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신에게 실망하지 않기로 해
사유의 방 01
견디기 힘들었다.
올해 마흔.
가진 것은 내 이름으로 된 보험 몇 개 뿐.
재산도, 이룬 것도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나니
중력이 나에게만 유독 더 거센 것처럼
땅속으로 꺼지는 기분이 들었다.
자신에게 실망했다.
견딜 수가 없을 무렵
《내가 한 말을 내가 오해하지 않기로 함》 속에서 기막힌 문장을 찾아냈다.
그때는 실망했을 때가 서로를 알아가기 가장 좋은 순간이라는 것을 몰랐다.
실망은 그 사람에 대한 업 앤 다운으로 영점을 향해가는 것뿐인데,
나는 상대가 외치는 다운이 무서워 내 숫자를 바꿔갔다.
자신에게 실망할 때마다 교묘하게 빠져나갔다.
실망의 무게가 두려워서 아닌 척, 안 그런 척, 잘난 척 스스로를 속이며 반성보다는 변명을, 노력보다는 요행을 바라며 살았다.
그리고 운 좋게 그것들이 통할 때가 많았다.
생각하면 생각하는 대로 되는구나.
오만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하지만 마흔이 되자, 그동안 행했던 꼼수가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는 것을
이제 부인할 수 없게 됐다.
자신에게 실망했을 때 왜 바로잡지 않았을까.
나는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이니 더 노력해야 한다고, 반성하고 수긍하고 앞으로 나아가길 도모했다면 지금쯤 다른 삶을 살지 않았을까.
나는 이제서야 후회보다는 내 자신을 피하지 않고 바로 보려 한다.
다이어트를 결심하면서도 번번이 실패했던
무엇 하나 꾸준히 해보지 못한
내 생각을 확고히 말하지 못하고 끌려다니는 나에게
이제라도 영점을 잘 맞추고 앞으로 나아가 보자고 독려하려고 한다.
괜찮아, 마흔이 뭐 어때서.
스무 살까지는 성인이 되기 전이니 연습이었다 치고,
이제 겨우 성인부터 시작해 스무살이 되었을 뿐이다.
그동안 운좋게 잘 피하고 버텼으니
꿈이라는 럭비공을 가지고 엔드라인 너머까지 가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