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서초구 양재동 주민입니다.
Words by Jeong-Yoon Lee
세상에 공짜가 없다더니 공짜가 있더라고요. 아무래도 무보수의 삶을 살고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의 통장과 지갑에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시기인 거 같아요. 그래도 나의 삶은 지속되어야 하니, 평소에 몰랐던 동네를 산책하면서 발견하는 재미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서울에 혼자 올라와 15년 가까이 살고 있지만 한 번도 어떤 동네에 정착해야지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던 거 같더라고요. 셀 수 없이 이사를 다니다가 서초구양재동으로 이사 온 지 8년째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요즘 떠들썩하게 하는 밀양사건으로 영화 한공주를 다시 보게 되었어요. "떠날 준비를 하고 살면 불안해서 살 수가 없어"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뭔가 저의 머리를 탁 치더라고요.
집회사집회사만 다닐 때는 온전하게 동네를 즐기지 못했는데 슬슬 저의 시간을 온전히 저의 계획대로만 움직여야 하는 일상이 지속되면서 동네 여기저기를 샅샅이 살피다 보니 '내가 왜 여길 이제야 안 거야?' 하는 곳들이 발견되기 시작하더라고요. 심지어 공짜로 즐길 수 있는 축복까지 받게 되다니, 더할 나위 없이 이 동네가 마음에 들더라고요.
양재천 걷기 - 운동, 날씨와 계절의 변화, 행사
1만 보 걷기를 위해 양재천은 자연스럽게 오게 되었는데, 양재천은 서초구에서 관리하는 쪽과 강남구에서 관리하는 구역으로 나뉘는데 두 구역을 비교하면서 산책하는 묘미와 4월엔 벚꽃, 5월엔 장미, 6월엔 양귀비, 수레국화, 안개초 7월엔 백합같이 양재천만 나가면 계절별로 피어있는 꽃들을 보면서 자연학습이 되더라고요. 양재천 수변무대를 중심으로 프리마켓, 공연, 축제도 주말이면 즐길 수 있는 볼거리라 심심할 틈이 없습니다.
갤러리발견 - 한 작품을 오래 볼 수 있는 기회
맨날 양재천 산책만 할 순 없으니 활동범위를 넓혀 강남구 개포동까지 돌아다니다 보면 발견되는 갤러리들이 있더라고요. 작은 규모의 전시지만 요즘 활동하는 젊은 작가의 작품을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매일 산책하면서 갤러리를 갈 수 있다니 이 얼마나 낭만적이에요. 집단착각 책 속에 나온 "우리 스스로의 위선과 유해함을 폭로하는 예술 때문에 불편한 기분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바로 예술의 본질이다." 요즘 작가들이 던지는 질문은 무엇인가? 어떤 사회적인 규범에 불편함을 나타내는가? 무엇을 파괴하고 싶은가? 알고 싶어 지더라고요. 유명한 전시나 유명한 작가의 작품만 쫓아다니면서 봤었는데, 깊이감 있는 작가들을 발견하게 되고 좋아지면 나도 작품을 사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등산 - 대모산 구룡산 국수봉 서울둘레길
헬스장은 회원권을 끊어놓고 안 오는 70%의 회원들 덕분에 운영이 된다고 하잖아요? 저는 그 반대로 무언갈 시작하면 매일 달성해야 하는 목표처럼 오히려 빼먹는 날엔 찝찝하고 죄책감마저 들 때가 있어서 시간과 공간으로부터 해방되는 걷기와 같은 운동이 정신적으로 좋더라고요. 어차피 헬스장에 가더라도 러닝머신 위에만 있었던 지라 운동효과를 제대로 주는 등산을 할 수 있으니 너무 좋더라고요. 매일 다른 등산코스와 사람들 관찰하는 재미, 바로 티 나는 눈바디까지 등산은 멈출 수가 없습니다.
aT센터 박람회 - 사전등록 무료관람
내 관심분야가 아니더라도 진행하는 박람회는 다 참여해 보자라는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월요일에 검색해도 사전등록만 하면 금토일중 아무 때나 방문하여 무료로 즐길 수 있으니 안 가면 손해 아닌가요? 남들은 멀리서 일찍부터 준비해서 오는데 나는 세수만 하고 나가도 되는 거리에 있으니 모를 땐 몰랐지만 한번 가보게 되니 너무 재밌더라고요. 진짜 전혀 관심 없던 분야도 요즘 트렌드를 반영한 박람회이다 보니 흐름도 읽을 수 있고 방문하는 사람들 관찰하고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새로운 자극과 영감을 받을 수 있어서 좋더라고요.
지역도서관 - 소유하고 싶은 책만 소장하게 되었다.
늦게 알게 되어 가장 후회하는 것 중 하나가 공공도서관이용이에요. 책을 쳐다도 안 보고 살면 모를까? 꾸준하게 읽으려고 하는 사람으로서 동네도서관은 너무나도 반가운 곳이었어요. 온라인으로 회원가입 후 신분증을 가져가서 확인절차가 끝나면 정회원이 됩니다. 그러면 책대출을 자유롭게 할 수 있거든요. 책가격도 부담이 되고 무엇보다 책장에 가득해져만 가능 책들이 버거워지더라고요. 그리고 개중에는 이 책은 굳이 안 갖고 있어도 될 거 같은데?라는 책들이 존재하잖아요? 공공도서관을 이용해 읽고 싶은 책을 빌려서 읽고 이 책은 소장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면 대형서점에서 구매하면 되겠더라고요. 그런 식으로 정리하고 나니 나의 책장을 싹 비우고 다시 채우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서초구 양재동에 정착하기로 결심을 했답니다. 사람마음이야 언제 또 변할지 모르겠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는 서초구 양재동입니다. 정착하기로 마음먹으니 다양한 각도로 동네를 살피게 되고 로또만 되면 살고 싶은(사고 싶은) 집도 생겼답니다.
Credit
글. 이정윤
사진. 이정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