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2월 ~ 12월
1) 정부 지원사업, 엑셀러레이팅 프로그램으로 만난 투자사
지원사업 기간 동안 우리를 열심히 육성해주셨던 MYSC로부터 드디어 투자를 받게 됐다. 투자를 논하기 시작하고 납입까지 대략 6개월의 시간이 걸렸던 거 같다. 5,000만 원이란 금액이 누구에겐 크고 누구에겐 적을 수 있는 금액이지만, 금액을 차치하고 이 험난한 과정을 넘어선 것만으로도 창업자에게 큰 자산이 될 것임을 분명히 알았다. 지원사업은 자신감을 올려주지만, 투자 유치는 기업으로써 인정받는 훈장이다.
2) 지인 스타트업 대표님으로 받은 SI (전략적 투자)
우린 개인사업 당시 관광공사 사업을 종종 해왔는데, 이런저런 행사에 가면 자주 뵙던 대표님이 계셨다. 아웃도어 액티비티 플랫폼 프립의 임수열 대표님이었는데, 지인을 통해 지나가는 이야기로 프립이 전략적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짜고짜 대표님께 연락을 드리고, 투자유치를 타진했다. 전문 투자사의 재무적 투자가 아닌 전략적 투자였기에, 딥한 프로세스는 거치지 않았지만 나름의 IR 등을 거치며 최종 5,000만 원을 투자받게 됐다.
전략적 투자자로써 우리는 프립에 문화예술 관련 프로그램들을 납품할 수 있었다. 새로운 판로를 뚫는 기회이기도 하였고, 프립 차원에서도 문화예술 쪽 소싱을 테스트해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SI는 양사가 윈윈 할 수 있는 구조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극초기였던 우리가 프립에게 큰 도움은 되지 않았을 테지만 적어도 스타트업끼리의 전략적 파트너 관계는 장기적 관점에선 시너지가 나리라 믿었다.
투자금 1억 원으로는 우리의 아이디어를 기술로 풀기엔 개발자 인건비 등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융자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다행스러운 건 청년 창업자들을 위한 저금리의 융자 상품들이 많았다.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 그리고 중진공 융자 상품들이 대표적인데, 아직 기술이 받쳐주지 않았던 우리가 기보 융자를 받기엔 어려웠고, 중진공의 경우에도 당시엔 청년창업 사관학교를 입교하지 않았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신용보증기금을 타진하기 시작했다. 신용보증기금에는 스타트업 지점이 지역별 설치되어 있고, 스타트업에 특화된 지점이기에 청년 창업가들에게 우호적이었다. 우리는 서부 스타트업 지점을 방문해 상담을 받고, IR 일정을 잡았다. 이미 앞단에 MYSC나 프립을 통해 IR을 했던 경험 등이 있었으니 다행스럽게도 수월하게 IR을 마쳤다. 그리고 몇 번의 현장 실사와 여러 페이퍼들이 오고 간 끝에 2억 원의 융자를 승인받게 됐다. 앞서 받은 투자금 1억 그리고 융자금 2억까지 총 3억 원의 총알이 생겼다. 이젠 달릴 일만 남았다. 우리는 발 빠르게 풀 스택 개발자를 채용했다.
우린 무려 12명의 동료들이 다니는 회사가 됐다. 기획팀, 개발팀, 디자인팀, 영상팀, 스쿨팀까지 각 분야별 2명씩이 있는 제법 그럴싸한 조직 구조를 갖췄다. 풀 스택, 프런트 개발자와 디자인팀이 합심한 끝에 알파 테스트 등 고객 검증을 열심히 진행했고, 4개월여 만에 드디어 클로즈 베타 오픈을 앞둔 프로덕트를 개발하게 됐다. 반응은 꽤나 폭발적이었다. 클로즈드 베타 1,000명 모집에도 고객들이 반응하기 시작했고, 이대로만 가면 문화예술 스타트업으로는 독보적으로 선점을 하고, 악기 시장을 뒤바꿀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또한 각종 지원사업에도 선정되며 인건비, 마케팅 등에 활용할 예산도 나름 넉넉히 채워갈 수 있었다. 자신감 지표만큼은 하늘을 찌르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걱정은 있었다. 그렇지만 상황이 넘 좋았다. 당시 일기에는 이렇게 쓰여있었다.
이 길이 내 길이 아니라면 멈추게 해 주시고,
이 길이 맞다면 풀리게 해 달라는 기도였다.
기도의 결과, 주님은 IBK창공과 비대면 스타트업 육성사업에 우리를 붙여 주셨다. 분명 이 길이 맞다는 메시지였다.
시리즈 A에 안착해 있던 스타트업 트로스트 대표 동현이와 대화 중 ‘우리가 내세울 수 있는 단 하나의 지표’가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얼버무리는 나 자신이 한심해 보였다. 그냥 막연하게 내세우는 지표들만 열거할 뿐 진짜 내세울 수 있는 ONE 지표가 무엇일지 고민이 되었다. 주주 레터와 IR자료를 골똘히 보고 있으니 하나의 지표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악기’였다. 처음부터 우리의 차별화는 악기 렌탈이었다. 악기 렌탈에 집중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것이 시장이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럴만한 환경이 아니었고, 우리는 렌탈을 잘 몰랐을 뿐더러, 물류도 어리숙했다.
베타 론칭 이후 보완, 추가할 기능들이 보였다. 그런데 그 기능을 넣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소모됐다. 6개월이란 시간을 매진하고 22년 1월 정식 론칭을 앞뒀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유저의 와우를 발견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나온 지표로는 시장에 아무리 멋지게 내놓아도 가망이 없다고 느껴졌다. 그쯤 통장에 돈을 확인해보니 3개월치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상황이 좋지 않았다. 나는 동료들과 1대 1 면담과 전체 회의에서 앞 날에 대한 걱정 어린 이야기들을 늘어트려 놓았다. 동료들도 함께 고민해주고 방법을 찾아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생각과는 정반대로 피드백이 돌아왔다. 그들에겐 침몰하는 배였다. 그리고 대다수가 첫 직장 또는 1~2년차 주니어들이었기에에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대표는 답이 없다고 느꼈을 것이다.
매일매일 한 명 한 명씩 나와 면담을 요청해 왔다. 아니나 다를까 퇴사 요청이었다. 차라리 단체로 와서 얘기해주면 좋았을거늘, 매일매일 한 명씩 나누어 면담을 요청했다.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 결국 12명 중 6명이 퇴사했고, 몇달 또 못가 2명이 더 퇴사했다. 도미노 집단 퇴사. 어디서 들어본 이야기를 내가 직접 경험하다니. 개인사업을 포함한 창업 경력 8년 만에 이제 끝이라 생각했다. 앞이 막막했다.
그런데 신비롭게도 내 마음엔 한 줄기의 빛줄기가 내려왔다. 위기는 기회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