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와 뇌구조까지 바꿔놓은 문화적 진화의 힘
2024년 13번째 읽기록
Words by Jeong-Yoon Lee
책태기를 극복 못하고 결국 집이 아닌 도서관에서 책 읽기를 마무리했어요. 글자 하나하나 촘촘하게 읽는 스타일인데, 대에충 머릿속에 안 들어오면 안 들어오는 대로 꽂히면 꽂히는 대로 읽고 마무리했어요. 그래서 엄청 강렬하게 머릿속에 박혀있지는 않지만 첫 책을 펴고 50페이지까지는 정말 흥미롭게 읽었거든요. 그 후부터 영 집중력이 떨어져서 겨우겨우 읽기는 했지만 600페이지가 넘는 책 속에 현재 지금의 내 상태에서 가장 뇌리에 남는 부분이 있거든요. 바로 "도덕적 판단과 의도의 중요성"이에요.
흑백요리사를 재밌게 보기도 하면서 여러 리뷰도 보고, 현재 맡아서 하는 일에서도 나의 "의도"가 명확해야 한다는 점을 엄청 중요하게 받아들이고 있거든요. 그리고 도덕적 판단과 의도의 중요성에서 한국에서는 그런 일이 있나? 있을까? 싶지만 해외 법정 이야기를 다루는 영상을 접하다 보면 범죄자의 의도를 판사가 엄청 집요하게 묻잖아요? 그 의도에 따라서 무서운 형량을 받을 수도 있는데 범죄자는 웃으면서 보편적인 형량이겠거니 하고 우쭐대었다가 호되게 당해서 울고불고하는 장면들을 봤거든요.
흑백요리사에서도 특히 기억에 남았던 "에드워리 리"님 미션이 주어지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서 결론을 짓게 되었는지 아이디어의 흐름과 의도를 명확하게 전달하는 모습이 와~ 설득을 정말 잘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에 반해 "그냥 이거밖에 생각이 안 났어요" 하고 본인의 요리 설명을 끝내는 분들도 있었는데, 좀 더 자신의 요리에 대해서 창의적인 아이디어에 대해 설명을 친절하게 해주면 좋을 텐데 말솜씨나 전달력에 대해서 아쉬운 마음이 크더라고요.
요즘 제가 하는 일도 말하는 내가 "의도"를 명확하게 가지지 않으면 듣는 사람들에게 "일관성"이 느껴지지 않을 거라 매 순간 긴장하면서 나의 생각의 흐름에 대해 설명을 상세하게 전달하려고 하거든요. 전엔 귀찮기도 하고 다들 이 정도는 알고 있겠지?라고 본인 스스로 편집하고 넘겨버리다 보니 오해 아닌 오해도 생기고 빈틈이 생길 수밖에 없더라고요. 사회생활이 길어질수록 복잡한 인간관계와 다양한 경험들이 쌓여 거기서 또 새로운 문화들이 형성되고 새로운 부가 탄생하고, 그렇게 사회는 나라는 계속 성장해 가는 거 같아요.
요즘 "학회"를 자주 갈 일이 있어서 새로운 지식 쌓기에 신선한 재미를 더하고 있는데, 책 속에서도 유럽의 집단지성이 폭발한 시기가 이런 학회를 통한 누적된 지식들이 쌓이고 쌓이다 보니 거기에 새로운 아이디어 하나가 추가되어 새로운 게 세상에 나오게 되고 이런 식으로 어느 날 갑자기 세상에 없던 뭐가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누적적인 경험, 문화가 정말로 중요하구나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어요. 내가 어떤 지식, 경험, 문화에 노출되느냐에 따라 나의 지성이 폭발하는 계기도 차이가 날 테니까요.
세상엔 100%가 있을 수가 없잖아요? 100% 위어드(WEIRD)도 없고 100% 비 위어드(WEIRD)도 없으니 내가 이런 상황에서는 위어드의 성향에 가깝구나! 내가 이런 상황에서는 비 위어드적인 선택을 취하는구나! 하는 정도의 이해가 되더라고요. 이런 책을 읽을 때마다 이런 책을 쓰는 작가들이 정말로 세상 대단하다는 생각뿐이거든요. 이런 방대한 지식을 대체 어떻게 머릿속에 넣고 계신 건지 나도 나의 지식방을 더 확장해서 키워가도록 해야겠어요.
【문장수집】
WEIRD는 각기 다른 유형의 사람들을 상대할 때에도 '정직'이나 '냉정함' 같은 개인적 특성의 측면에서 보다 일관된 방식으로 행동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한국인과 일본인은 오직 관계의 맥락 안에서만 일관성을 유지한다. '탑승자의 딜레마' 상황에서도 보편주의적이 아니라 특수주의적 혹은 관계적으로 결정한다. 관계적 맥락에 따라 유연하게 행동하며, 그 유연성은 '양면적'이거나 '위선적'이 아니라 사회적 능숙함으로 평가된다.
