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수학 Apr 18. 2022

진짜 사랑을 보여줘

<접속>, <뜨거운 것이 좋아>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4월의 영화는 <접속> (1997)과 <뜨거운 것이 좋아> (1959)로 선정되었다.

너무나도 유명하지만 아직 보지 못했던 옛날 영화가 테마였다.


또 하나의 테마를 꼽자면,

-<접속>은 대한민국 최고의 여배우 전도연의 멜로 작품이라는 것

-<뜨거운 것이 좋아>는 미국 최고의 여배우 마릴린 먼로의 로맨틱코메디 작품이라는 것. 

(영화 소개에는 코미디로만 분류되어 있는데, 내눈에 로코로 보였으므로 로코라 적는다)

양국 최고의 배우가 찍은 사랑 이야기, 어떤 내용일까.






<접속> (1997)


라디오국 PD인 동현은 어느 날 옛연인으로부터 LP를 선물 받는다.

동시에 유니텔에서 수현이라는 여자에게 그 노래를 틀어달라는 신청을 받는다.

동현은 옛연인과 수현이 관계가 있다 생각하며, 잘 모르는 그녀에게 무작정 쪽지를 보내는데..



여기까지 읽고나서 드는 생각. 유니텔이 뭐지?






출처 시선뉴스




유니텔은 PC통신, 지금의 인터넷 채팅과 비슷하다고 보면 될 듯하다.


PC통신을 요즘으로 치면 익명 랜덤 채팅이라고 볼 수 있을까? 아니면 데이팅어플이라 봐야할까?

아무튼 지금이야 인터넷 채팅 하면 대부분 굉장히 믿을 수 없는, 불순한 의도를 가진 사람들로만 가득하다는 좋지 않은 인식이 강하지만,

그때 당시만 해도 모니터 너머로 전혀 모르는 상대를 만날 수 있다는 신기함과 설렘 때문에 좋은 이미지가 더 컸던 것 같다.

좀 더 순수했던 시절 같다고 하면 지난 시절에 대한 미화일까.


하지만 미화되지 않는 분명한 사실도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운명의 상대를 기다린다는 거다.

내가 잘 알 것 같은 사람, 알고 싶어지는 사람, 외로운 나를 외롭지 않게 만들어주는 사람.

모니터 너머의 모르는 사람이다 좋다. 누군가와 연결될 수 있다면..


영화는 그 감정을 자극하기에 2022년인 지금에도 마음의 한 구석을 건드는 느낌이 있었다.

거기다 요즘 유행하는 레트로 스타일이 영화 속 시대에선 가득하니 그런 점에서는 감성도 자극한다.

삐삐, 공중전화, 폴라로이드 카메라, 옛 영화관...

그런 것들이 만들어내는 아날로그적 분위기가 어쩐지 저 시대의 사랑이라면 좀 더 진실됐겠구나 하는 착각까지 불러일으킨다!








그렇다면 두 사람의 사랑은 정말로 어떨까.


친구의 남자친구를 짝사랑하는 여자, 수현.

삼각관계에서 여자를 차지했지만 다른 한 남자가 자살하자 연인과도 헤어지고 죄책감에 시달리는 남자, 동현.


수현은 눈앞에서 친구와 친구의 남자친구가 잘 되어가는 것을 보면서 마음을 접을 수도 표현할 수도 없다.

동현은 그런 일을 겪고나서 몇 년간 연락이 닿지 않은 전 연인과 다시 만나고 싶어한다.


그랬던 두 사람은 채팅을 통해 점점 스스로의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아간다.

수현은 동현의 충고에 따라 친구의 남자친구를 찾아가 키스도 해보지만 결국에는 마음을 정리하기로 하고,

동현은 옛 여자친구를 잊기 위해 수현을 만나 다시 한 번 새로운 사랑을 시작해보려고 한다.


그러나 동현이 마음 먹은 순간 옛 여자친구의 부고가 날아온다.

동현은 그것을 여자친구가 그 남자를 선택한 것이라고 표현한다.


그 사정을 모르는 수현은 동현을 만나려고 영화관 앞에서 기다리나 바람을 맞는다.

하지만 우리의 수현이는 상처 받고 포기하지 않는다.

계속해서 연락하고 계속해서 기다린다.


