 지켜야 할 선과 정도라는 것이 있다. 또한 아이돌로서 덕후의 기대에 어긋나는 모습은 차라리 가만히 앉아있느니만 못하다. 리얼리티라고 해서 정말 '리얼'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빅톤의 예능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다. 언제나 적당한 선을 지키기 때문이다. 함부로 행동하거나 거친 말을 내뱉지 않고 분위기가 과열될 것 같다 싶으면 이를 적절하게 통제하는 멤버가 있다. 4년 동안 숱한 예능 콘텐츠를 촬영하며 한결같은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은, 주 소비자인 덕후를 늘 염두에 두고 있다는 믿음을 준다. 덕후 입장에서는 여기까지만 해도 상당히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심지어 빅톤은 사이가 좋고 웃기기까지 하다. 빅톤이 팀워크의 비결로 항상 꼽는 가족 같은 끈끈함은 진짜 같다. 서로에 대한 애정과 신뢰가 두텁고 스킨십도 자연스럽다. 취향이나 성격을 잘 알고 특이한 버릇, 신체 특징, 채취까지도 공유한다. 생김새도 개성도 잘하는 것도 다 다른 7명의 멤버가 각자 성실하게 제 몫을 다하고, 함께 있으면 완성된 퍼즐 조각처럼 딱 맞아떨어졌다. 자기들끼리 노는 게 제일 신나고 재미있어 보여서 덕후도 덩달아 흐뭇해진다. 예능이 아이돌의 전부는 아니지만 예능을 잘하는 아이돌은 여러모로 덕후에겐 큰 선물이자 축복이다.
그리고 이러한 빅톤의 장점을 소속사에서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는 점도 덕후에겐 반갑다. 최근 빅톤은 D.I.Y. 공작소 영상을 내놓았는데, 코로나 시대 아이돌의 예능 콘텐츠로서 손에 꼽힐 만하다. V LIVE에 최근 아이돌의 만들기 영상이 많아진 상황에서 소속사가 처음부터 기획해 아이돌이 셀프캠 촬영한 영상을 편집과 자막을 넣어 자체 제작한 것이다. 이 시국에 집에서 할 수 있는 소소한 공작 놀이 7가지를 각 멤버가 직접 손으로 끙끙대며 만드는 무해하고 귀여운 모습을 30분 가량 보여주는 데다가, 손수 만든 완성품을 팬에게 선물한다는 결말까지 기승전결이 짜임새 있다. 언택트 소비 시장에 발맞춘 아이돌 소속사의 역량이 또 하나의 시험대에 오르게 된 셈이다.
빅톤 입덕 영상 OLD & NEW
빅톤의 컴백은 덕후에겐 떡밥과의 전쟁이다. 각종 매체와 채널에서 영상 콘텐츠를 매일매일 쏟아내고 밀린 떡밥을 회수하느라 밤잠과 주말을 헌납해야 한다. 데뷔도 하기 전에 리얼리티로 먼저 얼굴을 알린 빅톤은 이후 수많은 영상 콘텐츠 속에 그들의 역사를 고이고이 남겨 두었다. 사진 앨범을 꺼내보듯 빅토니들의 과거와 현재가 어떻게 같고 또 다른지 언제든 찾아볼 수 있다. 덕후에겐 그 모든 순간이 소중하고 즐거운 추억이다.