관계 중심적 사회에서는 높은 자존감과 긍정적인 자아관이 삶의 만족이나 주관적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자신만의 독특한 특성을 갖추어야 얻을 수 있는 자존감보다는 타인의 평가가 훨씬 중요하다. 그래서 끊임없이 타인과 비교하며 살아간다.
수업을 진행할 때마다 독서 목록을 조금씩 바꾼 덕분에 이 분야를 탐구하고 비판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흥미로운 일이긴 했지만, 그때만 해도 이런 지식이 인간 심리의 다양한 변이를 이해하려는 나의 지속적인 노력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끼칠지 미처 깨 닫지 못했다.
16-17
<행동과학과 뇌과학 Behavioral and Brain Science>(2010)이라는 저널에 <세계에서 가장 이상한 사람들?>이라는 논문을 발표하고 <네이처>에도 해설을 실었다. 두 발표문에서 우리는 심리와 행동 실험에서 가장 흔히 활용되는 인구 집단에 'W.E.I.R.D.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인구 집단은 서구의 Western, 교육 수준이 높고 Educated, 산업화된 Industrialized, 부유하고 Rich, 민주적인 Democratic 사회 출신이기 때문이다.
18
개신교가 여성의 문해력에 미친 영향이 특히 중요한 이유는 글을 읽을 줄 아는 어머니들은 문맹인 어머니들보다 아이들을 더 적게 낳아 더 건강하고 똑똑하고 부유하게 키우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광범위한 문해력은 사람들의 뇌를 바꾸고, 기억, 시각 정보 처리, 얼굴 인식, 정확한 셈, 문제 해결 등과 관련된 영역에서 인지 능력을 바꾸어놓았다. 또한 어머니들이 점점 글을 깨치고 공식 교육을 받으면서 가족의 규모, 아동 건강, 인지 발달도 간접적으로 바뀌었다. 이런 심리적·사회적 변화는 더욱 빠른 혁신과 새로운 제도, 그리고 장기적으로 경제적 번영으로 이어졌다.
38-39
당신은 누구인가?
어쩌면 당신은 WEIRD 일지 모른다. 서구의 Western, 교육 수준이 높고 Educated, 산업화된 Industrialized, 부유하고 Rich, 민주적인 Democratic 사회에서 자란 사람일지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당신은 심리적으로 좀 독특할 수 있다. 오늘날 세계의 많은 지역, 그리고 지금까지 살았던 대다수 사람들과 달리, WEIRD는 대단히 개인주의적이고, 자신의 생각에 사로잡혀 있으며, 통제 지향적이고, 일반적인 관행을 따르지 않으며, 분석적이다. WEIRD는 관계와 사회적 역할보다는 자기 자신, 다시 말해 자신의 특성, 성취, 열망에 초점을 맞춘다.
45
감정적으로 볼 때, WEIRD는 그들이 속한 문화에서 장려되지만 대개 자신이 세운 기준과 열망에 맞게 살지 못하면 죄책감에 시달린다. 대다수 비 WEIRD 사회에서는 (죄책감이 아닌) 수치심이 사람들의 삶을 지배한다. 사람들은 자신이나 친척, 심지어 친구들이 공동체에서 그들에게 부과하는 기준에 따라 살지 못할 때 수치심을 느낀다.
46
개인주의가 강한 나라의 사람들은 가족 간의 유대 관계가 더 약하고 족벌주의가 두드러지지 않는다. 다시 말해, 회사 사장이나 관리자, 정치인들이 자신의 친척을 채용하거나 승진시킬 가능성이 적다. 게다가 개인주의가 강한 나라는 내집단과 외집단을 구별하는 성향이 약하고, 이민자를 기꺼이 도와주며, 전통과 관습을 완강하게 고집하지 않는다. 개인주의가 강한 나라는 또한 더 부유하고 혁신적이며 경제적 생산성이 높다. 이런 나라의 정부는 좀 더 효율적으로 운영되며, 도로와 학교, 전기와 수도 같은 기반시설과 공공서비스를 더욱 훌륭하게 제공한다.
56
개인주의적 사회에 적응한다는 것은 다양한 맥락과 관계 속에서 개인적 특성을 지속적으로 갈고닦는 것을 의미한다. 규제-관계적 세계에서 잘 산다는 것은 매우 다른 접근법과 행동을 필요로 하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다양한 관계를 헤쳐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58
관계와 무관하게 일관적 태도를 보이는 것, 다시 말해 자기 자신에게 충실한 태도'는 사회적으로나 감정적으로 미국에서 더 큰 보상을 얻을 수 있다…많은 사회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나타내는 자신만의 독특한 특성을 갖추어야 얻을 수 있는 자존감 self-esteem이 아니라 타인의 평가 other-esteem(체면)다.
59
개인주의적 사회에서 죄책감을 많이 느끼지 않는 사람들은 타고난 특성을 개발하고, 자신의 개인적 기준에 따라 살며, 높은 수준의 개인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분투한다는 것이다.
