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평온의 대가

by 민경민

매년 여름이면 어머니는 제사를 지내야 하니 장을 보러 가자고 하신다. 나는 얼굴을 본 적조차 없는 외할머니의 기일을 챙기는 것인데, 어머니가 외동딸인 까닭에 매해 직접 제례를 올린다.


과거에 외할머니가 안 좋은 일로 돌아가셨다는 것은 어렴풋이 들은 적이 있다. 한때 전국민적인 열풍을 불러일으켰던 신경숙 소설가의 『엄마를 부탁해』(2005)를 읽다 보면 '잃어버린 엄마'에 대한 묘사가 잠깐 나온다. 한 목격자의 '웬 치매 걸린 노인이 앙상한 손으로 길바닥에서 상한 김밥을 먹고 있더라'는 증언에 주인공 딸이 울음을 터트리는 그 장면이, 외할머니의 이야기와 겹쳐 가끔 생각나곤 했다.


찾고 싶어도 찾을 수 없는 엄마.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 어딘가에 떠돌며 고통받고 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에 대한 원망. 언젠가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어머니에게 그 책을 권하며 대략적인 줄거리를 읊어줬을 때도 어머니는 그 책만큼은 '못 읽겠다'며 한사코 거절했는데 아마 외할머니에 관한 마지막 기억이 떠올라서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어머니는 외할머니의 제사를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지냈다고 한다. 기일뿐만 아니라 명절에도 약소하나마 제사를 지내고, 어려웠던 시절에도 외할머니 제사만큼은 빠지지 않고 지냈으니 그 정성이 얼마나 각별한지.


하지만 나는 종종 어머니에게 조심스럽게 제사를 그만두면 어떻겠냐고 권하곤 했다. 유명한 절에 봉양을 맡기고 기일이 되면 절에 찾아가 인사드리고 오자고 말이다. 내가 미신을 믿지 않고 무신론자여서, 아니면 기억에도 없는 사람을 기리는 일이 낯설어서가 아니라, 그저 제사를 쉬고 연휴 기간에는 어머니가 좋아하는 여행을 다니거나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즐거운 추억을 만들었으면 해서였다.


제사상을 준비하는 것은 내가 도우면 될 일이니 큰 문제는 아니지만 제사가 끼면서 항상 명절 연휴가 어중간해진다는 점은 아쉬운 것이었다. 기일은 그렇다 쳐도 설이나 추석 같은 대명절에 연휴가 생겨도 명절 당일에 제사를 지내야 한다면 아무래도 장기 여행 같은 것을 계획하기는 힘들잖은가. 하지 않으면 모르되 귀찮다고 제사를 앞당기거나 늦게 지내는 건 차라리 지내지 않는 것만 못하니 시간을 바꿀 수도 없으니 말이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민경민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영화, 삶, 인간, '지적 감성인'들을 위한 사유 공간입니다.

1,813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8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71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매거진의 이전글관계의 상대성과 서운함의 적분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