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드보드로 제안서를 대신 쓴다면?
Words by Jeong-Yoon Lee
나는 10년 전부터 핀터레스트를 ‘아이디어 모으는 용도’가 아니라, 내 보드를 직접 생성해서 자료를 올리며 꾸준히 활동하는 플랫폼으로 사용해 왔다. 핀터레스트에 주식을 투자하기 시작하면서, AI 시대에 이 플랫폼이 광고뿐 아니라 어떤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하게 됐다. 그러다 문득, 핀터레스트를 오피스 버전처럼 활용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의 꼬리가 이어지기 시작했다.
확실히 언제부터 사용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한 번 쓰기 시작한 이후로는 꾸준히 사용하고 있다. 일단 미친 듯이 자료를 보고, 모으고, 쌓아야 한다. 디자이너든, 마케터든, 어떤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든 이건 거의 몸에 밴 습관이다.
핀터레스트를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보드를 만들어 꾸준히 이미지를 모은다. 그 보드 자체가 AI를 학습시키는 데이터베이스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브랜드 무드 보드가 어느 정도 쌓이면, 사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제안서를 만들 수 있다. 결국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힘은, 내가 발견한 작은 디테일과 그것을 현실에서 구현해 낼 자본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이런 상상을 해본다. 브랜딩 초반, 무드 보드를 기반으로 AI가 제안서를 자동으로 구성해 주는 시대. 내가 프롬프트에 무엇을 주문하느냐에 따라, 카피와 구조까지 갖춘 깔끔한 제안서가 출력되는 시대.
현업에서는 자료조사와 시장조사, 레퍼런스 수집에 시간이 정말 많이 든다. 그리고 그 자료들을 분류하고, 섹션마다 클라이언트를 혹하게 할 카피를 쓰는 건 더 많은 시간이 든다. 만약 이 과정을 핀터레스트 AI가 대신해 준다면?(이미 있을 수도 있겠지만.)
핀터레스트의 주가 차트를 보고 있자니 여러 생각이 든다. 핀터레스트는 대중적 앱이라기보다는, 특정 직업군이나 패션·뷰티·라이프스타일 분야에서 영감 얻기를 좋아하는 크리에이터들이 모이는 플랫폼이다. 결국 핀터레스트에서 모아진 영감이 인스타그램, 유튜브, 블로그에서 ‘결과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작은 발견을 하기 위해 핀터레스트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 플랫폼이 오피스적인 전문 분야를 강화한다면 굳이 광고만으로 성장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더 넓은 쓰임이 열리지 않을까? 이건 단지 투자자의 아쉬움에서 시작된 나의 생각의 꼬리이지만.
요즘 고민된다. 너(핀터레스트 주식)를 처분해야 할지, 장기 투자를 해야 할지. 아직은 판단이 쉽지 않다.
Credit
글. 이정윤
사진. 이정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