1theK Born 아이덴티티-세븐 런닝맨(2017년) vs. 딩고 뮤직 의리 게임 시즌2(2019년)
몸과 머리를 동시에 써야 하는 버라이어티 게임 예능은 캐릭터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좋은 방법이다. 동맹과 배신, 속임수와 잔머리가 난무하며 반전과 반전이 이어지는 와중에 저마다의 개성과 성격을 여실히 드러난다. 그중에서도 자신감은 하늘을 찌르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는 최약체 병찬이의 해맑은 생존법은 예나 지금이나 독보적이다. 빅톤 내 '국룰'로 불리는 '승식몰이'도 볼 수 있는데, 2020년 버전에선 예능신까지 가세해 승식이의 별명이기도 한 '감자' 티셔츠가 걸리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1theK 전쟁의 서막-분량 사수 대작전(2018년) vs. U+ 아이로그 U(2020년)
여행 콘텐츠는 아이돌 예능의 치트키다. 재미와 감동을 다 잡을 수 있다는 점에서 흥행은 어느 정도 보장된다. 특히 다인원 팀인 경우엔 여러 곳의 여행지를 나눠갈 수 있다는 장점도 있는데, 두 예능은 모두 이 점을 십분 활용한다. 속초, 여수, 경주로 팀을 나눠서 떠난 <전쟁의 서막>과 강원도에서 각자 하고 싶었던 패러글라이딩, 자작나무 숲, 양 떼 목장을 선택해 즐긴 <아이로그유>는 아이돌과 여행의 꿀 조합을 여실히 보여준다. 스케줄과 연습으로 꽉 채워진 생활을 하는 빅토니들이 비일상의 장소로 떠나 새로운 경험을 하고 그 순간을 온전히 만끽하는 모습은 덕후에겐 그 자체로 힐링이다.
V LIVE 승승장구 라디오(2017년) vs. 네이버 나우 빅톤의 이불킥(2020년)
빅톤의 공식 엄마 아빠인 승식과 승우는 데뷔 초 자신들의 이름에서 따온 '승승장구'라는 코너로 라디오 DJ의 꿈을 키웠다. 그리고 3년 만에 네이버 나우에서 그 꿈을 이루게 되었다. 보이는 오디오 쇼 <빅톤의 이불킥>의 호스트가 된 '승승이들'은 센스 넘치는 진행 실력으로 청취자의 '이불킥 하고 싶은' 사연을 '차분하게' 소개하고 공감과 위로를 전해준다. 메인보컬과 리드보컬로 빅톤의 목소리를 담당하는 멤버답게 매회 빠지지 않는 노래 선물은 매주 화요일 밤을 짙은 감성 보이스의 '폰서트장'으로 초대한다. 맥락은 없지만 천연덕스럽게 잘 해내는 설정극은 보너스.
해요 TV 빅톤의 사생활(2017년) vs. 딩고 뮤직 노래자랑(2020년)
찬과 한세는 빅톤 내에서도 넘치는 흥 보유자들이다. 실없는 농담을 던지며 오디오를 꽉꽉 채우는 찬과, 허를 찌르는 말을 툭툭 내뱉는 확신의 개그 캐릭터 한세는 다른 방식으로 팀 내 분위기를 주도한다. 이러한 캐릭터는 노래방에서 특히 빛을 발한다. 노래 점수가 잘 나와야 승진을 시켜줄 거라며 으름장을 놓는 '도 부장'과 자신의 애창곡 '진진자라'를 강제 주입하는 '허 부장'은 덕후를 광란의 노래방으로 초대한다. 단, 부작용이 있다. 귓가에 노래가 계속 맴돌 것이라는 경고문은 헛것이 아니었다. 진진자라 지리지리자 진진자라 지리지리자...
1theK 미.칠.남. (2016년) vs. 1theK 밴 라이프 승우 x수빈(2020년)
유일한 미성년자로 빅톤에 가장 마지막에 합류한 막내 수빈. 데뷔 리얼리티인 <미.칠.남.>에서 수빈이 어릴 적 놀림을 받은 적이 있다는 말에 양팔을 걷어붙이며 대신 화내던 승우는 유난스러운 '수빈맘' 중 하나다. 그렇게 마냥 어리고 귀엽게만 보였던 수빈은 어느 순간 형들을 눈빛으로 제압해버리는 '폭군'이자 때때로 형들보다 더 속 깊고 어른스러운 '회장님'으로 폭풍 성장한다. 그리고 이제 수빈이가 승우를 챙겨주는 입장이 되었다. 1년 만에 팀에 돌아온 승우를 마치 언제나 함께 있었던 듯 스스럼없이 대하고 장난치는 모습은 완전체 컴백 전 덕후의 쓸데없는 걱정을 단박에 없애주었다. 빅톤이 쌓아 올린 시간의 무게는 생각한 것보다 더 깊고 특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