63
사회를 위해 인간을 만들 때, 조물주는 처음부터 인간에게 자신의 형제들을 기쁘게 해주고 싶다는 욕구와 그들을 불쾌하게 하는 것에 대한 혐오를 부여했다. 조물주는 인간에게 형제들의 호의에 기쁨을 느끼고 형제들의 혐오에 고통을 느끼도록 가르쳤다. 그리고 형제들의 동의를 가장 기쁘고 가장 유쾌한 것으로, 동시에 형제들의 반대를 가장 수치스럽고 불쾌한 것으로 만들었다.
_애덤 스미스, 도덕감정론
91
우리는 우리가 마주치는 환경에 맞추어 우리의 정신과 행동을 조정함으로써 주변 환경에 적응하도록 유전적으로 진화해왔음을 의미한다… 특히 우리의 진화된 문화적 학습 역량은 개인적 경험이나 타고난 직관 같은 다른 정보의 원천보다 누구에게, 무엇을 배우며, 언제 문화적 학습을 활용하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연마되어왔다... 학습자는 성공했거나 명망 있는 사람들에게 우선 관심을 둠으로써 더 큰 성공과 지위를 얻을 수 있는 유용한 정보와 관행, 동기, 가치 등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들에게 관심과 기억을 집중시킨다. 학습자는 명망이나 성공 같은 단서를 성별과 종족(가령 같은 방언을 사용한다) 같은 자기유사성 self similarity의 단서와 결합하여 자신의 미래 역할이나 공동체에서 가장 유용할 것 같은 기술, 전략, 태도를 가진 사람에게 관심을 집중할 수 있다.
97
여기서는 살 수 없다. 험담과 소문만 이야기한다. 나는 아무도 나를 귀찮게 하지 않고 나도 아무도 귀찮게 하지 않는 곳으로 가겠다.
146
전 세계적으로 이루어진 조사에 따르면, 여성이 남성보다 신을 믿을 가능성이 높은데, 이는 정신화의 영향으로 설명할 수 있다. 모든 사회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정신화와 감정이입 능력이 우월하기 때문이다. 남성의 열등한 정신화 능력을 조정하면 여성과 남성은 신이나 다른 초자연적 행위자에 대한 믿음에서 다르지 않다. 많은 인구 집단에서 여성의 종교 신앙이 더 강한 것은 우월한 감정이입 역량의 부산물일 것이다.
180
정해지지 않은 내세에 대한 믿음은 또한 세계의 범죄 발생률에도 영향을 미친다. 한 나라에서 정해지지 않은 내세(지옥과 천국)를 믿는 사람의 비율이 높을수록 살인 사건의 발생률이 낮았다. 이와 대조적으로, 천국만을 믿는 사람의 비율이 높을수록 살인 사건의 발생률도 높다. 그렇다. 천국만 믿는 경우 살인 사건이 더 많이 발생한다. 폭행, 절도, 강도 같은 다른 9개 범죄에서도 똑같은 양상이 나타난다. 하지만 이런 다른 범 죄들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조심해야 하는데, 다양한 범죄가 신고되는 빈도가 나라별로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살인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이것이 여러 나라를 아우르는 가장 믿을 만한 범죄 통계이기 때문이다. 국가의 부나 불평등같이 일반적으로 국가별 범죄율의 차이와 관련되는 요소들을 통계적으로 상수로 두어도 이런 관계는 유효하다.
203
우리의 시간은 표준으로 환원되고, 오늘날의 황금은 시간으로 주조되기 때문에 근면한 사람들은 모든 자투리 시간을 각자 다른 직업에서 유용하게 활용하는 법을 안다.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은 사실상 돈을 탕진하는 사람이다.
467
상업에는 다른 모든 직업과 구별되는 특별한 특징이 있다. 상업은 인간의 감정에 너무도 큰 영향을 미쳐서 콧대 높고 오만한 사람을 갑자기 친절하고 나긋 나긋하게 굽신거리게 변신시킨다. 상업을 통해 인간은 사려 깊고, 정직하고, 예의를 익히고, 신중하고, 말과 행동을 조심하는 법을 배운다. 성공하려면 현명하고 정직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인간은 악덕을 피하거나 적어도 현재와 미래의 지인들이 나쁜 판단을 내리지 않도록 점잖고 진지하게 처신한다. 사람들이 자기신용이 무너질까 두려워서 창피한 꼴을 보이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사회에서 개탄할 만한 추문 이 잘 벌어지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
482
(혁신을 포함한) 누적적인 문화적 진화는 기본적으로 사회를 집단지능으로 바꿔주는 사회적, 문화적 과정이다. 여러 인간 사회가 혁신성에서 차이를 나타내는 것은 대체로 몰두하는 정신을 가진 인구 집단을 통해 세대를 가로질러 정보가 분산되는 유동성의 차이, 그리고 의지가 있는 개인들이 얼마나 신선한 실천을 시도하거나 새로운 믿음과 개념, 도구를 채택하려고 하는지에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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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글. 이정윤
사진. 이정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