그동안 친구의 남자친구를 좋아할 때는 제대로 끊어내지도 표현하지도 못했던 소극적인 수현이가

동현과는 어떻게든 만나기 위해 직장에까지 찾아가본다.


한편 동현은 허무함에 모든 것을 정리하고 호주로 이민을 준비하다가,

수현이 자신을 찾아 직장에까지 왔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또한 직장 동료가 수현에게 자신의 연락처까지 알려줬단 것도.


수현에게서는 정말로 음성메시지가 와있다.

하지만 동현은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 이대로 수현을 만나야할지, 아니면 떠나야할지.

그래서 동현은 영화관 앞까지는 가지만 수현을 아는체하지 않고

수현을 내려다볼 수 있는 카페 안으로 들어간다.





그날은 수현이 마지막으로 동현을 기다리기로 한 날이었다.

하지만 그날까지 나타나지 않는 동현을 보며, 수현은 카페 안으로 들어간다.

그에게 마지막 음성메시지를 남기기 위해서다.


그 공중전화 바로 뒤에 동현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수현은 제 진심을 남긴다.


"당신을 한번도 본적은 없지만 잘 알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그걸 느끼지 못하고 떠나는군요. 

언젠가 그랬죠? 만나게 될 사람은 꼭 만나게 된다구요. 이젠 그말 믿지 않을래요."


그리고서 떠나는 수현을 동현은 여전히 잡지 못한 채 지켜본다.

등 뒤에서 들리는 수현의 말을 동현은 계속해서 곱씹는다.

그러다 수현이 떠난 자리에 남겨진 종이를 본다.


동현과 수현이 만나기로 했던 날의 영화표다.

그 순간 동현은 아마도 그날의 자신의 결심을 떠올렸을 거다.

새로 시작해보자, 한 번 해보자. 용기를 내보자.


동현은 번뜩 일어나 수현을 쫓아간다.

그렇게 만난 수현에게 동현은 말없이 영화표를 내민다. 내가 바로 그 사람이라고.

드디어 동현을 만난 수현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만나게 될 사람은 꼭 만나게 된다더니, 정말 그렇게 됐구나...


아마 그런 감격이 들었던 게 아닐까. 두 사람은 만나게 될 사이였던 거다.

하지만 그 말은 스쳐지나가는 만남도, 우연히 이루어지는 만남도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

만나고자 하는 두 사람의 강력한 의지,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강력한 사랑이 있을 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수현은 친구의 남자친구를 사랑했지만, 두 사람은 반드시 만나야 한다는 의지가 없었다.

동현에게는 옛 여자친구가 있었지만, 그녀는 자신이 선택하지 못한 남자를 끝내 마음에서 져버리지 못했다.


영화를 보고나서 생각해본다.

지금 나에게는 그러한 의지가 있는가?

만나야할 사람을 반드시 만나야겠다는, 닿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있나?

아니면 그러한 의지를 들게 해주는 사람이 있나?









<뜨거운 것이 좋아> (1959)


돈이 궁하던 죠와 제리는 일자리를 알아보던 중 우연히 스패치 갱단의 총싸움을 목격한다.

졸지에 스패치 갱단에 쫓기게 된 두 남자는 금발 여성 악단 안에 변장해서 숨어 들고,

그곳에서 아름답고 술을 좋아하는 귀여운 여자 슈가를 만나게 되는데...



일단 눈에 띄는 것은 흑백영화라는 점이다. 하지만 흑백이라는 점을 빼면 오래 전 영화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오죽하면 이 영화가 내 눈에 컬러로 보이는 느낌까지 들까!


처음 선택했을 때는 여장남자 코미디물인 줄 몰랐는데 여성 악단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와 설마!' 싶었다. 1959년에도 이런 이야기가 가능했을 거란 상상을 못했던 거다.


게다가 이 영화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금발 여성 악단이라는 굉장히 판타지적인 집단을 다루며, 그들을 꽃으로만 이용하지는 않았단 거다. 영화 곳곳에 금발 여성으로 변장한 남자 주인공들이 '여자들은 이런 일들을 겪는단 말야?'라며 불평불만을 늘어놓는다. 엄청나게 깊은 페미니즘을 다루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그들을 눈요기나 개그 소재로만 이용하지는 않았구나 싶었다. 그것도 1959년에!


