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부터 이 세상의 사람들이 다 나와 같을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기로 했다. 그럼 마음이 좀 편해진다.
나는 사람을 대할 때 기본적으로 예의를 지킨다. 예를 들면 전화할 때 소리를 지르거나 욕을 하지 않고 차분하게 용건을 전달한다든가, 마지막에는 가볍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한다든가, 모르는 게 있으면 죄송한데 알려줄 수 있냐고 묻는다. 그게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당연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봐왔던 사람들이 모두 다 나와 비슷해서 세상 사람들이 다 나 정도의 인격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것은 대단한 착각이었다. 난 운이 좋아서 이상한 사람을 만나지 않았을 뿐, 세상에는 좋은 사람만큼 나쁜 사람들도 많았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사람을 대하는 업무는 일의 양이 많다든가 아니면 마감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과는 달리 가장 스트레스가 심한 부분이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은 업무와 다르게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타인은 나의 통제 아래에 있지 않아서 예측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mbti를 완전히 믿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계획형, 그러니까 통제형 인간이라서 나의 통제 아래에 있지 않은 변수들에 대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어쩔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최대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요즘은 신규 시절과는 달리 대민업무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최근에는 이상하리 만큼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꼬였다. 나에게 전화를 걸어 통화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끝나는 순간까지 시종일관 소리를 지르는 사람이 있었다. 그 소리에 머리가 아파서 "선생님 목소리 좀 낮추세요."라고 말씀드려도 전혀 상관하지 않고 격양된 톤으로 이야기를 했다. 아무런 논리도 없고 설득력도 없이 그저 본인의 화를 나에게 푸는 사람. 전화로 말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사무실 현관에 찾아와 본인이 화가 난다며 사무실에 불을 질러버리고 싹 다 없애버리고 싶다는 사람, 그렇지만 그렇게 할 용기는 없겠지.
그렇지만 이런 사람은 오히려 대하기가 편하다. 법을 잘 모르기 때문에 내가 책 잡힐 일이 없고, 소리는 지르지만 그만큼 주장에 실속이 없기 때문에 들어주다 보면 제풀에 꺾여 괜찮은 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내가 담당자니까 민원인이 자신의 과실을 인정하고 조금 더 잘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나에게 정중하게 물었다면 난 최대한 할 수 있는 만큼 도왔을 것이다. 사람들은 나에게 조금만 예의를 갖춘다면 내가 최소한의 것을 벗어나 도와줄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도와줄 수 있다는 간단한 생각조차 하지 못 하는 것 같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처럼 나는 좋은 하루 보내라는 그 작은 말에도 쉽게 감동받는 사람인데 왜 그걸 모를까. 이러한 생각을 하다 보면 마음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감정노동에 시달려서 하루 종일 덩달아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는 현재 법과 제도가 잘못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민원인이 나에게 욕을 하고 소리 지르는 것은 그럴 수 있는 일이지만 내가 진상 민원인에게 "욕하면 끊겠습니다, 선생님 소리 지르지 마세요."라고 말하면 불친절한 공무원이 된다. 친절의 의무는 있지만 친절함이라는 것은 주관적인 척도에 의해 판단이 되는데 누가 어느 범위부터 어느 범위까지가 친절인지 무 자르듯이 정의할 수 있는가.
최소한의 보호장치도 없이 민원업무를 처리할 수 없고, 세금으로 일한다고 하지만 나도 세금 안 내는 거 아니다. 오히려 탈세할 수 없기 때문에 정직하게 모든 세금을 다 내고 있다. 그러니 나에게 세금으로 일한다고 뭐라고 하지 마시길, 이건 그저 노동의 대가로 받는 임금이다.
처음 글쓰기를 시작했을 때 무례한 민원을 대처하는 방법으로 글을 쓰겠다고 했지만 나에게도 아직 방법론 같은 것은 없다. 그저 몸으로 부딪히고 깨지면서 배우고 있는 중이다. 다만 무작정 소리 지르고 화내는 것이 벼슬인 줄 아는 사람들을 대할 때는 그 사람들에게 말려들어 나도 화를 내면 나만 손해이니 이야기를 들어주고 침착하게 전화를 끊으려고 노력 중이다. 물론 그 이야기를 끊기 위해 화를 내야 할 순간이 찾아온다면 화를 내는 것도 맞다. 바보같이 묵묵하게 들어주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마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CS 업무를 보는 사람들, 콜센터 직원분들, 그리고 일반 회사원에 이르기까지 신분제도는 사라졌지만 현실 사회에서는 여전히 갑과 을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상하관계가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을도 아닌 갑을병정의 정쯤 될 것 같다.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하고 스스로 모든 것을 이겨내야만 하는 삶, 이런 게 사회의 쓴맛인가 싶기도 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내가 선택한 내 길이니까 스트레스받지 않고 어떻게 하면 이 업무에서 성취감을 느낄 수 있을까 고민하며 사는 요즘이다.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것보다 고민을 하며 생각하며 나아가는 삶이 그래도 조금이나마 낫지 않을까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요즘이다. 세상의 모든 직장인들, 파이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