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하기 싫지만,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 겨우 ‘손으로’ 하루 일정을 쓰는 일 말이다. 그날의 일과를 상기하면서 오전에 플래너를 쓰고 저녁에는 밑줄을 치며 점검하는 일이 나의 소소한 루틴이었건만 어느새 그 간단한 행위마저 피로해지고 말았다. 퇴근 후, 플래너를 들추는 일이 마치 밀린 숙제처럼 느껴지기 시작한 날 변화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효율보다는 감성을 추구했던 아날로그 인간이 빠르게 기록하고, 빠르게 관리하는 도구를 생각해낸 것이다.
내가 찾은 대안은 다름 아닌 ‘노션’이었다. 독서 기록장으로 쓰고 있던 노션으로 주간 플래너를 만든 것이다. ‘과연 이 방식을 유지나 할 수 있을까’라고 의심하며 올해 1월부터 기록하기 시작했는데 어느덧 노션 플래너를 사용한지 8주가 지났다. 이쯤 되니 알고 싶어졌다. 손 글씨와 종이를 선호했던 수기 기록자가 어떻게 온라인 플래너에 적응해 나갔는지를 말이다.
하루 동안 내가 노션을 이용하는 방식은 다음과 같다. 출근을 하면서 뉴스레터를 읽고 휴대폰으로 노션을 열어 습관 트래커에 체크 표시를 한다. 회사에 도착하면 PC로 다시 노션 플래너를 열어 어제 했던 일을 훑은 뒤, 오늘 할 일을 기록한다. 주말엔 블로그에 주간 회고를 기록하기 위해 플래너에 적어둔 평일의 기록들을 살펴본다.
이렇듯 노션의 편의성은 모바일과 PC를 손쉽게 아우를 수 있는 호환성이다. 네트워크 접속이 가능한 상황이라면 실시간 백업이 가능하기 때문에 어떤 기기를 사용하더라도 별다른 인증 없이 방금 적은 나의 기록을 살펴볼 수 있다.
산책을 하다가 쓰고 싶은 글감 하나가 생각난다면 휴대폰을 켜 노션 어플에 접속하면 되고, PC로 넷플릭스를 보다가 잊고 있던 일정 하나가 갑자기 떠오른다면 작업 표시줄에 고정시킨 노션 PC버젼을 클릭하면 된다.
다시 말해, 언제 어디서든 웹 상에 있는 나의 플래너의 일정을 업데이트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좋은 습관은 접근성을 높이고, 나쁜 버릇은 마찰력을 올리란 말이 있다. 아직은 누락한 주차 없이 노션 플래너에 무난히 적응한 걸 보면, 기록 도구의 접근성을 높인 덕분이지 않을까.
2️⃣ 수정과 편집이 자유롭다
일정을 수기 플래너에 적다 보면 꼭 한 두 가지는 내일로 연기해야 하는 것들이 나오기 마련이다. 나의 경우엔 그 다음날 해당 일정을 그대로 옮겨 적는 편이었다. 하지만, 플래너를 쓰는 일이 갈수록 귀찮아지던 무렵엔 이 과정이 피로해 늘 성의 없는 화살표로 찍 그어 놓기 일쑤였다. 그러다 보니 보기에 깔끔하고 정리된 플래너는 나와는 상관없는, 저 세상 이야기가 되곤 했다.
하지만 노션은 수정에 게으르고 꾸미기에 젬병인 나와 같은 사람도 희망을 갖게 했다. 연기해야 할 일정은 클릭해서 다음 날로 드래그하면 그만이었고, 무료 템플릿이 워낙 많아 약간의 손품만 더하면 충분히 깔끔한 플래너를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노션 플래너 템플릿]이라고 검색하면 누군가 쓰고 있는 템플릿을 버튼 하나로 복제할 수 있기 때문에 내 계정으로 가져와 그대로 쓰거나 재수정하여 쓸 수 있다. 매일 보는 플래너라 쉽게 지루해질 수 있는데 그럴 때마다 조금씩 변화를 준 일도 흥미를 잃지 않은 중요한 이유였다.
3️⃣기록 통합 관리가 가능하다.
한번 생각해 보았다. 불과 2년 전의 내 기록은 어떠했나. 말 그대로 ‘뒤죽박죽’이었다. 오전에는 모바일 버젼의 루틴 어플을 쓰고, 오후에는 회사에 있는 다이어리, 저녁에는 책상 위에 올려든 수기 위클리 플래너를 이용하는 식이었다. 나름 분주하게 일정을 관리하고 있었지만 돌이켜보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잘 감이 오지 않았다. 그저 과분한 관리 지표에 기진맥진한 얼굴이 되어 일찍 침대에 들어섰을 뿐이다.
어설프게 산발적 관리만 해온 나 같은 사람에게 노션은 똑똑한 비서와 같다. 기록에 관해서라면, 거의 모든 툴을 만들 수 있고, 이를 링크로 연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간 플래너라 이름 붙였지만, 사실 이 페이지에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의 일정만 있는 건 아니다. 나의 온라인 플래너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 페이지가 모두 모여 있다.
✅ 루틴을 매일 체크하는 습관 트래커
✅ 그 달의 좋은 순간을 기록한 하이라이트 페이지
✅ 회사와 개인 포스팅을 모아 놓은 페이지
✅ 읽은 책들을 기록한 독서 리스트 페이지
✅ 떠오르는 생각들을 끄적여놓은 메모장
✅ 올해 이루고 싶은 주간/월간/연간 목표 까지.
나열하고 보니 많아 보이지만, 보다시피 이것들을 그대로 우겨 넣은 게 아니다. 해당 페이지를 설명하는 짧은 단어와 이모지를 적고 백링크로 설정해두면 이 모든 것들을 한 페이지에 적절히 배치할 수 있다. 결국, 나의 노션 플래너는 적는데 필요한 장비를 한 데 모아 놓은 기록 키트로 기능하는 셈이다.
이 키트는 매일 열게 되는 마력이 있다. 일상에 필요하니 자주 들여다 보게 되고, 귀여운 이모지나 아이콘, 통계 등 깔끔한 시각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있어 보는 맛이 있다. 더구나 플래너를 쓰면서 목표들도 계속 상기하게 되니 잘 가고 있나 방향도 점검하게 된다. (물론 이게 종종 부담스럽긴 하다;;)
이렇듯 하나의 페이지에서 한번에 기록들을 이어갈 수 있다는 사실이 아날로그 인간을 사로잡았다.
이상, 위의 세 가지가 수기 기록자가 노션 플래너에 정착할 수 있던 이유였다.
마지막으로 나처럼 조금씩 속도와 효율을 추구하고 싶은 아날로그인이 있다면 첫 단계로 노션을 추천하고 싶다. 생각 포착 도구이자, 일상 관리 도구로서 만족할 것이다