하지만 놀라운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야기 속에서 슈가는 본인 피셜 '멍청'하다. 매번 테너 색소폰을 부는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데,

그 남자에게 모든 것을 다 해주지만 결국에는 헌신짝처럼 내다 버려지기 때문이란다.


그 이야기를 들은 죠는 남자를 믿지 말라며, 플로리다에 놀러온 백만장자나 골라 잡아서 결혼하라 한다.

그리고는 어이없게도! 본인이 그 백만장자인 척 굴며 슈가와 사랑을 나눈다.


한편 또다른 여장남자 제리는 죠의 이중 생활을 돕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자신에게 찝적대는 늙은 백만장자와 짝짜꿍을 맞춰준다. 그렇게 하룻밤을 밤새 같이 놀더니, 도대체 뭐에 반했는지 그 늙은 백만장자와 약혼까지 해버린다. 심지어 약혼선물이라며 다이아몬드 팔찌까지 받아온다!


때마침 스패츠 일당이 플로리다에 나타나며 두 사람은 더이상의 변장 사기극을 끝내고 도망치기로 한다. 죠는 슈가에게 전화로 이별을 고한다. 어젯밤까지만 해도 사랑을 느끼게 해준 여자라 칭송해놓고, 오늘은 정략결혼을 하러 떠나야겠다며 슈가에게 슬픔을 안겨준다. 하지만 그냥 이별하는 것은 아니다. 제리가 약혼선물로 받아온 다이아몬드 팔찌를 슈가에게 선물이라며 남긴다. 우리의 순수한 슈가는 자신에게 무언가를 남긴 남자는 처음이라며 기뻐한다!






한편 스패츠 일당에게 발각되어 쫓기게 된 두 남자는 이곳에서 벗어나려면 늙은 백만장자의 요트 밖에 없단 판단을 내린다. 제리는 그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하고, 그사이 죠는 슈가가 공연하는 소리를 듣고 홀린듯 다가가 키스를 퍼붓는다. 여장한 채로. 덕분에 슈가는 자신의 동료였던 죠세핀이 남자였단 것을 깨닫는다.


두 남자는 늙은 백만장자가 대기시켜놓은 보트로 도망치는데... 세상에, 슈가가 그곳에 따라온다.

죠는 자신은 그동안 너를 속여왔던 테너 색소폰 남자들과 다를바 없다며, 돌아가서 백만장자를 꼬시라 하지만 하지만 슈가는 상관없다며 키스한다. 아마 슈가는 자신에게 처음으로 무언가를 남긴 남자라면, 그가 어떤 사람이든 상관없다는 심정이었을 거다. 


게다가 조금 진지하게 생각해보면 그 물건이 심지어 진짜 다이아몬드 팔찌 아닌가. 그렇게 큰 물건을 이별 선물이라며 남기는 남자라면, 심지어 본인은 갱단에게 쫓겨서 한 푼 없이 도망치는 신세이면서 남기는 남자라면, 슈가의 마음이 흔들릴 만도 하지 않나.


여기서 조금 더 진지하게 들어가보면 그렇게 대책없이 사는 남자를 믿을 수 있나 싶기는 하지만...! 또 생각해보면 사랑에 그렇게 계산없이 즉흥적으로 전부 던져버리는 죠의 모습이 또 슈가의 심장에 불을 질렀을 수도 있겠다.


이렇게 이 커플의 이야기도 재미있지만, 더 재밌는 것은 다른 한 커플(?!)이다.






이것이 사랑의 도피인 줄 알고 있는 늙은 백만장자는 결혼 이야기를 꺼내고. 그 결혼을 받아들일 수 없는 제리는 결혼할 수 없는 이유를 줄줄이 댄다. 그런데 이 남자, 다 상관 없단다. 복잡한 과거도 다 용서해주겠단다. 결국 제리는 자신이 남자란 사실을 고백한다. 그 말에 돌아오는 대답이 장관이다.


Nobody is perfect. 완벽한 사람은 없죠.


남자여도 상관 없단다. 늙은 백만장자는 사랑만 한다. 이 장면이 너무 재밌어서 감탄하며 봤다. 오히려 제리가 더 황당해하고 당황해하는 표정이 일품이다. 과연 두 사람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상상하는 재미는 이 커플 쪽에 더 있지 않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